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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화려한 휴가', 네티즌폭도와 진중권

무서운 건 네티즌이 아니라, 제도와 권력이다


<디워>의 흥행대박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일보>에 ‘디워’에 관한 글을 기고하기 전, 필자는 <화려한 휴가>가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자산을 특정세력이 상업적,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사실 영화계에서 논쟁을 해야할 영화는 <디워>가 아니라 <화려한 휴가>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디워>는 논쟁을 할 이유가 없는 영화이다. <디워>가 흥행돌풍 행진을 하고 있지만, 이미 심형래 감독은 <영구와 땡칠이>, <우뢰매> 등 무수한 흥행작에 참여했던 감독이다. <영구와 땡칠이>가 200만을 동원했을 시에는 지금과 같은 멀티플렉스 극장도 없었다. 그때 200만이면 지금은 2000만이다. 거기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버금가는 CG로 중무장까지 했으니, <디워>가 1000만이 아니라, 2000만을 돌파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시장 진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중국, 일본, 동남아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한류를 역사적 문제로 본다면, 언젠가는 미국시장이나 유럽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필연이다. <괴물>이 미국시장에서 100여개의 스크린밖에 확보 못했다 하더라도, 미국의 평단에서의 호평을 상기해본다면, 그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물꼬를 심형래 감독이 틀 수도 있는 것이고,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된다.

스토리의 완성도 부족이라는 측면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너그러움으로 이해해줄 수도 있는 일이다. 분명히 공들여 만든 CG를 활용하려다보니, 스토리 구조가 흔들린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조차도 자주 범하는 일이다. <아나콘다>, <옥토퍼스>, 심지어 <쥐라기공원>조차 편수를 더해가며, 스토리 구조가 엉성해졌다. 관객이나 평론가 입장에서는 <디워>가 <터미네이터>처럼 CG는 물론 완벽한 내러티브를 갖추기를 바랄 수 있다. 그럼 심형래 감독은 단지 미국의 B급 SF시장 뿐 아니라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대박을 터뜨릴 것이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오히려 <디워> 논란 때문에 고질적인 영화계의 폐쇄성과 이중성의 문제가 드러나버리고 말았다. 그럼 <디워>가 아니라, 이 부분을 논의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화려한 휴가>이다.

<화려한 휴가>, 영화권력과 정치권력의 담합 의혹

<화려한 휴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 영화평론가나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화려한 휴가>야말로, 엉성한 스토리에, 최루성 멜로드라마로 전락시킨 혐의가 있는데도, 이러한 의견이 나오지 않고 있다. 더구나 <화려한 휴가>가 광주의 정신을 말하면서도, 유독 주인공들만은 호남사투리가 아닌 표준말을 쓰는 부분은, 그냥 아쉽다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영화평은 너그럽게 용납해주고 있다.

1980년 광주항쟁이 향후 대중문화계에 미친 영향은,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부터 호남사투리를 완전히 말살시켜버렸다는 데에 있다. 80년대 내내 광주는 금기어였으므로, 호남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올 수 없었다. 반면, 조폭, 도둑놈, 사기꾼들은 대개 호남사투를 쓰게 되었고, 이것이 일반 대중들의 뿌리깊은 호남차별과 상승효과를 내버렸다. TV만 켜면 나쁜놈은 모조리 호남사투리를 쓰니 말이다.

1994년 SBS의 <모래시계>는 파격적으로 광주항쟁 씬을 다룬다. 영상적으로 따져도 <화려한 휴가>보다 훨씬 낫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도 주인공들은 표준말을 쓰고, 배신자와 사기꾼들만 호남사투리를 쓴다. 이 뿐이 아니라 호남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든, 드라마든 거기 나오든 주인공들은 99% 표준말을 쓴다. 이것은 아예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 문법이 되어버렸다.

반면, 경상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그대로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친구>나 <밀양> 같은 영화이다. 이것이야말로 명백한 호남차별 아닌가?

그럼, 광주항쟁의 자료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현실에 분노했다는 <화려한 휴가> 제작진들은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하지 않았을까? 김지훈 감독은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가 서툴러서 표준말을 쓰도록 했다고 밝혔다. 대체 이런 수준의 호남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찌 감히 광주항쟁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영화에 담겠다고 나섰는지 모를 정도이다. 그렇다고 마치 <디워>를 밟아버리듯이 <화려한 휴가>를 난도질 내자는 게 아니다. 영화계에서 <디워>를 탐탐치 않게 본다면, 그 기준 그대로 <화려한 휴가>에 대해서도 비판적 의견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휴가>는 <디워>와 제작의도가 기획이 전혀 다르다. <디워>가 심감독 개인의 노력으로 만든 CG의 자산 위에 있다면, <화려한 휴가>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연관된 한국의 현대사 위에 있다. 감독 혼자서 “내 마음대로 재미있게 찍어보겠다” 이런 자세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전제가 있다.

