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대선에서 남의 당 후보 지지를 하게 된 김민석
민주당은 숨가쁘게 돌아갔다. 이상렬 의원 등, 전남 쪽 당 관계자들이 대거 탈당하며 정동영 후보 지지선언을 하면서, 일각에서는 “당이 이대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들이 나오기도 했다. 이미 전남지역 역시 정동영 후보 쪽으로 기울면서, 민주당과 이인제 후보는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당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다. 민주당 관계자들에게 필자 역시 “정동영 후보를 지지한다는 입장이 아니라, 대선참패의 면피를 받겠다는 목적이라면, 어차피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후보 사퇴를 권해볼 필요가 있지 않냐”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나, 신당의 정동영 후보 모두 대통령으로서 인정하기 어렵다. 민주당 기준으로는 국정실패 세력 심판과 부패 의혹 후보 당선 저지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는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이 너무 바닥이다. 그럼 차라리 이번 대선에서 빠져나온 뒤, 대선 이후, 신당의 정동영 후보에게 대선 참패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위치를 잡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이인제 후보의 태도가 워낙 강경하다는 데에 있다. 그의 입장은 “당대 당 통합 합의를 파기해버린 세력을 앞에 두고, 어떻게 아무런 대책없이 무작정 후보를 사퇴하는 것이 민주당을 살리는 길이냐”는 것이다. 그의 입장도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찌보면 이는 신념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방법론의 문제일 수도 있다. 민주당의 앞길을 위해 어떤 방법이 더 낫냐는 선택이 필요하다.
민주당의 김경재 최고위원은 어제 이인제 후보의 사퇴를 설득하겠다며 나섰다. 그러나 이인제 후보의 연설을 듣고서는 “차마 그를 끌어내릴 수 없다”는 입장을 정리했고, 후보 사퇴를 권고한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이인제 후보를 적극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적으로 이번 대선에서는 빠지는 게 맞다는 판단을 했지만, 선거의 사실 상 총책임자인 후보자가 끝까지 가겠다는 판단을 했다면, 당 최고위원으로서 그를 돕는 게 마땅하다는 논리이다.
이와 반대로 김민석 최고위원은 이인제 후보 사퇴를 관철시키지 못한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 사퇴를 선언했다. 또한 정동영 후보 지지 의사 역시 밝혔다. 전자는 있을 수 있지만, 후자, 즉 자당 최고위원이, 남의 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논란이 될 전망이다. 김민석 위원은 2002년 대선에서도 자당의 노무현 후보가 아닌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며 탈당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두 번의 대선에서 모두 남의 당 후보를 지지하게 된 셈이다. 특히 그가 이번에 이인제 후보와 경선에서 일전을 겨루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경선 불복이나 마찬가지이다.
김민석은 민주당 정치의 미래
필자는 어제 민주당 관계자들에게, “대체 왜 민주당에서 김민석 카드를 적극 활용하지 않냐”는 의견을 밝혔다. 그가 공중파 토론에 오랜만에 나와, 민주당의 입장을 차분한 논리로 설명할 때, “만약 김민석이 민주당 대표나 최소 대변인 정도만 했더라도, 민주당 지지율 5%는 올라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또한 대선 이후에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박상천 등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상대표로 김민석을 추대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도 낸 바 있다.
필자는 김민석 위원에 대해서는 올초부터 일찌감치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386 민주화 운동 세대의 선두주자이면서도, 노무현 정권의 국정실패 책임이 없는 유일한 인사이다. 또한 386중에서도, 일찌감치 국가 운영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 정책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인재이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아마 차기부터는 김민석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을 거라 판단했다.
실제로 필자는 민주당 지지 논객들과 함께, 김민석 위원과 미팅을 가져본 적도 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서울대 총학생회장, 국회의원, 서울시장 후보 등을 거치며, 초고속 출세가도를 달릴 때와 달리, 그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입으로도 말했지만, “아마도 김대중, 김영삼 시절 이후 저보다 더 극심한 고난의 길을 걸은 정치인이 있을까요”라는 그의 정치적 행적이 그를 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논객의 입장에서 김 위원에 몇 가지 조언을 한 바 있다.
“일반 사람들은 김민석에 대해서 초고속 출세가도를 달린 운동권 귀족으로 인식합니다. 김 위원은 지금부터 낮은 자리만 찾아다니면서, 헌신과 봉사의 자세를 보여준다면 세간의 인식도 바뀔 겁니다”
김민석 위원은 정몽준 지지를 선언한 2002년 당시를 이렇게 반성했다.
“나 스스로 아무리 옳다 해도, 당원들, 그리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인내심이 부족했습니다. 그때는 나 혼자 떳떳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남의 당 정동영 후보를 지지한 것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표면상으로 보자면 2002년도와는 상황이 반대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당원들의 여론이 이인제 후보의 사퇴로 모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김민석 위원은 자신의 반성대로, 모든 여론을 분석하여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여론과 맞서야 할 때도 있다. 마치 그가 빗발치는 비난 여론 속에서도 정몽준 후보 지지를 선었했을 때처럼 말이다. 어차피 대선에서 두 발 이상 떨어져있는 인터넷언론 논객의 입장에서의 판단은 이렇다.
