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극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ㆍ안종화)는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1923) 이후 80번째로 제작된 극영화로, 흑백 무성영화다.
금강키네마사가 제작한 이 영화는 농촌 출신 젊은이들이 서울에 올라와 도시 문명과 소비문화를 겪게 되고, 도시에 기생하는 한량들의 행각으로 곤경에 처하지만 이를 딛고 일어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통속극이다.
출연진으로는 무성영화 초기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으니 당시로는 호화 캐스팅이었다. 남자 주인공인 우직한 성품의 영복은 나운규의 뒤를 잇는 당대 최고의 액션스타 이원용이 맡았으며, 그동안 필름 속에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던 '아리랑'(1926)의 여주인공 신일선이 영복의 동생 영옥 역을 맡았다. 또 '잘 있거라'(1927)의 김연실은 영복의 연인 영희 역으로 출연했다.
영복은 고향에서 7년간 데릴사위로 살았으나 아내가 될 계순이 불량한 주명구(양철 분)에게 몸을 빼앗기자 서울로 향한다. 서울역 운반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주유소 직원 영희와 사귀게 된다. 오빠를 찾아 상경한 영옥은 카페 여급으로 취직했다가 주명구의 술책으로 같은 고향 출신 장개철(박연 분)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된다. 영복은 이 사실을 알고 개철 일당을 찾아가 주먹을 휘두른다. 영복은 이후 모든 것을 잊고 영옥의 전송을 받으며 영희와 새 출발한다.
안종화(1902~1966) 감독은 배우 출신으로, 나운규를 영화계로 이끈 선배이기도 하다. 그는 감독 데뷔작 '꽃 장사'(1930) 이후 '견우직녀'(1960)까지 영화 12편을 만들었지만 필름으로는 이 영화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
'청춘의 십자로'의 질산염 원본 필름 9권을 입수한 한국영상자료원은 엔딩 크레디트 1권과 훼손이 심한 1권을 뺀 나머지 7권의 길이가 73분(1초 18프레임)이라고 설명했다. 무성영화인 이 영화에서 변사가 읽었을 대본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좁은 방안에서 거울을 활용해 촬영하는 등 당시로는 획기적인 기술적 시도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당시에도 작품성 면에서도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추청된다. '임자 없는 나룻배'의 이규환 감독은 1934년 조선일보에 실은 영화시평에서 "좀 더 새로운 수법을 보이고 조선 정서를 담으려고 혈한을 기울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보존 상태는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4일 영상자료원이 언론에 공개한 15분짜리 편집본에서는 기차가 서울역 내로 달려 들어오고 역사(驛舍)에서 중절모를 쓴 남자, 일본 기모노를 입은 여자, 한복을 차려입은 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당시의 '모던 보이'나 신여성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신여성이 홀로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남자들이 어린 소년 캐디를 데리고 다니며 골프를 치고, 분첩을 들고 화장을 고치는 여자에게 골프공이 날아가 떨어지는 장면도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이 필름에는 일부 장면이 반복되고 엉뚱한 인물이 끼어드는 부분이 있어 편집이 요구되는 원판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영상자료원은 설명했다.
김종원 동국대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는 "'청춘의 십자로' 발굴은 영상자료원의 해방 전 우리 영화 찾기 사업이 이룬 매우 괄목한 만한 성과이자 '횡재'나 다름없는 결실"이라며 "무성영화 말기 우리 영화의 형태와 수준을 엿볼 수 있고 무성영화 초기의 이름난 배우들을 볼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영상자료원은 이 필름의 영화사적 가치를 높게 보고 민간인인 자료 소장자로부터 인수했다. 영상자료원은 정확한 입수가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그동안 필름 획득에 쓴 금액으로는 최고가로, 전문가들의 평가와 희소성, 제작단가 등을 고려해 수천만 원에 구입했다고 덧붙였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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