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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2010> 무대 위의 흡연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기자 = 밥 파시(Bob Fosse)는 20세기 뉴욕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안무가다. 지금도 뉴욕, 런던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유명 뮤지컬 '시카고'나 또 다른 뮤지컬 '캬바레'에 나오는 관능적인 춤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가 만든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무대 위에서 출연자들이 흡연하는 모습이 반드시 나온다는 점. 자신이 워낙 골초였기 때문에 작품 속에 담배피는 장면을 즐겨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대 위의 진짜 흡연장면은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는 이제 어림도 없다. 주 정부가 2006년 실내흡연금지법을 만들면서 실내 무대 위에서도 어떤 형태의 흡연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뉴욕이나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등 미국 내 다른 주처럼 풀잎이나 약초를 말아서 만든 대체 담배를 피워서도 안된다. 큐어리어스극단을 포함한 덴버의 3개 극단이 수정헌법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며 극중의 흡연을 예외적으로 허용해 줄 것을 법원에 요청하는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현재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극단이나 배우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덴버공연예술센터는 무대 위에서의 흡연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진 이후 원래 계획됐던 '마크 트웨인 투나잇'이라는 작품의 공연을 취소했다. 마크 트웨인 역시 살아 있을 때 골초였다. 마크 트웨인 역으로 이 작품에 출연할 예정이었던 배우 핼 홀브룩은 마크 트웨인이 시가를 피는 모습은 그의 독수리 눈매라든지, 백발과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모습인데 그 걸 못한다면 작품에 무슨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다며 불평했다고 한다.

제작자들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포함한 에드워드 올비 작품이나 입센 또는 노엘 카워드 작품에서는 출연자의 흡연모습이 매우 중요한 장면을 구성하고 있는데 그런 장면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넥스트스테이지극단은 1960년대 더블린의 담배연기 가득찬 술집을 무대로 하는 뮤지컬 '남자의 비밀(A Man of No Importance)'공연을 취소했다.

그러나 제작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어떻게 해서든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작품 속에 넣어보려는 갖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덴버에서의 밥 파시 작품 '스위트 채리티' 공연 중 여주인공 역으로 나온 몰리 링월드는 연기 대신 분가루가 날리는 특수담배를 피웠다. 씨어터13극단은 벌금을 낼 각오를 하고 과감하게 법을 무시한 케이스. 풀잎을 말아 만든 담배를 주인공이 피우도록 하고 무대 위의 흡연이 불쾌해 극 도중 나가는 관객에게는 티켓값을 전액 환불하겠다고 공지했는데 도중에 나간 사람도 없었고 사직당국에서 문제제기도 안했다고 한다.

영국의 실험예술축제인 에든버러프린지에서도 배우 멜 스미스가 윈스턴 처칠 역을 하다가 흡연금지에 대한 일종의 반발로 시가를 피우며 연기를 했지만 뒤탈은 없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는 모두 무대 위 흡연을 금지하고 있으며 잉글랜드의 경우 예술성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 흡연을 용인하고 있다. 미국 뉴욕 주는 2003년부터 무대 위의 진짜 흡연은 금지하는 대신 풀잎이나 약초를 말아 만든 담배를 피우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또 진짜 흡연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당국의 허락을 받아서 진짜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허용이 보장된 것도 아니어서 실제 신청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에든버러프린지 사무국도 당초에는 시 당국에 축제공연작품 중 극중 흡연이 있어도 문제삼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 콜로라도 주의 경우 법을 매우 엄격히 적용하고 있는 셈인데 주 검찰은 한 번 예외가 이뤄지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질 수 있다며 아주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관객을 담배연기의 피해로부터 보호하면서 극단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도 보장되는 그런 해법은 없을까. 몇 주 후에 날 것으로 예상되는 콜로라도 주 법원의 항소심 판결 결과가 주목된다.

kangfa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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