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제철소 외주파트너사 해고 직원들 "광양제철소 직원과 동일한 대우 해달라?" 소송제기
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업체의 해고근로자 16명이 본인들은 광양제철소 직원이나 다름없으니 포스코 직원으로 인정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 냈다.
이들은 광양제철소 사업장에서 광양제철소 측의 직접적 지휘·감독에 따라 작업을 했기 때문에 원청사인 포스코 직원과 다름없게 급여와 처우를 대우해 달라며 여지껏 포스코 광양제철소 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 간 임금 차액도 밀린 임금으로 간주해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최근들어 이런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소송이 빈발하는 이유는 올 초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전환 판결을 내린 후부터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된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본질적인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본질의 의미는 노동의 가치, 고용,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가치판단의 문제다.
이런 논쟁과 관련해 필자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일노동=동일임금' 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그럴싸하게 들릴수 있지만 현실에선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성사될 여지가 없다.
현대사회로 오면서 다양한 직무가 생기고 그에따른 임금체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흔히 자동차 조립공정 라인에서 같이 일하는데, 원청사 직원과 사내하청회사 직원간에 왜 임금차가 발생하느냐에 많은 질문을 던지며 동일노동=동일임금 주장을 하지만 노동에 대한 가치는 본질적으로 평등하지가 않다.
흔히 동일가치 노동이란 노동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작업조건 등이 동일하거나 거의 같은 성질인 노동 또는 두 업무가 다소 다르더라도 직무평가 등에 의해 본질적으로 동등한 가치가 인정되는 노동을 말한다.
다만 비교되는 근로자의 노동이 외형상 비슷하더라도 당해 근로자 사이에 학력 경력 근속년수 직급등의 차이가 있고 그것이 객관적 합리적기준으로 정립되어 있는 경우는 임금차별로 볼수 없다.
단순히 제조업 시장의 복잡한 생산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수를 무시한 동일노동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따른 동일임금을 적용할 대상도 찾기가 힘들다.
도대체 사람마다 노동의 가치가 다른데, 누구를 특정해 동일하다며 동일임금을 적용하겠다는 말인가?
동일노동=동일임금이 문제가 아니라 현실에선 오히려 같은 공간에서 훨씬 더 뛰어난 노동력을 갖추고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임금은 커녕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그것도 공직사회에서 말이다.
최근 공직사회에서 선발하는 6급이상의 전문 분야는 거의 계약직으로 선발한다.말하자면 비정규직인 셈이다. 이 자리에 응시하고자 하는 지원자는 좋은 학교와 직장 경험을 갖추었지만 6급 혹은 5급 상당의 직급을 받고 해당 분야에서 1-2년 계약기간을 정하고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들은 말하자면 공무원 사회의 비정규직인 셈이다.
비정규직 5급 사무관은 정기공채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정규직 공무원인 7급이나 8급 직원들과 같이 공간에서 같이 일하며 심지어는 부하직원인 정규직 이들 하급 직원들로부터 근무평가를 받아 계약기간 연장유무를 결정하기도 한다.
지방공무원의 경우 20년전만 해도 태반이 고졸 출신이 주를 이뤘다. 고졸 출신의 정규직 5급 사무관이 대졸, 아니 대학원 졸 이상의 학력을 지니고 대기업 직장 경력을 갖춘 5급 계약직 공무원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경우도 태반이다.
해당분야의 전문성을 보강하기 위해 선발한 이 계약직 공무원은 고졸출신 정규직 공무원보다 노동력은 오히려 낫지만 신분은 비정규직 계약직 공무원이다.
동일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공무원보다 학력도 높고 좋은 직장을 다녔으며 훨씬 전문분야의 일을 하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 비정규직인 계약직 공무원에 종사하고 있는 게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둘째,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개념 문제다.
흔히 원청사는 정규직, 사내하청회사는 비정규직이라고 분류하지만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고용의 연속성을 갖고 구별한다.정규직이 계약기간을 두지 않고 정년보장을 하는 반면 비정규직은 고용계약 기간을 둔다.
예를 들면 최근에 설립된 광양제철소 외주사인 포스플레이트라는 사회적기업은 배에 쓰이는 후판 시편을 절단가공하는 회사로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외주사이지만 직원 전원은 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이다.
단지 포스코 직원에 비해 급여가 낮고 복지수준이 포스코에 미치지 못한다는 차이만 있을뿐 정해진 고용기간은 없어 고용불안은 없다.
따라서 이들이 포스코 광양제철소내 들어와 사내하청업무를 한다고 해서 비정규직 취급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셋째, 일자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가령 100억원이라는 인건비를 놓고 1억원의 연봉을 받는 100명의 일자리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5천만원의 연봉만 받더라도 100명의 일자리가 더 생기는 200명의 일자리를 선택할 지는 여러 고민이 수반되는 일이다.기업마다 상황이 다르고 여건이 다르며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나눠서 가질 것인지, 아니면 소수만이 그 일자리를 독점하고 특혜를 누릴 것인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당사자들이 결정할 문제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무가 강조되는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나눠 갖는 시스템이 더욱 의미있다고 한다.