대선참패의 책임은 노무현과 정동영에 있다
민주당은 민주당의 현실적 힘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이 말은, 민주당이 지금 상황에서, 이명박을 지지하든, 이회창을 지지하든, 정동영을 지지하든, 대선의 판도에 아무런 변수가 안 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오히려 독립된 길을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만약 민주당이 정동영 후보를 지지해주지 않으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다른 길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란 말이다. 오히려 민주당은 대선 이후 몰락하는 민주세력을 어떻게 재건하느냐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민주당이란 사실 곧 김민석 위원을 의미한다. 현재로선 그가 민주당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김위원은 이를 정동영 후보 지지라는 방식으로 실천했다. 김민석 위원이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이명박 집권 저지를 위한 반부패연합 결성이라는 대의와, 둘째는 대선 이후 민주당의 입지 보전이라는 실리이다.
그러나 전자는 민주당의 결단이 대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현실적 논리와, 그렇다면 국정실패 세력을 심판하겠다는 기존의 민주당의 입장 번복이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민주당의 자산은 국정실패에 책임이 없는 유일한 민주진영 세력이라는 것이다. 자칫하면 민주당의 가치를 송두리째 날릴 수 있는 사안이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민주당의 입지 보전이라는 실리 역시 다른 판단이 필요하다. 아마도 김 위원은 이대로 가다간, 민주당이 대선참패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호남에서 외면받지 않을까 우려할 것이다.
그러나 5년 내내, 한나라당 집권 저지를 위해 선두에 있던 세력은 노무현과 정동영이다. 민주당의 판단이 어떻든, 대선 참패 책임은 이들이 져야 한다. 이런 명백한 당위에도 불구하고, 호남에서 민주당에 책임을 물으면 어쩌나?
자, 바로 이 지점에서, 때로는 정치인이 여론에 맞서 싸울 때도 있어야 한다는 명제가 성립된다. 예를 들면 탄핵 반대의 광기여론, 이것이 정상적인 여론이었던가?
지금도, 정도만 덜했지, 그때와 유사하다. 이명박 집권 저지라는 명분으로, 국정실패 세력이 재집권 하기 위해, 온갖 여론선동을 일삼고 있다. 특히 문국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가 타겟이 되어, 재야원로들부터, 한겨레, 오마이 등 진보언론들이 단체로 나서 후보 사퇴를 협박하고 있다.
이들은 대선 참패 이후에도,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여전히 여론선동을 일삼을 것이다.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100배의 힘으로 국민을 선동한다면, 김민석 같은 정치인이 1당 100으로 맞서, 여론을 설득해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가능하다. 어차피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무현의 문제이다. 노무현 정권의 국정실패 탓에, 그 어떤 처방도 먹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는 여론조작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이다. 이 진실을 갖고 국민, 특히 호남인을 설득하면, 안 되겠는가.
역사의 책임을 너무 크게 보는 민주화 운동 세력
물론 이 역시 방법론의 문제이므로, 김민석 위원의 판단이 틀리고, 무조건 필자의 판단이 옳다고 믿지는 않는다. 아마도 판단이 다른 이유에는 보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
김민석 위원은 학생운동 시절의 리더였다. 민주화세력의 리더는 역사를 크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례하여 리더 본인의 책임 역시 너무 크게 본다. 예를 들면, 현재의 민주당이나 김민석 위원의 위치로 보자면, 그가 최고위원직 사퇴 정도만 했어도 되는 사안이지만, 그는 정동영 후보 지지까지 나섰다. 이번 선거가 어차피 노무현과 정동영의 책임이 분명한 데도, 그는 스스로 책임을 함께 떠안기로 결정했다.
운동의 리더의 경험이 없고, 또한 치열한 현실정치 현장에서 활동하지 않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보다는 이인제 후보의 사퇴를 위해 최선을 다한 뒤, 그게 안 되었다면, 이인제 후보를 끝까지 지지하는 게 절차적 합리성 측면에서 더 나은 판단이 아니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김민석은 분명히 민주당 당원이고, 민주당의 후보는 이인제라는 점은, 논쟁의 여지없는 사실이고, 민주당 당원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경계가 불확실하면 경계에 서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바로 전망이 불확실할 때는 일단 원칙을 지키는 게 정치인으로서 안전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의 김민석 위원의 판단 역시, 2002년도의 정몽준 지지 선택과 비슷한 결과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때 역시, 당원과 국민에 대한 설득이 부족했다는 측면보다는 왜 민주당의 당원이 자당의 후보를 지지하지 않냐는, 아주 초보적인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 위반이라는 점이 더 중요한 결함이었다.
김민석 위원이 운동권 귀족의 길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단지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다. 대의와 명분을 위해서라면, 절차와 원칙은 소홀히 할 수 있다는 386 운동권의 투쟁적 마인드, 2008년 이후의 정치를 주도해나가야할 김민석 위원 정도라면, 오랜 나날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자기 성찰을 해낸 몇 안 되는 젊은 정치인으로서, 이 점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주길 바란다. / 변희재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