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28일 한중 재계회의 참석차 탑승한 중국 베이징(北京)행 전세기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날 있었던 청와대 '민관 합동회의' 내용을 소개하는 한편 경제현안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조 회장은 "청와대 회의에서는 군사시설 보호 규정과 지나치게 높은 최저임금, 상속세제, 담합을 불가피하게 하는 입찰구조 등 기업의 애로사항이 구체적으로 지적됐으며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재계의 건의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면서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조 회장은 재벌이 경영권을 상속하는데 연연해서는 안되며 "자식에게는 필요한만큼 물려주면 된다"는 소신을 피력했고 이번 한중 재계회의에서는 동아시아 경제권 형성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조 회장과의 일문일답.
--청와대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애로사항이 지적됐나.
▲예를 들어 제2롯데월드 건설을 추진하는 데 있어 군사시설과 관련한 고도제한 문제가 거론됐다. 군사시설 주변에서는 주택이나 학교 등 일체의 건물 신축이 불허되거나 군부대측의 동의가 있어야 형질변경 등 행위가 가능하다. 이만큼 평화와 안정을 찾았으니 이제는 군사시설도 축소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비켜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간단히 결론내리기는 쉽지 않은 문제지만 적극 검토하겠다. 협의, 검토해 될 수 있는 일이면. 정부에서 '어렵다' 이야기하는 것도 큰 문제가 없다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는 이야기를 했다. 현재 월 최저임금이 80만원대인데 초과근무수당이나 보너스 등을 합하면 110만원이 넘는다. 1인당 국민총생산(GDP) 대비 최저임금이 선진국의 2배에 달한다. 더욱이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이 똑같이 적용되다 보니 우리는 외국인 근로자를 쓰는 메리트가 없다. 외국은 외국인근로자들은 최저임금을 차별적용하고 있다.
한전이 전기를 공급할 때 기업에게 변전소에서 전기를 따가라고 한다. 송전선은 기업이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공장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건설되는 경우가 많다. 송전거리가 멀다보니 송전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땅주인과 협의하는데 죽을 고생을 한다. 한전은 이런 분야의 전문가이니 한전이 하는 것이 낫지 않나. 재벌과 교섭할 때와 한전과 교섭할 때는 교섭의 내용이 달라진다.
담합을 낳을 수밖에 없는 입찰문제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예를 들어 도로를 건설하는데 10개 구간이고 응찰하는 업체가 10개 업체면 나눠먹게 마련이다. 그런데 다리를 건설하는데도 10개 구간으로 나눈다. 입찰도 국제적인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수도권 규제완화와 지방균형발전에 관해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IT, BT 같은 첨단기업은 고급인력 확보가 관건이다. 이런 인력이 "서울을 안떠난다"고 하는 실정이어서 첨단산업은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한다. 수도권 기존공장 증설도 문제다. 기존에 공장이 있고 증설할 필요가 있다면 바로 옆에 지어야 기존 인프라나 지원시설, 관리인력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공장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수도권에서 공장을 지으려면 다른 공장을 그만큼 허물어야 한다는 규정까지 만들었다.
기업이 지방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방법으로 기업도시 사업을 들 수 있다. 관광인프라나 자원을 개발하는 것이다. 기업도시는 관광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대통령은 기업도시에 대한 전경련의 설명을 듣고 "좋은 아이디어 아니냐. 되는 방향으로 하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업도시의 애로사항은 지자체가 도로와 상수도 등 인프라를 건설해주도록 돼 있는데 안해준다는 점이다.
--관광산업 개발과 관련한 건의사항은.
▲호텔, 리조트, 골프장 등은 모두 토지를 많이 사용하는 사업인데 보유세 등이 과다해 좀 줄여달라는 건의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골프하는 비용이 일본보다 비싸다.
--과거 대통령과의 대화와 다른 점은.
▲옛날에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경제가 잘돼 가는데 무슨 문제냐"는 입장이어서 우리와는 톤이 달랐다. 지금은 오히려 정부가 경제살리기를 주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실무를 한 사람이므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해 갈 수 있다.
--박정희 전(前) 대통령과 이 대통령을 비교한다면.