만약 노사가 이런 일자리를 나누는 시스템에 합의했다면 그에 따른 차등도 인정해야 한다.
노사가 100개 일자리를 200개로 쪼개는 데 합의했다면, 그 과정에서 다양한 직무와 직군이 생기고 다시 이를 외주형태로 일을 나눌수 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등' 이 생길수 밖에 없다는 점은 구성원들 스스로가 사전에 인정해야 한다.
노사 구성원 모두가 이런 '차등' 에 동의하고 합의했다면,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만들수 있다.
또한 그 형태에 따라 구성원들은 모두가 동일한 수준의 5천만원 연봉이 아닌 형태에 따라 100명은 7천만원을, 나머지 100명은 3천만원밖에 못받는 차별적 지위가 생길 수도 있고, 아니면 이보다 훨씬 세분화된 임금체계가 나올수도 있다.
예를들면 100억원이라는 총액인건비를 놓고 1억원연봉을 받는 사람이 10명,5천만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40명, 4천만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100명, 3천만원 연봉을 받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총 250명의 일자리가 생겨나는 셈이고, 그 일자리는 대개 '외주' 형태를 통해 만들어 진다.
실제로 국내 대부분 산업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사내하청제도는 외환위기 직후 고용보장을 하기 위한 노사 합의에 의해 탄생했다.당시 경제상황이 워낙 어렵다보니 노사정합의에 의해 사내하청을 통해서라도 일자리를 보전하기로 서로 합의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자에게 직업선택의 자유나 전직의 자유를 보장한다면 기업에게는 이런 임금 혹은 인사에 있어서 차등권한을 부여할 경영권을 보장해야 한다.
실제로 당진 현대제철소가 새로 생겨나면서 광양제철소 사내하청회사에서 근무하는 상당수 직원이 현대제철소로 옮겨갔듯이, 포스코와 같은 기업에서 외주사 설립을 통한 불가피한 차등구조는 일자리 창출이란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강' 돼야 한다.
"원청사와 법적지위를 동등하게 해달라는 주장은 일자리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와 동일"
우리가 논하는 이런 경제문제는 항상 단서조항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는 측에선 그런 단서조항은 알면서도 은근슬쩍 무시한 채 일반론만 주장한다.
즉, 최근 사내하청 노동자를 원청사 직원과 동일한 법적지위를 부여해달라는 요구는 ‘일자리가 줄더라도 ’라는 단서가 전제돼야 한다.
따라서 그런 주장을 하는 측은 일자리가 줄더라도 원청사와 동일한 수준의 처우개선인지 여부를 먼저 인식해야 하고 ‘우리가 원청사 직원으로 전환하는 대신 당신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경고메세지를 해당 노동자들에게 사전에 알려줄 의무가 있다.
‘당신의 선택여하에 따라 당신의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도 않고 막연히 같은 공장에서 일하니 같은 월급과 같은 처우를 요구하는 것은 얼듯 그럴싸하게 들리나 사실상 거짓선동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이런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거 원청사 직원으로 전환할 시 원청기업의 손익구조가 버틸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다.
작년 1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0 사내하도급 현황’을 보면 2010년 8월 현재 고용보험에 등록된 300인 이상 1939개 사업장 근로자 132만6040명 가운데 24.6%인 32만5932명이 사내하청 근로자였다.
조선업종의 원청 근로자 대비 사내하청 근로자 비율은 무려 158.7%에 달했고 철강은 77.6%, 자동차는 19.5%, 전기ㆍ전자는 16.4%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2년 이상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사내하청 근로자들을 한꺼번에 원청사 직원으로 전환하면 업체의 비용부담은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 밖에 없고 그에따른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당장에 인력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
노동부가 지난 2008년 고용보험 가입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면 사내하청 형태로 근무하고 있는 근로자는 자동차 1만9514명을 포함해 모두 36만8590명에 달했다.
특정 사업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 수는 파악돼 있지 않지만 전체의 3분의 1만 2년 규정에 해당된다고 해도 당장 원청업체 정규직원으로 신분이 바뀌어야 하는 인력은 10만명을 웃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경우도 2만명에 달하는 외주사 직원들이 포스코 정규직원으로 전환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회사는 아마도 그 비용을 감당 못해 순식간에 적자구조로 돌아설 수 있다. 회사는 이런 적자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대규모의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하게 되고 이는 대규모 실업사태를 초래하며 실업은 사회적부담을 수반하게 된다.
사회적부담은 결국 복지재원이 늘어나야 하며 이는 복지재정 지출의 가속화를 초래하지만 기업들의 이익은 줄어들기 때문에 세원충당은 힘들어진다. 결국 성장이 힘들어지고 고용창출이 안되며 복지예산만 쏟아부어야만 하는 경제악순환고리로 접어들수 있다.
