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새누리당을 향해 ‘뉴스 불임정당’이라고 핀잔을 준 건 박근혜 전 대표의 뜻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불임’이 아니라 ‘피임’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의 종북파와 비종북파간 세력다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 과정에서 이석기, 김재연 등 종북파의 정치생명이 과연 끊어질 수 있을지 어떨지는 박 전 대표가 강조한 ‘안거낙업(安居樂業)’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이 전국을 순회하며 벌이는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후보가 1위를 굳힐 수 있을지, 아니면 김한길 후보가 파란을 일으키며 최종적으로 이 후보를 꺾을 수 있을지 같은 문제도 박근혜식 ‘안거낙업’과는 상관없는 문제다.
국민이 생업에만 몰두하고 정치엔 신경쓰지 않는 나라 만드는 게 정치소신이라는 박 전 대표의 뜻을 잘 받들고 있는 새누리당에게 뉴스 불임정당이라니 당치 않은 소리다. 뉴스를 만들어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새누리당에게 섭섭할 소리다. 당이 비정상적인 1인지배체제로 가고 있다는 아주 상식적인 비판도 “우리끼리 갈등하고 정쟁하면 국민께 실망을 드린다”는 말로 입을 다물게 한 박 전 대표다. 혹여 큰 뉴스거리라도 될까봐 새누리당은 전당대회도 소리소문 없이 치뤘고, ‘누구는 당대표 누구는 사무총장~’ 미리 돌던 소문대로 당대표 체제를 꾸렸다. 그렇다. 새누리당은 시끄러운 뉴스를 생산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피임하고 있다. 박근혜식 안거낙업 실현을 위해 열심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안거낙업(安居樂業)이란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산 노자가 바란 세상이다. 크고 작은 숱한 나라와 제후들이 천하 패권을 놓고 다투는 동안 백성들이 그 피해를 오롯이 받아 집과 생업을 떠나야만 했던 난세에서 꿈꾸었던 이상사회다. 백성이 안락한 삶을 살며 생업에만 종사할 수 있는 태평성대를 말한다는 점에서 얼핏 긍정적으로 다가올 법도 하다. 그러나 안거낙업이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완벽히 나뉜 봉건시대의 논리다. 누가 정치권력을 쥐었든 백성을 배부르고 편안히 살게 해 준다면 상관없으며, 그렇게 살게 해 줄 수 있는 지배자를 이상화하는 뜻이 담긴 논리다.
‘안거낙업’ 등 박근혜식 어법엔 민주주의가 빠져있다
그의 어법에선 상대를 인정하는 민주주의 논리를 발견하기 힘들다. 비대위 체제를 끝내고 그가 밝힌 소감을 보자. 박 전 대표는 지난 1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힘들고 고단한 우리 국민들을 위해 흔들려고 해도 흔들리지 않고 깨뜨리려고 해도 깨지지 않으며 국민만 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흔든다’와 ‘깨뜨리려한다’로 표현한 듯 보인다. 다른 말로 풀이하면 ‘나를 흔들지 마라’ ‘나를 깨뜨리려 하지 마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일절 거부하는 제왕적 논리에 다름 아니다. 도대체 누가 박 전 대표를 흔든다는 것인가? 누가 그를 깨뜨리려 한다는 얘긴가?
이런 어법이 과연 21세기 민주주의에 어울리기나 한 것일까? 어린아이들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지금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인 미디어 권력의 시대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도 맞짱을 뜰만큼 민주주의 개방폭이 넓은 시대다. 탈권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이 모인 술자리에서 툭하면 ‘노시개’로 술자리 안주가 됐었고, 지금은 SNS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을 밤낮으로 비난해대기 바쁘다. 물론 명암이 있는 현상이지만, 그만큼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흔들기’ 정도로 보는 그런 봉건적 인식을 가지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차기 대통령으로 그가 과연 적합하다고 할 수 있나. 힘들고 고단한 국민들을 위해 흔들리지 않고, 깨뜨려지지 않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데, 박 전 대표를 비판하는 국민은 그럼 국민이 아니라는 얘긴가? 설사 깨뜨리려는 세력이 있다 치자. 그렇다면 그런 세력은 국민이 아니라는 얘긴가? 그런 세력은 무시하고 없애야한다는 얘기인가?
지금은 초인과 같은 권력자가 나타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역사는 그 시대를 지배하는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인물이 주도해 발전해왔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과 뜻이 민주주의를 통해 국가운영에 반영되는 시대에 박근혜 전 대표의 발상은 시대착오에 불과하다. 국민 개개인이 정치에 개입하는 시대에 권력자와, 정치와 철저히 분리된 시대착오적 ‘안거낙업’의 철학으로는 국가를 제대로 이끌 수도, 국민을 제대로 평안하게 할 수도 없다.
국민이 종북세력 비판하면 박근혜도 국민 눈높이로 한 목소리 내야
국민을 자신이 돌봐야만 하는 백성, 국민을 지배자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피지배자, 약자로만 보는 시각으로는 민주주의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부적합하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겠다가 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자신에 대한 비판을 ‘흔들기’ ‘깨뜨리기’로, 자신을 비판하는 국민을 ‘흔드는 세력’ ‘깨뜨리려는 불순자’로 보는 잘못된 시각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종북세력이 사회를 소란스럽게 하면, 구름 위에 앉아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내 갈길 가련다’식으로 무관심할 게 아니라, 종북세력을 비판하는 일반 국민들처럼, 박 전 대표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그들을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국민이 왜 이석기, 김재연에 흥분하고 손가락질 하는지 그 정서부터 이해해보라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마저 “종북세력이 문제”라고 비판하는 동안 도대체 박 전 대표는 어느 구름 위에서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것인가?
박 전 대표가 강조하는 민생정치가 다른 게 아니다. 보육료 올려주겠다, ‘경제민주화’로 대기업 때려잡겠다, 복지 강화하겠다 이런 말만 하는 것이 민생정치가 아니다. 국민을 정치로부터 떼어놓고 몇 가지 혜택만 던져주면 다 해결된다는 식이 아니라, 국민이 선동에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정치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참여, 제대로 된 정치관을 갖도록 박 전 대표부터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진짜 ‘안거낙업’ 정치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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