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진영이 치열한 이념·노선 투쟁을 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범경기동부연합의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싸움은 단순히 그들만의 권력다툼만은 아니다. 통진당 헤게모니를 어느 쪽이 쥐느냐는 결국 연대세력인 민주통합당의 노선에까지 영향을 주고 이는 새누리당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즉 통진당 비당권파가 당권파인 종북세력을 압도할 수 있느냐 없느냐, 떨쳐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치열한 이념·노선 투쟁 결과가 좌파진영 대선 운명을 가를 것이란 얘기다.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역시 치열한 이념·노선 투쟁이 필요하다. 좌클릭한 새누리당의 정체성이 보수우파 정당의 자기혁신의 결과인지 특정 대선주자의 대선전략 차원에서 이루어진 인위적인 결과인지, 또 진짜 구태와 결별한 것이 맞는지 다만 착시현상일 뿐인지 보수우파 진영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당권파와 그 지지자들은 ‘비상시기’이라는 이유로 그 모든 논쟁의 물꼬를 틀어막아 버렸다. 당권파와 당권파에 둘러싸인 대선주자를 향한 유의미한 비판도 모두 ‘음해’로 치부되고 심지어는 ‘보수의 적’으로 내쳐진다.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비판하면 과연 보수의 적인가? 박근혜식 민생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적전분열인가? 좌파의 허구를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비판하고 종북세력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지켜온 논객이 단지 박 전 비대위원장에 비판적이라고 하루아침에 ‘보수의 적’으로 매도당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현상인가? 보수우파 진영에 건강한 자정능력이 살아있다고 볼 수 있나? 전원책 변호사가 새누리당의 영혼 없는 보편적 복지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박 전 비대위원장의 6.15계승의지를 비판했다고 어떻게 보수의 적이 되나?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박근혜 비판=보수의 적’이란 황당한 주장은 펼칠 수 없을 것이다.
‘보수의 가치’ 아닌 박근혜 지지 여부가 기준이 돼버린 보수진영 논쟁의 천박함
지난 대선에선 우클릭이 대세라 줄푸세를 주장했다가 이번 대선에선 좌클릭이 대세라 평생 맞춤형 복지,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는 게 보수의 원칙인가? 보수우파 정책 주장하다 시류에 따라 영국 노동당 정강정책보다 더 왼쪽에 있는 정책을 소신이라 외치는 게 과연 원칙있는 정치인의 모습인가 말이다. 그런 박 위원장의 원칙 없는 태도를 비판하니 대뜸 보수의 적으로 몰아부친다. 보수가 복지정책을 말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포퓰리즘 경향을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보수 삭제한 박 전 비대위원장이 가는 길이 결코 보수가 아닌데도 박근혜가 하는 것이니 보수이고, 정몽준, 김문수, 이재오가 가는 길이 보수인데도 그들이 박근혜가 아니니 보수가 아니라는 식의 주장이 횡행하는 현 친박 지지자들의 담론 수준은 유치원 아이만도 못한 최악의 수준이다. 보수우파 진영 전체가 이런 잘못된 틀 안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전원책 변호사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한 주장처럼 현 대한민국 보수우파의 복지 담론은 보편적 복지라는 좌파포퓰리즘을 추종할 게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를 제대로 살피는 것이다. 그 예로 전 변호사가 든 사례를 그대로 재론해 보자. 우리나라 가임여성 11명중 1명이 매춘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 매춘 여성이, 희귀질병을 앓는 이가 있거나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그 가정의 유일한 생계줄이 되지 않도록 국가가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것도 없이 국회가 매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 성매매특별법이나 만들어 매춘 여성을 손가락질 하는 분위기나 조성하는 건 모순이라는 것이다.
또 한 사례를 보자. 우리나라 독거노인이 200만명을 넘고 그 중 9만5천명은 고립되어 있다고 한다. 그 중 2만명 정도가 기초생활수급자로 혜택을 받을 뿐, 나머지 노인들은 어딘가에 있는 명목상 부양의무자 때문에 혜택도 못 받고 폐지를 주워 연명하면서 아파도 병원도 가지 못한다. 이런 비참하고 안타까운 현실을 두고도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의료를, 아니 ‘천국’을 전 국민에게 선사하겠다며 떠드는 게 작금의 정치권이다. 무릇 보수정치인이라면, 보수정당이라면 보편적 복지 떠들기 전에, 현실이 처한 모순을 타개할 방법을 먼저 찾고, 이런 현실을 숨기고 표만 쫓는 좌파세력의 허망한 위선을 통렬히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동굴’에 갇혀 전원책, 양영태를 ‘보수의 적’으로 돌리는 보수우파의 미래는 암울
새누리당이 좌파세력을 향해 해야 할 마땅한 비판과 대안제시를 전혀 못하고 있으니 전원책 변호사와 같은 이가 할 수 없이 나서는 것이다. 자유와 책임을 다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희생정신을 발휘하자는 것이 보수의 정신이라는 것, 새누리당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것, 또 미래권력이란 호칭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자인 박 전 비대위원장이 그런 철학과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오로지 정치공학적 표밭 다지기 구상에만 혈안이라는 점 등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박 위원장이 입을 열 때마다 거론하는 민생이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복지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전 변호사의 복지가 그래서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보수의 가치로 보수우파 세력의 혁신을 위해 매를 드는 이런 전 변호사를 친박 지지자들이 ‘보수의 적’으로 돌려세우는 건 보수우파 세력의 수치다.
비박주자들을 격려하고 때로는 질책하면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의 건강한 경쟁을 요구하는 보수논객 양영태 박사에 대한 친박지지자들의 성토도 마찬가지다. 양 박사가 6.15, 10.4선언존중을 선언한 박 위원장의 모호한 대북관을 지적하면 수구꼴통, 극우로 모는 이들이 정몽준, 김문수, 이재오의 과거 전력을 들어 ‘빨갱이’로 몬다. 박근혜를 비판하는 양 박사와 같은 논객들 때문에 국회에 빨갱이 세력이 들어가게 생겼다고 욕하기 바쁘다. 그들이 말하는 빨갱이를 누가 찍어줬나? 그들이 묻지마 지지하는 새누리당은 그럼 왜 그토록 위험한 빨갱이 세력의 국회진출을 진작 막지 못했나? 아니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해왔나? 지금 통진당 사태에 있어 입을 다물고 있는 박 전 비대위원장에겐 왜 책임을 묻지 않나?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개인적 편견과 아집에 갇혀 자기만의 동굴 안에서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동굴의 우상’이란 비유로 비판했다. 친박지지자들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박근혜란 프리즘만을 통해 세상보기를 고집할 때 그런 오류에 갇힐 수 있다. 연예인 좋아하듯 맹목적으로 ‘박근혜 동굴’ 속에 갇히길 자처하는 지지자들이 보수우파 세력의 중심이 되면 미래가 암울하다. 지지자들이 정치인에 의리와 신뢰를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몰이념과 무가치한 잣대로 ‘박근혜이기 때문에’ 지지한다거나 ‘박근혜를 비판하기 때문에’ 물어뜯는 행태들은 지양돼야 한다. 자신들이 ‘보수의 적’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동안 나머지 손가락들은 본인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진정한 보수의 적은 바로 그런 어리석은 자들이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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