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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 이겨봤던 신세대들의 마지막승부"

대한민국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도전하는 청춘이 사라졌다


*주간미디어워치 7호 기사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케빈 베이컨과 로리싱어 주연의 1984년 최고의 청춘 영화 ‘Foot loose'를 리메이크 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Foot loose'는 춤이 금지된 마을에 전학온 한 고교생이 동료학생들과 함께 완고한 마을 분위기를 바꾸며 축제를 이끌어낸다는 미국 청춘들의 진취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최근 미국 영화계에서는 비단 ‘Foot loose' 뿐 아니라 도전하는 청년들을 소재로 한 영화가 붐을 이루고 있다.

불량한 학생이 예술고등학교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하며, 무용단에 합류하여 새로운 꿈을 찾는다는 ‘Step up', 가족과의 불화를 이겨내고 이종격투기 대회에서 우승하는 청년을 그린 ’never back down' 등 저예산 흥행작은 물론, 외계의 로봇을 젊은이들의 IT 기술과 감각으로 물리치는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등등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록가수로서의 성공을 꿈꾸는 일본 최고의 가수 나카시마 미카 주연의 ‘나나’는 일본은 물론 동남아시아에 흥행돌풍을 몰고 왔고, 낙제 여고생들의 스윙밴드 도전기를 그린 ‘스윙밴드’, 남학생들이 수중발레에 뛰어드는 코믹물 ‘워터보이즈’ 등 수도 없이 많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경우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도전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사실 상 완전히 사라졌다. 한 나라의 미래를 보려면 그 나라의 청춘을 보면 되고, 그 나라의 청춘을 보려면 그 나라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된다. 그 점에서 미국과 일본과 달리 청년이 사라진 한국의 브라운관과 스크린의 황량한 모습은 심상치 않다.

1993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여로 모로 의미심장한 일들이 벌어졌다. 최초의 문민정부가 출범했고, 한국 음악의 선진화를 앞당긴 서태지가 데뷔했으며, 하이텔, 천리안 등 PC통신이 상용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변화를 묶어 ‘신세대’라는 386세대 이후의 새로운 세대 논쟁이 점차 뜨거워졌다. 신세대는 정치투쟁 중심의 틀을 넘어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며 문화영역을 점차 확대해나간다는 진단이었다. 2009년 현재 시점으로 볼 때 이러한 신세대 논쟁은 왜곡되고 과장되었다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토록 창의적으로 도전적이라는 신세대들은 다 사라지고 ‘이젠 정규직이 되고 싶어요’라는 88만원세대 담론이 청년층을 지배하고 있다.

1994년 서장훈, 이상민 등의 신세대 농구혁명

그러나 1993년과 1994년 신세대들이 단 한 번의 승리를 거둔 기록이 있으니 바로 농구였다. 80년대 한국 농구는 대기업 삼성과 현대가 양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서장훈, 문경은, 우지원, 이상민으로 구성된 연세대와, 현주엽, 양희승, 전희철, 신기성 등의 고려대가 실업팀을 압박했다. 이들은 모두 93학번 혹은 94학번이었다. 특히 서장훈이 참여한 93-94시즌에서는 연세대가 삼성, 현대, 기아 등 쟁쟁한 실업팀을 모두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한다. 이들은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은 물론 대부분 덩크슛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기성세대를 힘과 높이에서 압도했다. 바로 이 순간, 대중매체와 광고에서 바람을 일으켰던 신세대 혁명은 조만간 이루어질 듯했다. 농구에서 대학팀이 기성세대를 이겼는데 사회에서라도 뭐 큰 차이가 있겠냐는 것이다.

이러한 농구열풍은 대중문화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일본 만화 ‘슬램덩크’가 당시 신세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는 정치적 이념도 성공에 대한 집념도 없이 오직 짝사랑하는 여자 소연의 마음에 들기 위해 농구를 시작한다. 이러한 강백호의 캐릭터는 개인적 삶을 추구하는 신세대들과 딱 맞아떨어졌다.

