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 미디어워치 15호에 실린 발행인 칼럼입니다.
MBC의 한 아끼는 후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배는 여러 가지 조건도 되는데 왜 MBC나 메이저 언론사에 입사를 안 했어?” 이 후배야 선의로 한 말이지만, 나로서는 젊은 언론인들의 인식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이 후배 뿐 아니라 MBC에 있는 젊은 기자와 PD들 다수가 이런 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봐야 너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MBC 직원일 뿐이다”
MBC의 젊은 벗들이여, 우리 386 이하 젊은 언론인들끼리만이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MBC에 입사했는가? 당신들이 생각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당신들은 20년 뒤에 어떠한 언론인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인가?
사회의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고발자가 되기 위해서? 정권의 탄압을 막아내어 언론독립을 지켜내기 위해서? 국민들에게 언론인으로서 비전과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서?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드라마와 예능오락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이제부터 이런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MBC 기자가 한겨레 기자보다 4배 이상 능력이 더 뛰어난가
내가 답을 내려주겠다. 90년대와 2000년대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수도권 주요 대학 출신으로서 학점이 3.5 이상 되고, 토익이 900점 이상 되는 취업지망생이 있다고 치자. 이들이 고시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험난한 창업의 길을 가지 않는 이상, 이들이 택할 수 있는 미래는 대기업, 금융계, 그리고 메이저 언론사로 정해져있다. 개중 메이저 언론사를 택하는 친구들은 약간의 글쓰기 능력과, 약간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MBC의 젊은 친구들은 KBS와 SBS 등에 동시 지원했을 것이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에도 원서를 냈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신문시장이 위축되면서 MBC 등 방송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겠지만, 그리 큰 차이는 아닐 것이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 함께 언론사 준비를 한 동료 중에서 MBC가 아닌 한겨레나 경향신문에 입사한 친구들과 비교해보라. 입사초기부터 연봉에서 서너 배 차이가 난다. MBC의 젊은 친구들은 한겨레나 경향신문에 입사한 동료들보다 서너 배의 능력, 경제적 용어로 노동생산성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건 또 어떤가? 당신들의 회사에서 수구언론, 조폭언론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입사한 친구들과 당신들의 이념 지향점이 그렇게 큰 차이가 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즉 MBC에 입사한 당신들은 지고지순한 개혁성을 갖추고 있고, 조중동에 입사한 친구들은 수구세력의 주구라 비난할 판단 근거를 갖고 있는가? 양심과 지성을 갖춘 MBC의 젊은 언론인들이라면 아마도 단 한 명도 이에 대해 답을 하지 못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MBC의 직원으로서 갖고 있는 자부심의 본질은 대체 무엇인지 자문자답해보라. 우리들의 부모님들 세대가 평가하는 높은 연봉, 안정된 지위 이외에 무엇을 내세울 수 있는지 찾아보라는 것이다. 아마도 KBS나 SBS보다 더 개혁지향적이라는 답을 할 것 같다.
여기까지 공감한다면 앞으로 쉽게 논의할 수 있을 것 같다. ‘PD수첩’의 검찰수사 발표와 ‘손석희의 100분토론’의 시청자 의견 조작 사례, 딱 이 두 건만 놓고 이야기해보자. 고등학교 수준의 영어 실력만 갖춘 사람이라면, ‘PD수첩’의 번역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가지 치밀한 계획 하에 벌어진 조작 사건이라는데 동의하지 못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광우병의 위험성을 널리 알렸으니, 의미있는 보도가 아니냐는 아마튜어 같은 이야기는 그만하자. 검찰이 지적한 대로 취재원의 발언을 정확히 번역해서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었을 때, 그 내용 가지고도 광우병의 위험성을 알릴 수 있었는지, 언론 전문가로서 판단해보라는 것이다.
