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보 및 독자의견
후원안내

기타


배너

김문수와 김경재 VS 손학규와 진중권

전향과 변절의 차이는 시대와 명분과 논리이다

지난주 미디어워치 정해윤 객원논설위원의 칼럼에서 김문수 지사의 전향과 손학규 대표의 변절 관련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전향’은 가치중립적인 단어인 반면 ‘변절’은 매우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향’은 자신의 과거 노선의 그릇됨을 깨닫고, 새로운 노선을 찾아나선다는 의미인 반면, ‘변절’은 노선이나 사상과 관계없이 양지를 찾아 쫓아다닌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전향이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과거행적 자체를 부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적 리더로서는 중대한 결격사유가 된다.

단순하게 김문수와 손학규의 차이를 구분하라면, 김문수는 한번 바꿨지만, 손학규는 한 번 바꾼 뒤, 한 번 더 바꿨다는 것이다. 손학규가 민주화세력이므로 다시 민주당에 들어가는 게 문제가 없다면, 김문수 역시 언제라도 다시 들어가면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손학규 이외에도 김부겸, 김영춘 등 친 손학규 계파에는 손학규처럼 두 번 전향한 경우가 많다. 손학규를 당대표로 받아들인 민주당과 친노언론사에서 한나라당의 민주화세력에 대해 변절은커녕 전향이라 비난할 자격도 없다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과 존 맥케인, 그리고 앤드류 존슨, 영국과 미국의 사례

주로 손학규 대표와 같은 정치 철새들이 외국의 사례로 드는 것은 윈스턴 처칠이다. 처칠은 수상이 되기 전 수차례 당적을 바꾼 바 있다. 그러나 처칠은 시종일관 반공자유주의 사상을 바꾼 바 없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정책들이 당과 안 맞을 때, 해당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당을 옮긴 것일 뿐이다. 또한 영국은 한국과 달리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정책 하나라도 당의 결정은 절대적이다. 당의 결정에 따르지 않으면 내각책임제의 특성 상 제명을 하기 때문에 소신을 지키려면 당적을 옮겨야 한다.

대통령 중심제를 택한 미국의 경우 당적을 옮기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대통령 중심제에서의 국회의원은 상대적으로 당의 방향과 달리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역시 여당이나 야당과 관계없이 이른바 등거리 관계를 유지한다. 정부 정책 통과를 위해 야당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협조요청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나프타 체결 비준 동의안 건 때, 클린턴 대통령은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의 도움을 더 크게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때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부시와 격렬하게 대립했던 맥케인이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길 것을 고민했을 때, 미국 정계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맥케인은 당적을 옮기지 않고 2008년 대선에서 부시의 지원을 받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미국과 똑같은 대통령 중심제를 택한 대한민국의 정계에서 전향자 혹은 변절자 혹은 탈당자가 난무하는 이유는 가파른 민주화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민주화와 동구권 붕괴, 시대가 만들어낸 전향자

1987년 제도적 민주화가 성립된 뒤, 90년대 초반에는 동구권이 붕괴되었다. 민주화 세력에게는 갑자기 타도해야 할 거대한 적도 사라졌고, 든든한 사상적 배경인 공산주의 이념도 크게 흔들렸다. 이 시기에 마침 노태우 정부는 3당 합당을 단행하며 민주화세력인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을 포용했다. 거대 야당인 통일민주당 세력 전체가 전향을 하게 된 셈이다.

특히 1992년에는 호랑이굴에 들어가겠다던 김영상 후보가 당당히 보수정당 민자당 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사상적 전향을 고민하던 민주화세력을 끌어들였다. 이 때 이른바 이재오, 김문수 등 민중당 세력이 대거 현실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손학규 대표도 이 시기에 김영삼 정부에 합류한다. 민주화세력이 보수정당에 포진하게 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전향은 역사적 흐름 탓에 변절이라 볼 수 없고, 어찌보면 전향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남이 묻지 않아도 알아서 사회주의 정책의 맹점을 간파하고 사상을 전향했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김문수 지사 이외의 인물들은 스스로 전향이라는 말도 쓰지 않는다.

이들과 약간 다른 흐름에서 전향을 한 세력이 있다. 현재의 뉴라이트의 주류를 이루는 이른바 주사파 전향자들이다. 이들은 80년대 제한된 정보를 통해 친 김일성 사상을 주입받았다가, 민주화로 인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며 북한 민주화론으로 전향한다. 이들 역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변절이라 할 수 없고, 그야말로 전향이다.