‘마지막승부’, ‘슬래덩크’와는 또 다른 진지함

반면 1994년 1월부터 방영된 MBC의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는 ‘슬램덩크’와는 조금 달랐다. 사회성을 강조했던 극작가 손경목의 극본대로 불우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청년들이 농구를 통해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지막승부’의 주인공 철준(장동건)과 동민(손지창)은 오직 농구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 고등학교 시절 팀의 에이스였던 동민은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자신들의 친구들을 함께 받아주기로 한 대학과의 약속을 어기고, 다른 대학으로 진학한다. 그 바람에 철준은 대학 진학에 실패하게 된다. 이때부터 절친한 두 친구는 서로의 인생을 담보로 농구를 통한 치열한 승부를 벌인다.

‘마지막승부’와 ‘슬램덩크’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진지함이었다. ‘마지막승부’의 주인공들은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비교해 훨씬 더 진지했다. 철준과 한영대에서 같이 뛰는 고아 출신 농구선수 선재(이종원)는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최강팀 동민의 명성대와의 일전에서 부상으로 코트를 나가게 된다. 그때 그는 철준을 붙잡고 이렇게 다짐을 받는다.

“단 한 번만 이겨보자. 한 번이라도 좋다. 이기지 못하면 죽여버리겠다”

결국 철준의 활약으로 한영대는 극적으로 명성대를 이겼고, 병원에 실려 간 선재는 목발을 집은 채 환호한다. 이 장면 역시 ‘마지막승부’ 최고의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들은 승부 하나하나에 진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이 단 한 번의 승부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도 알고 있었다.

기성세대의 서구 콤플렉스를 극복한 덩크슛

‘마지막승부’는 철준이 덩크슛을 성공시키면서 끝을 맺는다. 덩크슛은 미국의 NBA에서나 볼 수 있는 꿈의 슛이다. 그 점에서 덩크슛은 동양인의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90년대 최고의 발라드 가수 중 한 명인 이승환도 바로 이 점을 착안해 ‘덩크슛’이라는 노래를 발표할 정도였다.

이러한 신세대들의 서구에 대한 신체 콤플렉스 극복은 이후 동양인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수영의 박태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의 탄생으로 완벽한 결실을 맺게 된다. 이제 서양인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에 빠진 젊은 세대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또한 그 당시 농구혁명의 주역들인 서장훈, 이상민 등은 여전히 프로농구를 주도하고 있고, ‘마지막승부’의 스타 장동건은 한류스타로 우뚝섰다.

‘마지막승부’는 드라마 사상 최초로 스포츠를 소재로 다루다보니 일반적인 드라마와 달리 카메라 기법 등에서 괄목할 성장을 보여주었다. 이는 바로 다음해 방영되는 영상 미학을 추구한 드라마 ‘모래시계’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브라운관 혹은 스포츠와 대중문화에서의 신세대들의 꿈은 현실에서 좌절되고 만다. 여전히 사회를 실제로 움직이는 정치, 경제, 문화 영역에서의 권력자들은 386세대이다.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선 신세대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란 좀처럼 보기 어렵다. 특히 2000년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서조차 청년들의 모습은 양념으로서 시청자와 관객을 웃겨주는 삐에로 역할로 국한되었다. 고민하는 청춘도 도전하는 청춘도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특히 진중권 등 386패거리들은 젊은 세대를 향해 “독서도 하지 않고 체제를 전복할 의지도 없으니 미래가 없다”며 386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한심한 것은 이러한 386들의 선동에 젊은 기자들이 휘둘리며 이를 확장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한 번만이라도 이겨보자’고 절규했던 ‘마지막승부’의 선재의 말은 신세대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 신세대들은 기성세대를 농구혁명으로 단 한 번만 이겨봤을 뿐, 다시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승부’ 이래 현실에서도 브라운관에서도 청춘은 없다. 즉 대한민국의 미래가 사라진 셈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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