‘100분토론’은 또 어떤가? 시청자 의견이라고 소개한 내용들이 시청자가 전혀 쓰지 않은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그것도 한두 건이 아니라 매회 방송 때마다, 특정 정치세력에 유리하도록 조작되어있다. 내가 방통심의위원회 측에 “이런 사례가 과거에 또 있었냐”고 문의했고, 방통심의위원회에서는 “전례가 없다”는 답을 했다. 한국 방송 사상 유례없는 토론 프로그램의 조작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조작의 당사자들의 태도이다. ‘PD수첩’의 조능희 PD는 “지엽적인 것만 문제삼았다”, MBC노조는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다”라고 최소한의 언론인으로서의 윤리적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100분토론’ 제작팀은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의 사과만 하고, 본질적인 시청자의견 조작 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역사에 남을 만한 언론인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본이라도 갖춘 정상적인 언론인이 되고자 했을 MBC의 젊은 친구들도 이들의 태도에 동의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논의의 의미는 없다. MBC의 젊은 언론인들마저 정략에 물든 386 정치꾼들과, MBC의 기득권 지키는데 혈안인 사내 수구세력들과 똑같은 수준의 의식을 갖고 있다면, MBC는 그냥 폐쇄시켜버리는 게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
MBC 내부에서 “이건 아니잖아”라고 비판할 용기있는 젊은 언론인은 있는가
그러나 최소한 10명이라도 이에 동의하지 않는 젊은 친구들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대체 뭘 해야되겠냐는 것이다. ‘PD수첩’과 ‘100분토론’ 등 MBC 간판 프로그램, 선의의 오보가 아니라, 아예 고의적 조작을 해버린 것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는 젊은 언론인들, 지금 당신들은 MBC 내에서 소신 발언할 수 있는가? 국민의 소유인 MBC가 이런 파렴치한 행태를 보인 것에 대해, 그리고 사과는커녕 정치투쟁으로 몰고 가는 이 흐름에 대해 “이건 아니잖아”라고 외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젊은 언론인이 MBC내에 있는가?
MBC의 선임노조들은 젊은 후배들이 롤모델로 최문순 현 민주당 국회의원을 꼽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러한 판단에 추측으로나마 동의할 수 있다. 강경 노조원에서 노조위원장으로, 노조위원장에서 MBC 사장으로, MBC 사장 그만두자마자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출세가도를 달린 최문순 모델이야말로, 당신들이 MBC에서 찾은 미래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는 자는 그럼 다시 반복되는 질문에도 답하라. 시사프로그램을 상습적으로 조작하고, 그것이 만 천하에 드러나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음모론으로 버텨나가는 MBC 내의 386 정치꾼들에 대해 젊은 언론인으로서 “이건 아니잖아”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가?
지금까지는 없어 보인다. 아니 앞으로 영원히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 원 질문으로 돌아간다. 당신들은 MBC에 왜 입사했고, MBC 직원으로서 갖고 있는 자부심의 원천 근거는 무엇인가? 자기 사내의 명백히 잘못된 범죄 행위에 대해서조차 한 마디 못 하는 자들이 사회의 부조리를 캐내고, 사회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그 역할을 수행해도 되는 것인가? 386 정치꾼들이 지시하는 방향대로 따라만 가면 언젠가는 최문순씨처럼 출세가도를 달릴 있을 거라는 희망이 진정 내면에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추측은 그만두고 내가 확신할 수 있는 답은 줄 수 있다. 아무리 충성해도 당신들 내에서 제2의 최문순은 절대 나올 수 없다. 최문순의 성공은 사측과 노조와 정치권이 똘똘 뭉쳐 패거리를 형성해온 386의 시대에서나 가능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2-3년만 지나도 이제 실력없는 언론인들은 퇴출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전문화 시대가 도래한다.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언론인들, 그리고 이를 비판할 용기조차 없는 언론인들이 모여있는 MBC의 미래는 지금으로서는 없다. 그러니 당연히 제 2의 최문순의 미래도 없다. 이대로 낡은 386들과 함께 퇴출당할 것인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인가, 당신들이 원하지 않아도 판단해야할 시기가 점차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 변희재 주간 미디어워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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