▲박 전 대통령은 가난에서 탈출한다는 의미의 경제개발에 주력했다. 굉장한 사명감이 있었다. 우리도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일하는 맛이 있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이 대통령은 그대신 경제에 대한 열정만큼은 박 전 대통령과 다른 점이 없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보기에는 "국민이 경제살리기를 위해 나를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오후 6시30분 저녁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길어지자 사회자가 말을 자르고 "식사하면서 합시다"라고 이야기해야 할 정도였다.
--우리의 경제상황을 진단한다면.
▲우리경제는 살아난다. 왜냐하면 여태까지는 일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면서 침체됐기 때문이다. 30대그룹의 투자계획이 자꾸 늘어난다. 1월에 취합할 때는 작년대비 19.1% 늘었다가 3월말 조사 때는 23%로 증가폭이 확대됐다.
--청와대에서 투자를 독려하는데 부담은 없나.
▲우리가 중국과 코스트 경쟁을 할 수는 없다. 기술과 노하우를 차별화해 비싸게 받을 물건을 만들면 된다. 노사가 화합해 만들면 이길 수 있다. 그런데 노조가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품질을 떨어뜨리고 일을 안한다든지 사보타지를 하면 안된다.코스트 경쟁이 아니라 브랜드, 품질로 승부를 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이다.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이 왜 외국에 투자하다 본국으로 복귀하겠나.
--이번 한중 재계회의의 의의는.
▲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경제권을 형성해 역내 발전을 이루자는 제안을 할 예정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등에 우리가 끌려다닐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지적할 것이다.
--중국이 한국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는데.
▲중국이 따라오는 속력이 빠르다. 우리는 달아나야 한다.그러나 대량생산은 중국이 낫지만 손님이 뭘 원하는지 빨리 알아내 조정하는 능력은 우리가 낫다. 이번 회의에서 중국 재계 지도자들에게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힘쓰고 있으니 한국에 적극 투자해 달라"고 당부할 생각이다. 중국 자본의 국내기업 인수로 기술유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우리만 잘 하면 걱정할 필요없다. 중국 자본이 대우조선을 인수한다고 해서 대우조선을 쓰러뜨리고 중국에 공장을 짓는 것은 아니지 않나.
--경영권 승계에 대한 견해는.
▲사업가에게는 사업을 얼마만큼 번창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사업하는 사람의 생명이다. 자식은 먹고살만큼 물려주면 된다. 다만 누가 미덥고 사업을 맡길 수 있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너경영을 바라보는 이상한 흐름이 있지만 주인의식에 있어서는 오너경영을 못따라 간다. 주인의식이 철두철미하면 나머지는 배우면 된다. 그 정도도 안되는 자식에게 사업을 물려줄 수는 없다. 대대손손 남기고 싶다는 욕심은 사욕이다. 사업을 얼마나 영속화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예전에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상속세 인하를 건의하자 "부의 세습은 안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합법적인 부의 세습이 왜 안되나. 그 이상의 코멘트는 하지 않겠다. 예전에 고촉동 싱가포르 전 총리를 만났을 때 싱가포르가 상속세를 폐지한 이유에 대해 들었다. "돈있는 사람들이 변호사를 대고 어쩌고 해서 세금을 안내더라. 세금 과중한 나라는 외국으로, 합법적으로 다 빠져나간다. 세수에도 크게 기여하지 않는 상속세는 효과가 없다. 그래서 자본유치 차원에서 아예 폐지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도 상속세로 걷어들이는 돈이 연간 7천억-8천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안다.
기업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상속세를 내기 위해 기업의 반은 팔아야 한다. 세금은 자발적으로 내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해야 한다.
--한일 FTA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교역만 보면 한일 FTA는 우리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투자에 관해서는 우리가 코스트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일본자본의 국내투자 유치, 제3국 자본의 국내유치 등에 도움이 된다. 결국 어느 시점에 초점을 맞추느냐, 롱텀이냐 숏텀이냐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질만큼 복잡한 문제다.
--삼성 이수빈 회장은 전경련 부회장직을 이어받나.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봐야겠다. 아직 삼성으로부터 어떤 의견을 들은 것은 없다.
cwhyna@yna.co.kr
(끝)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