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다문화주의와 이슬람에 대한 증오범죄는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노르웨이 연쇄테러는 잠을 깨우는 일종의 자명종이다."
이번 노르웨이의 연쇄테러가 이슬람계 이민자들에 반대하는 극우인종주의 혹은 기독교 근본주의자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유럽은 물론 적극적 이민정책을 받아들이고 있는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최근 각종 다문화가족 지원책을 내놓으며 다문화 국가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필요가 있다. 한국 역시 다문화가정과 이민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반 다문화 정서도 함께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유럽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한국은 종교갈등이 없는 나라, 이민자 모국과도 종교갈등 가능성 없어
첫째, 한국에 거주하는 귀화자 및 외국인 수는 126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5% 대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8%대는 물론 타 유럽국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아직 다문화 국가의 시작단계라는 것이다.
둘째, 반대로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이민자수는 6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숫자만으로도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이고, 인구비로 따지면 전 세계 1위이다. 국내에서 다문화 가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전 세계에 나가 있는 한국계 다문화가족의 숫자가 훨씬 많다. 즉 국내의 다문화 정책은 600여만명의 한국 이민자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다문화콘텐츠협회가 준비 중인 ‘한-필리핀 다문화 콘서트’에 대해 주한 필리핀 대사관과 함께 필리핀 한인회가 대환영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셋째, 한국은 유럽과 달리 종교갈등이 극히 없는 나라이다. 유럽에서의 다문화 충돌이 일자리와 같은 경제 문제를 제외하고는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십자군 원정 이래 뿌리깊은 역사적 갈등이란 점에서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국은 3대 종교인 기독교, 불교, 천주교가 평화롭게 공생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물론 이는 이념 갈등이 워낙 심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좌우 모두 3대 종교 지도자들이 시국선언을 함께 하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한국의 다문화 이주여성 비율 1위 국가인 베트남은 불교, 2위인 필리핀은 카톨릭, 그 이외에 이민자수가 많은 태국은 불교, 몽골 역시 티벳불교 등으로 한국의 3대 종교와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필리핀 이민자의 경우 혜화성당에서 한국인과 함께 미사를 같이 할 정도로 종교적으로 이미 화합되어있다.
넷째, 한국은 경제적으로 대외 무역비중이 80%를 차지하는 통상국가이다. 이제껏 수출 주도형 경제에서 90년대부터 기업들이 주로 해외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이와 반대급부로 중소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는 것은 한국의 경제구조로 볼 때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이 때문에 신속히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고부가가치의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 한국인과 이주노동자 간의 일자리 다툼이 없도록 해야 하고, 지금까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다섯째, 한국은 90년대 중반 이후에 한류현상으로 인해 아시아의 문화중심국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주여성과 이민자들은 모국에서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체득하고 들어온다. 이는 마치 미국이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성장하는 데 미국의 대중문화가 큰 역할을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한국은 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의 다문화주의가 실패했다고 해서 다문화정책을 전면 수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세부정책을 가다듬어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아시아 문화네트워크 국가로 발전시킬 기회로 삼아야 한다.
유럽의 부작용, 미국의 성공사례 검토하여 한국식 다문화주의 발전시켜야
첫째, 미국의 경우 건국 초기에 이주했던 네덜란드나 이탈리아계 이외에도 각종 이민족들이 자신의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이를 모두 미국의 가치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가장 대표적인 민족이 한민족이다. 미국 내 한국의 이민자수는 약 200만명이며, 이들은 각 주마다 한인회를 조직하여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교류의 첨병 역할을 하며 양국의 국익 모두에 기여하고 있다. 이탈리아계, 독일계, 스페인계, 인도계 유태계, 일본계 등등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한국에 이민을 온 필리핀, 베트남, 태국, 몽골 등의 이민자들은 아직 자신들의 문화를 한국에 적극 보급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국력의 차이로 볼 수도 있겠으나, 30년 전만 해도 한국의 국력 역시 이들과 별 다르지 않았다. 이들 나라들과는 한국과 종교적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한국 문화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이민자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이들의 문화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를 석권한 데에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할리우드에서 일을 하고 있는 덕이 크다.
둘째, 초중고등학교 세계사 과목에, 기존의 미국, 일본, 중국 이외에 아시아의 역사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어차피 한국은 아세안과 FTA를 체결하여 경제권이 통합되고 있다. 특히 남북통일이 된다면 아세안은 물론 중앙아시아와의 경제 및 문화교류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아시아 각국의 역사는 대부분 식민지를 경험하여 한국과 유사하다. 청소년 시절부터 이들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셋째, 아직까지 1년에 천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청년들의 아시아국가에 대한 IT 및 종교 봉사활동을 대폭 늘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시절부터 이를 강화하여 아시아 글로벌 리더 양성을 정책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나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는지 모르겠다. 미국의 경우 평화봉사단이 전 세계에서 활동해왔다. 미국이 세계 강국이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체되어있는 유럽과 한창 뻗어나가야할 대한민국의 다문화정책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유럽에서의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하되, 한국은 오히려 미국의 성공사례도 감안하여, 한국에 걸맞는 다문화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우파는 이주민 한국화, 좌파는 이주노동자 인권 강조,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지금껏 한국에서는 우파진영이 다문화가족 이주여성의 한국적응에 초점을 맞춰왔고, 좌파진영은 좋게 말하면 보편적 노동인권, 제대로 말하면 불법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비호에만 관심을 가져왔다.
이제 양 진영 모두 다문화 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근대 이후 한번도 타국을 침략한 바 없고,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이루며 문화적 동력을 축적했으며, 이미 600만명의 동포들이 전 세계에 나가 있다. 이는 일본이나 중국도 따라올 수 없는 아시아 문화네트워크 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고유의 자산이다. 바로 이를 근거로 일찌감치 한류를 예견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한국인 아니라 일본의 역사학자 와다 하루끼였다.
한류가 처음 이슈가 되었을 때, 대한민국이 미국과 일본의 문화 식민지로만 알고 있던 식자층은 우왕좌왕했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성공적인 다문화 국가가될 수 있다고 믿고 있을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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