제조업에서 생산자에 대한 새로운 개념규정이 필요한 이유?
이제는 제조업에서 생산자에 대한 개념규정을 다시 해야 한다. 특정생산현장에 참여했다하여 그들만을 생산자로 규정해선 안된다.
세계 최고 수익을 내고 있는 미국 애플사는 자국내에 생산공장이 없다. 중국 등 외주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다.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생산자가 없는 것일까? 자체 생산공장이 없다고 해서 생산자가 없다는 식의 논리는 온당치 않다. 일본의 부품공장에서 부품을 조달하고 중국 외주공장에 작업지시를 내려 다시 조립하는 일련의 과정자체가 바로 생산에 해당된다.
이런 식의 생산시스템을 통해 애플은 자국내 생산공장만 없을뿐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공급하고 있다. 생산공장만 없을뿐 생산자는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애플은 이런 생산자를 갖추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인 노스페이스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중국에서 원단을 조달하고 단추 등 부자재는 대만에서 조달하며, 제품은 방글라데시나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생산이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노스페이스라는 똑같은 브랜드의 의류를 만들고 있는 각국의 생산현장에 있는 같은 회사의 노동자들은 왜 차별적인 임금을 받고 있는가? 똑같은 회사에 속하지만 서울에 있는 생산자와 중국 공장에 있는 생산자와 방글라데시에 있는 생산자는 왜 엄청난 임금차이가 발생할까?
포스코 직원과 하청회사 직원은 생산현장에 있었을 뿐 품질좋은 철강을 만들어 내기 위한 생산에는 광양제철소 소장을 비롯한 간부진, 기술연구진, 외주파트너사 경영진 들이 모두 참여했다. 단지 참여형태가 다를 뿐이다.이뿐만이 아니다. 원자재 공급처인 호주의 석탄공장 광부도 철강 생산에 참여했다.또 이런 석탄을 수송하는 해운회사, 하역을 하는 포스코 터미널 회사 임직원도 모두 철강생산에 참여했다.
제철소 기계설비를 수리하는 사람부터 기계설비 부품을 납품하는 사람, 제철소 직원들이 입는 옷,신발,명찰, 모자, 하이바 등 생산과정에 소요되는 소모성 자재와 정비 등 모든 분야의 임직원들이 생산에 참여한 것이다. 하다 못해 생산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노래방업주도 따지고보면 생산성 증가에 기여했기 때문에 생산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요즘처럼 전산화된 시기에 생산참여의 방법은 그만큼 다양하다. 광양제철소장과 주요 공장장들은 생산과정에서 의사결정을 통해 생산량과 질을 결정함으로써 생산에 참여한다. 연구원은 품질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연구에 몰입함으로써 생산과정에 참여한다.외주파트너사 역시 각기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에 구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원자재 공급회사나 부품사 역시 적기에 납품을 함으로써 생산에 참여했다.
이런 차원에서 광양제철소내 지역협력팀,홍보팀, 사회공헌팀 등 생산에 직접 관여되지 않은 부서의 임직원들도 따지고 보면 생산과정에 참여한 것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생산과정에 참여한 각 생산주체들의 이런 협력관계와 변수를 무시한 동일노동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따른 동일임금을 적용할 대상도 찾기가 힘들다.
도대체 여건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며 하는 일이 달라, 사람마다 노동의 가치가 다른데, 누구와 동일해 누구의 임금을 누구와 동일하게 적용하겠다는 말인가?
이런 평등주의적 시각은 모든 인간을 동일한 기준에서 놓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평준화되어 있지 않다. 동일노동과정에서 직무수행 능력차이, 생산력,숙련도는 물론이고 글로벌기업의 생산과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런 동일임금 주장은 인간의 창의성과 자주적 의지를 소멸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포스플레이트라는 사회적기업조차 작업환경개선이 이뤄진 분야에선 그에다른 성과급이 차등지급한다.팀파워활동을 통해 생산성증가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이런 성과급에 기대한 측면도 있다. 결국 인간도 그렇고 조직도 그렇고 회사도 결코 평등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평등을 주장하는 세력 역시 그들 스스로도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좀 더 중요하게 여길 점은 노동자의 임금은 고객의 주머니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동차용강판를 주로 만드는 광양제철소의 경우 그들의 임금은 고객사인 자동차회사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삼성 휴대폰 제조공장의 노동자 임금은 고객에 의해 결정된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고객없이는 노동이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런차원에서 고객의 만족도가 노동자의 임금을 결정한다.
이제 필요한 노동자는 개인의 직무에 충실하여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자일 것이다. 반면 비정규노동자의 생산력이 월등하게 앞선다면 다시 그에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노동시장의 정의의 원칙이 될 것이고 이를 임금상승분으로 처리할지 정규직 전환으로 보상할지는 기업의 책임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같은 평등주의적 발상이 아니라 동일 시간당 생산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고 있는지 따져묻고 법적보호장치를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소임이다. [데일리안 광주전라=박종덕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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