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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박근혜 중도당은 현대사 대통합

정치는 현실이지만, 현실을 만드는 건 명분


김경재와 박근혜의 노선은 차이가 없다

김경재가 중심이 되는 호남의 중도세력과, 박근혜가 중심이 되는 영남의 온건보수세력의 통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이 사안은 단지 불합리한 기준으로 공천에 탈락한 자들의 재기라는 정치 공학적 차원을 넘어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정치적 분기점이 될 만한 사안이다.

김경재는 대학 시절부터 박정희 정권과 싸워왔고, 미국 망명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의 치부를 폭로한 중정부장 출신의 김형욱 회고록 집필했다. 이미 노무현 정권에 굴복하면서, 민주화의 정통성을 잃어버린, 김근태 등을 제치고 민주화 세력의 중심에 자라잡고 있다. 더구나 김경재는 호남 출신이다. 박지원 등 동교동파들이 부정부패로 모두 탈락하고, 박상천이 노무현의 대리인 박재승에 무릎을 꿇고 있는 상황이라면, 김경재는 경선 당시 노무현 측으로부터 억울하게 당한 한화갑과 함께 자연스럽게 호남의 대표성도 확보한다.

박근혜는 아예 걸어다니는 한국 산업화의 역사이다. 박정희 시대의 역사 전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박근혜가 지닌 역사적 가치를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박근혜는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정희 정권 시절 고통을 받은 분들게 사과드린다”는 발언으로, 화합과 통합의 정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언론에 보도되었던 김경재와 박근혜의 이념적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가장 첨예한 사안인 국가보안법과 북한, 사학법 문제만 보자. 김경재와 박근혜 둘 모두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을 가려내어, 대체입법을 하자는 쪽이다. 특히 김경재의 경우 민주당 시절 “이제 북한의 정치 공작 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열강들의 산업 스파이 등의 활동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의 대체 입법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 박근혜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는 등 탄력적인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북의 핵폭탄 실험 이후, 단호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국가안보를 책임져야할 지도자로서 이 정도의 태도를 보여주는 걸 수구세력이 비난할 수는 없다. 김경재는 김대중 정권 시절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뒤, “국민을 굶주리는 김정일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보고를 하기도 했다. 이 문제 때문에 김대중 정권에서 사실 상 주변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박근혜가 당대표 시절 올인을 걸었던 노무현의 사학법 개정 문제도 얼마든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구 민주당 내에서 김경재와 가장 유사한 노선을 걸었던 이승희 의원은 사학법 논란 당시, “정부가 지원하는 사학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의 감사를 하되, 정부 지원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사학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인정해주자”는 제 3의 길을 제시했다.

각기 민주화와 산업화의 길을 걸었던 양 정치인이, 2008년에 와서, 어떻게 정치적 노선의 합의를 이룰 수 있게 되었을까? 이는 양자의 생각 자체가 변한 게 아니라, 지난 30년 간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산업화가 점차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민주화와 산업화는 태생적 뿌리가 다르게 시작되었지만, 성숙도에 따라서 결국 합치될 수밖에 없는 노선이다.

민주화를 통해 경제 개혁이 가능했다. 반면에 경제의 성장 때문에 세계화가 진행되고, 이는 민주주의 선진국의 합리적 사고의 유입을 가져왔다. 이것이 다시 민주화에 탄력을 주었다. 4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박근혜와, 16년 간의 미국생활 경험이 있는 김경재가, 민주화와 산업화의 마인드 양자 모두를 갖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박근혜는 당대표 시절 한나라당을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했고, 김경재는 여수 엑스포 유치 활동을 통해 낙후된 호남의 경제를 살리고 있다.