좀처럼 전향이니 탈당이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는 미국 정치사에서도 가장 극렬한 대립구도가 형성되었던 남북 전쟁 전후로 역사에 남을 전향자가 나오니 바로 링컨의 후임 앤드류 존슨 대통령이다. 링컨은 공화당 소속이었고, 앤드류 존슨은 민주당이자 남부인 테네시주 상원의원이었다. 남북대립으로 테네시주가 연방을 탈퇴하자 앤드류 존슨은 홀로 연방에 남는다. 이를 눈여겨 본 링컨의 추천으로 앤드류 존슨은 링컨과 함께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겨 부통령에 당선되었고, 링컨 사후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앤드류 존슨은 자신을 스카웃한 정당 공화당과 사사건건 충돌하다 공화당 의원들에 의해 탄핵 위기에 몰렸다가 가까스로 한표 차로 직을 유지하기도 했다. 앤드류 존슨은 급변하는 시대가 전향자를 배출한다는 가장 좋은 사례가 된다.

김문수와 아스팔트 우파는 정서적 공감, 손학규의 노선은 여전히 미스테리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념이라는 것은 비단 머리 뿐 아니라 삶의 태도까지 결정한다. 김문수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이나 도지사 시절 서민의 바닥층을 몸으로 부딪혀가는 정치를 해왔다. 이에 대해 김지사는 “노동운동하던 시절부터 그렇게 해왔을 뿐”이라 답변한다. 김지사가 한나라당 내의 이른바 웰빙파와 체질이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역시 현장을 누비는 이른바 정통 아스팔트 우파와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이유도 바로 사상보다는 삶의 태도와 더 관련이 깊을 것이다.

손학규 대표는 현재 김지사와는 정 반대의 문제를 겪고 있다. 아무런 명분도 시대적 흐름도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한나라당에서 대선후보가 되기 어렵다는 판단에 민주당으로 옮긴 손학규 대표는 두 번의 당대표가 된 지금조차도 어색하다. 손대표는 당적을 옮기면서 한미FTA부터, 야권단일화, 대북정책 등 국가 중요사안에 대한 노선을 180도 바꾸었다. 한나라당에서는 사안이 터질 때마다 이 부분을 공개 질의하지만 손대표는 대체 왜 노선을 바꾸었는지 단 한 번도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리더로서 자신의 노선 전향을 설명하지 못하는 잠재된 시한폭탄을 들고 대권을 노리고 있는 겪이다.

40년 민주당원 김경재 전 의원의 사례도 검토해볼 만하다. 김경재 전 의원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망명 16년 간 해외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과정까지 마치다보니 자연스럽게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에 눈을 뜨게 된다. 일반 민주화운동세력과 달리 반미노선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이다. 김경재 전 의원은 사석에서 “만약 미국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광화문에서 촛불이나 들고 있었을 것”이라 회고한 바 있다. 이는 영국에서 유학한 손대표도 마찬가지일 것이나, 민주당으로 옮긴 뒤, 운동권세력과 함께 집회와 민생투쟁현장을 누비고 다니고 있다.

민주노동당 따라 너도나도 친북좌파로 전향한 민주당 탓에 우로 밀려버린 김경재

그러다 이명박 정권 들어 광우병 선동과 노대통령의 죽음 이후 민주당의 동료들이 너도나도 민주노동당과 연합한다며 묻지막식으로 좌로 이동했다. 민주당의 실용노선의 대표적인 인물인 정동영 최고위원마저 강기갑식 친북, 세금복지 노선으로 전향해버렸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김경재 전 의원은 상대적으로 우로 밀리며 주사파와 뉴라이트에 발 한 번 담근 바 없음에도 아예 뉴라이트로 전향했다는 댓글까지 올라올 정도이다. 15년 한나라당원이자 유력 대선주자였던 손학규가 왼쪽에서, 40년 민주당원 김경재가 오른쪽에서 순천 재보선을 치르게 되는 희한한 광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90년대 세계사적 격변 속의 전향과 달리 노무현 정권의 반복적인 분당과 합당, 이명박 정권 하에서의 여야 극한 대립 속의 전향은 실제로 권력과 연관이 더 깊다. 역시 이에 상징적인 인물은 손학규 대표이다. 그래서 이번 재보선은 손학규 대표에 대한 심판의 장이 될 수밖에 없고, 만약 이번에 손학규 대표가 심판을 받는다면, 향후 권력에 따라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전향 혹은 변절하는 정치인과 지식인에 대한 대대적인 심판의 장이 열리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온갖 수혜를 누리며 좌파정당 독자노선의 선두주자로 뛰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자 무조건 정권 탈환해오자며 자신이 그토록 비판해온 민주당 중심 연합론을 주장하는 진중권의 변절도 마찬가지이다.

개개인의 책임을 묻겠다기 보다는 90년대부터 얽히고 설킨 대한민국 사상과 노선을 통일 시대를 맞아 정리해놓아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 변희재



배너

배너

배너

미디어워치 일시후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현대사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