‘신들린 연기란 바로 저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선관위 대선후보 토론회를 독무대로 만들었던 이정희 후보를 보면서 느낀 소감이다. 박근혜라는 유신의 딸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모욕을 주고 망신을 줄까, 어떻게 면박을 줘야 우리 편 속이 확 풀릴까, 나름 사전 각본도 짜서 치밀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먹잇감의 약점을 본능적으로 노리듯 박근혜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석기, 김재연 자당 소속 의원들의 성을 바꿔 부르고 엉뚱한 당명이 나오자 재빨리 낚아챘다. “예의와 준비를 갖춰주셨으면 좋겠다.”
감히 유신의 딸이 진보당을 무시하나? TV화면을 향해 삿대질해가며 열이 올랐을 내 편을 위해 이정희는 회심의 결정타를 연신 날린다. "유신독재의 퍼스트레이디가 청와대를 가면 대통령이 아니고 여왕이 된다" "불통과 오만의 독선 여왕은 필요없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정치혁신을 말할 자격이 있냐. 새누리당은 없어져야 한다" “이것만 기억하시면 된다. 박근혜 후보 떨어뜨리기 위한 거다. 저는 박근혜 후보를 반드시 떨어뜨릴 것이다” 이 대목에선 지지자들의 쾌감지수가 아마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이날 이정희의 독설은 철저히 내편을 위한 것이었다. 박근혜의 아픈 곳만 골라 치던 그날의 단어들은 아마도 평소 내편들과 주고받던 것보다 훨씬 강도가 약할지 모른다. 그러나 적의가 번뜩이고 마디마디 시퍼런 날이 느껴지는 살기어린 독설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섬짓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이건 박근혜의 본질적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다. 이정희는 이날 오로지 단 한 사람만의 목을 노리고 무대에 올라와 망나니의 칼춤을 추며 모두를 위협했다. 오로지 내편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모욕과 저주를 퍼부었다.
상대를 짓뭉개기 위해 천연덕스럽게 거짓말도 늘어놓았다. 통진당 소속 의원들 중 애국가를 거부하는 의원들이 있다는 지적을 하자 그녀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언론은 12년 전 통진당 전신인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 전당대회에서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애국가를 부르지 않았던 사실을 곧바로 지적했다. 이정희가 한 거짓말은 또 있다.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유통법 개정안의 법사위 상정이 무산된 것은 박근혜와 새누리당 책임이라고 했다. 하지만 유통법 개정안은 여야가 현재 상임위에서 대형마트 영업 종료 시각을 조정하는 등 여전히 논의 중에 있다. 이 사실을 지적당하자 이정희는 됐다는 말로 끊고 답변하지 않았다. 제주해군기지 예산 역시 여론을 의식한 민통당이 물리적 저지를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동조한 것으로, 새누리당에 의해 단독 처리됐다. 이걸 두고 날치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이정희는 상대를 죽이고자 허위사실을 포함한 온갖 방법으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정작 자신을 향한 질문에는 단 한 차례도 성실히 답변하지 않았다. 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아무렇지도 않게 외면했다. 제물을 한 가운데에 놓고 자기 진영 사람들을 열광케하는 저주의 페스티벌을 벌였을 뿐, 이날 이정희는 최소한의 토론방식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내달렸을 뿐이다. 이런 점을 간과하고 토론을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진영논리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구태의 극치에 불과하다.
질문엔 귀 막고 남만 공격하는 이정희와 샴쌍둥이처럼 닮은 MBC노조
적을 죽이기 위해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덤비는 이정희의 신들린 난장 퍼포먼스는 그러나 생소한 행태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이와 비슷한 행태와 수법을 경험한 바 있다. 바로 올 한 해 MBC노조가 화려하게 펼쳤던 ‘김재철 죽이기’ 무공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말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태도, 적에게는 끊임없이 대답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질문을 회피하는 비겁함, 과장과 왜곡을 덕지덕지 붙여가며 최대한 사실을 부풀려 여론을 선동하는 교활함 등 마치 샴쌍둥이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MBC노조가 속한 언론노조의 상급단체가 바로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통합진보당의 최대주주였다. MBC노조는 새누리당을 총선에서 실패하게 만들기 위해 언론인으로서 금지된 불법선거운동까지 자행하는 용감무쌍함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저녁시간 온 국민이 둘러앉아 볼 공중파 방송을 통해 마치 당신의 목을 꼭 베고 말겠다는 섬뜩한 결기를 보인 이정희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김재철 사장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허위사실유포, 과장과 왜곡, 심지어는 노골적인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던 노조의 정영하와 이용마가 폴리뷰의 질문을 회피했던 것처럼 비겁함도 이정희의 비겁함과 닮았다.
남에겐 혹독하고 자신들에겐 한없이 관대한 것도 닮았다. 이정희는 대선후보 토론회에 나와 지난 총선에서 벌어진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통진당은 이정희가 TV토론에서 유권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그런 기적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게 언론의 지적이었다. MBC노조는 자신들 내부에서 벌어졌던 불법선거운동, 폭력사건, 불륜 등 도저히 언론인집단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음에도 이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오직 김재철측의 티끌만 줄기차게 공격했다. 노조특보와 트위터, 각종 언론인터뷰에서 자신들을 마치 무오류의 집단, 최고선의 집단, 오직 피해만 받은 집단인 것처럼 국민을 기만했음에도 각종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뻔뻔하게 침묵하고 있다.
이정희를 지지하는 세력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들도 분명 약자를 생각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분개하는 국민들이다. 그러나 나만 옳고 상대는 악이라는 과잉의 확신, 이념적 오판, 그에서 비롯된 온갖 비상식적 행태, 다수를 무시하는 소수의 일방주의, 경직된 전체주의 등 이런 오류에 대해선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번 토론회에서 보여준 이정희의 태도는 바로 그런 오류의 정수를 담고 있다. 언론계의 이정희라고 봐도 무방한 MBC노조도 마찬가지다. 동질의 집단 안에서 그들만의 열광과 지지에 둘러싸여 대다수 국민 여론에 눈감고 귀를 막고 있는 MBC노조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들은 언론자유와 독립은커녕 오히려 언론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언론 환경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스스로 정치권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늘 권력싸움에만 치중하면서 국민 분열에만 앞장서고 있을 뿐이다.
MBC노조는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의 이정희 쇼크에서 뭔가 느끼는 바가 있길 바란다. 통진당 이정희와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위치부터 스스로 갈라야 한다. 그 과정에서 피가 흐르고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느껴도 참아내야 한다. 고인 고름을 걷어내고 뼈에 박힌 암덩어리를 긁어내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 그러나 노조위원장 정영하는 여전히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라고 떠들고 있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MBC노조에서 이정희 DNA를 걷어내지 않는 이상 정영하의 싸움은 결말이 뻔하다. MBC가 죽고서 칼춤을 춰 봐야 이미 엎지른 물이라는 얘기다.
폴리뷰 편집국장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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