<화려한휴가> 제작진은 이렇게 광주라는 자산을 멜로영화로 치환시킨 뒤, 정치 마케팅을 총동원하고 있다. 범여권의 대선주자도 모자라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나섰고, 5.18 묘지 참배 이벤트까지 동워하고 있다. 정말 역사를 이런 식으로 이용해도 괜찮은 걸까? 역사가 주는 교훈은 아무리 권력으로 진실을 덮으려 해도, 결국은 그 진실이 밝혀진다는 데에 있다. 과연 <화려한 휴가> 제작진은 노무현 정권이 끝난 뒤, 한국영화사에서 떳떳하게 기록될 수 있다고 자신하는가? 역사를 다루는 영화인들이라면, 바로 그 역사에 의해 자신들이 어떻게 평가될지 두려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네티즌을 폭도로 몰아버리는 진중권

진중권은 100분토론 이후에도 여전히 네티즌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의 전쟁 명분은 네티즌들의 광기 때문에 평론가와 언론이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억압체제를 때려부수겠다는 것이다.

진중권의 이러한 전쟁은 늘 반복되어왔다. 군가산점 문제로 촉발된 월장사태, 황우석 교수 사건 등등에서 진중권은 항상 평범한 시민과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전쟁을 벌여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진중권은 전리품을 챙기는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네티즌이 무서워서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수준의 평론가와 지식인이, 공적으로 글을 쓸 자격이나 있냐는 것이다. 진중권이 평론가와 지식인을 위한 보디가드란 말인가? 진중권의 보호 없이는 자신의 소신 하나 밝히지 못할 정도로 한국의 평론가와 지식인들이 그토록 나약한 존재인가? 진중권은 100분토론에서도 ‘심약한 평론가’라는 말을 했다. 그건 문장 자체가 오류이다. 평론가는 심약하면 안 된다. 고로 심약한 평론가는 평론가가 아니다.

평론가나 지식인은 네티즌의 악플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누군가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어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말을 해야한다. 그런 각오조차 할 수 없으면 글쓰는 것 당장 중단해야 한다.

진중권이 과연 이를 모를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리고 한국의 평론가와 지식인들이 네티즌들 무서워서 자기 할 말을 못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은 그도 알 것이다. 그는 단지 자신의 명분없는 전쟁을 위해 네티즌들을 폭도로 몰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전쟁으로 늘 클릭수와 돈을 챙기며, 보다 혼탁하게 여론을 몰고 가는 거대 권력 포털 사이트 문제에 대해서도 진중권은 지적하지 않는다. 그의 적은 언제나 네티즌 폭도일 뿐이다.

그러나 사실 지식인과 평론가가 두려워하는 대상은 네티즌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업계이다. 영화평론가면 영화계, 대학강단에 있으면 학계이다. 네티즌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영화계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네티즌들에게 박수를 받아도, 영화계 전체에 찍히는 글을 쓴다는 건 보통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바로 다시 <화려한 휴가>이다. 진중권이 그토록 억압의 체제에 저항하고자 했다면, 분명히 정치적, 상업적 악용의 여지가 있는 <화려한 휴가>에 대해, 왜 단 한 편의 날카로운 비판의 칼럼조차 찾아볼 수 없는지, 그것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필자는 조선일보에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광주항쟁을 악용하는 현실 정치권력의 힘이다.

둘째, 영화판의 대표적인 인물인 유인택의 영향력이다. 참고로 유인택은 민주신당의 유인태 의원의 친동생이다. 또한 영진위 위원장은 민주신당 원혜영 의원의 부인이다. 정부가 지원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한국의 영화시스템 구조상, 정치권력과 영화권력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필자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나갈까 고민할 즈음 진중권은 한국일보에 <화려한 휴가>를 소재로 전두환 측을 공격하는 글을 썼다. 세상이 바뀐 지금, 힘없는 전두환 하나 밟는 건 아무런 용기도 필요없는 일이다. 진중권은 특정 영화를 띄워주기 위해 침묵과 담합을 하는 영화계, 그리고 이를 권력으로 뒷받쳐주는 정치권을 비판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듯하다. 진중권 역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네티즌이 무서운가, 제도의 권력이 무서운가?

진중권이 SBS 시사프로 사회를 맡기 전 후, 갑자기 노무현 정권에 우호적인 칼럼을 써대는 것을, 필자가 지적한 바 있다. 진중권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인정하며, “조중동이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고 있다보니 방어적 차원에서 그런 일”이라 답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아마 진중권이 총선 이전처럼 노무현 정권을 공격했다면, 공중파 라디오 사회를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건 분명하다. 즉 제도와 권력은 진중권에게 선물을 줄 수 있지만, 네티즌은 진중권에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진중권이 네티즌과의 전쟁을 벌일 지언정, 제도와 권력에 전면전은 결코 하지 않는 이유, 이와 연관이 없을까? 물론 진중권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다기 보다는, 어차피 전쟁의 대상이 아니므로, 제도와 권력의 억압에 무감각할 수도 있다. 이는 진중권 뿐 아니라, 대부분의 지식인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네티즌만도 못한 지식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고로 지식인과 평론가는 심약한 게 아니고, 영악한 것이고, 진중권도 이에 뒤지지 않으니, 더 이상 네티즌을 폭도로 몰며 전쟁을 반복하는 행위를 멈추기 바란다. 네티즌 역시 별달리 큰 걸 원하는 게 아니라 <화려한 휴가>의 시민군처럼 "우린 폭도가 아니다" 이 말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진실을 무시하는 자세야말로 구태의연하고 낡은 지식인의 악습이며, 이를 버리지 못하면, 진중권조차 구시대의 인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는 진중권 뿐 아니라 지식인 전체의 생존과 관계된 일이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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