영호남의 아들과 딸들에게도 지역감정의 한을 물려줄 것인가

김경재와 박근혜의 결합은 도대체 치유 방법이 보이질 않는 영남과 호남의 갈등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권 출범 이전, 호남은 김대중당 이외에 다른 정당에 표를 줄 수 없는 역사적 상처를 갖고 있었다. 최소한 2002년 대선까지, 호남의 90% 몰표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에 80%를 몰표를 준 호남의 투표성향은 타 지역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정을 완전히 말아먹든 말든, 호남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지켜주는 정치세력에 대해, 호남의 서민들이 현혹되어 투표 사고를 친 셈이다. 이러한 호남 서민들의 심리를 악용한 것이 김대중이었다. 김대중은 진보세력이 전멸당할 위기에서조차, 비리잡범 수준인 자신의 차남을 호남에 출마시켜 호남인들을 심판대에 올렸다. 그러고도 모자라, 이번 총선에도 역시 부정부패 연루자인 자신의 최측근 박지원을 목포로 내려보냈다. 이런 행태를 호남인들이 용납하는 한, 영남은커녕 타 지역인들이 호남에 기반한 정당에 표를 줄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영남의 경우 2004년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에 꽤나 많은 표를 주었다. 그 뒤에 있던 재보선에서도 이강철 등 몇 번의 아슬아슬한 승부가 연출되기도 했다. 최소한 현재 영남의 표심은 표를 찍어줄 만한 정치세력이 있다면, 지역감정을 초월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김경재 본인은 “이상하게 영남에 가면 꽤나 환영을 받는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까, 노무현 정권과 정면에서 싸우는 모습이, 경상도 사나이 기질과 맞아 보인다 이렇게 답하더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정통 호남의 민주화 세력이지만, 김대중에 가차없는 직언을 하며 변방으로 쫓겨났고, 노무현 정권과 싸우다 감옥까지 갔다온 그의 경력으로 볼 때, 영남인들이 충분히 호감을 가질 수 있다.

박근혜의 경우, 호남인들이 아직도 두려워하는 영남의 힘의 정치와 달리, 매우 온건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온건한 자세는 호남인들의 영남 정치세력에 대한 공포감을 씻어줄 수 있다. 더구나 너무나 측근을 챙기지 않아 오히려 비판을 받고 있는 그의 정치행태는, 호남인들의 영남 싹쓸이에 대한 불안감도 자제시킬 수 있다. 박근혜와 함께 움직이는 김무성, 유승민, 이혜훈 등도 마찬가지다. 이는 김경재 역시 똑같다. 김경재는 아예 계보나 계파에 속해본 적도 없는 정치인이다. 군식구들 수천명을 챙겨야 했던 김대중의 정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패거리 정치 문제가 영호남 통합의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한국의 출세법칙이기 때문이다. 영호남의 젊은 세대들 중 지역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문제는 이들이 기업이나 공기관에 진출했을 때, 윗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지역 패거리에 포섭된다는 점이다. 호남의 젊은 세대는 호남 패거리에, 영남의 젊은 세대는 영남 패거리에 들어가야만 승진이 보장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호남인들이 평생의 한으로 삼고 있는 호남차별의 멍애를 자신들의 아들과 따들에게도 그대로 물려주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패거리 정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김경재와 박근혜가 영호남의 화합을 만들어낼 가장 적격인 인물들인 것이다.

84년 신민당 복원이라는 또 하나의 통합

이러한 역사적 큰 줄기 이외에, 또 하나의 작은 통합도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현재 박근혜 측에서 신당을 추진하는 사람은 서청원과 홍사덕이다. 이들은 87년 대선 당시 김영삼 측에 있었다. 반면 김경재는 김대중 측에 있었다. 이들 이외에도, 이인제, 박찬종, 김영환, 심재권, 박주선 등등이 합류하게 된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으로 이루려다 대실패한 84년 신민당의 복원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정치는 이론도 아니고 논리도 아닌 현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을 만들어내는 힘은 명분이고, 명분은 바로 이론과 논리에서 나온다. 김경재와 박근혜의 중도통합당은 아직 현실에서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과 논리, 그리고 명분에서 나오는 힘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를 실천하고 안 하고는 정치인 개인의 자세와 판단이겠지만, 현실 정치에 발담지 않는 독립 논객이라면, 얼마든지 논의해볼 만한 흥미로운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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