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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는 5.18 광주 영화가 아니다

현대사의 비극, 5.18을 악용하려는 정치권력


정말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자의에 의해서 영화관에 간 것이 아마도 4~5년은 된 것 같다.

그렇다고 그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아내를 챙겨줘야 하는 남편의 입장에서 결혼기념일이니 뭐 아내 생일이니 하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날 남편자격 면피조건으로 종종 영화관에 갔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내 뜻으로 영화를 보러 시간을 낸 것은 4~5년 쯤 되었다는 말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내 뜻으로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미 영화관에 가기 전에 내가 봐야할 영화로 ‘화려한 휴가’를 찍어놓고 표를 예매했다. 필자가 이 영화를 꼭 봐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영화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한 역사를 조명했다는 많은 영화평들을 읽은 탓도 있지만 그 같은 천편일률적인 언론의 영화 띄우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본보에도 기고된 문화평론가 변희재의 ‘화려한 휴가’에 대한 신랄한 비평 때문이었다.

변희재는 그의 실명 칼럼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는 철저하게 대선기획용으로 만들어졌다”고 썼다. 그는 이 영화를 한 편의 기획물로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제작자는 친노세력의 실세 유인태 의원의 친동생 유인택이다. 제작비는 무려 100억원이다. 영화계에서 제작비 100억원을 모을 수 있다는 건 보통 수준의 흥행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유인택은 이제껏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적이 없는 제작자이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믿고 100억을 모아주었을까?”

그의 지적이 꼭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시기(운동권 정부의 쇠락과 한나라당의 득세)에 광주와 5.18을 무대로 한 영화에 100억의 영화펀드 유치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의 지적은 매우 타당성이 있다. 그리고 또 그가 지적한 “광주영화 임에도 호남사투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매우 일리 있는 지적 같았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호남을 위해 만들었다는 영화에서 조차 호남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이 없다는 점, 그간 얼마나 호남이 억압을 당했으면 이런 일이 있겠냐는 것이다. 광주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미스할 수 있을까? 광주항쟁이 호남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에 대해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무슨 광주항쟁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섰는가?”

필자는 이 같은 기초지식을 갖고 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다음 변희재의 지적은 매우 타당한 지적이라는데 공감했다.

배우 김상경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는 정말 이요원이라는 여배우의 연기 이외에는 볼 것이 없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표준말을 사용해도 될 것 같은 역을 맡은 배우도 이요원 뿐이었다. 그녀는 광주의 보훈병원 간호사로 일을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공수특전단 예비역 대령 출신이므로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외지생활을 많이 했을 것으로 보여그렇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민우(김상경 분)는 부모없이 동생과 둘이 살면서 광주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택시운전사다. 그런데 민우나 민우의 직장동료인 같은 택시운전사나 모두 광주토박이며 광주를 떠난 일이 없는데 민우는 표준말을 사용하고 그 동료는 사투리를 사용한다. 또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주인공 민우의 동생 진우와 친구들,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 광주의 천주교회에 봉직하는 신부, 이들 모두 호남사람들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종종 그들이 내뱉은 언어에서 광주 지역의 지명을 말할 때를 제외하고는 정말 그들이 광주사람이며 배경이 광주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의 허술함은 비단 사투리만이 아니다. 영화는 광주 5.18인데 배경은 짙은 녹음이 우거진 한 여름이다. 만약 이 영화가 외국에 수출이라도 된다면 이 영화를 보는 외국인들은 광주의 5월은 매우 짙푸른 녹음의 계절일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실제로 호남의 5월 들녘은 왕성한 푸르름이 아니다. 논에 심겨진 벼가 이미 짙은 녹색을 띠고 있는 시기가 아니란 거다. 남도의 5월 중순은 모내기가 한창인 철이다. 논갈고 모 심는 시기이며 갈대는 그렇게 무성하지 않다. 영화 도입신에 나오는 함평의 가로수는 상록수이므로 그렇다쳐도 가로수 옆의 들녘은 논갈이와 모심기가 한창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영화는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을 강조하다보니 압제에 저항한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우발적이고 우연적으로 그려졌다. 금남로에서 외치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배경이 된 피켓 속에만 있었다. 1980년 5월의 투사들은 삶과 죽음, 투항과 결사 항전의 기로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선택을 하였는가를 영화는 말해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 윤상원이 빠지면 안 된다.

윤상원은 한때 잘나가는 은행원으로서 편안한 소시민의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듯이 윤상원을 비롯한 5월 항쟁의 열사들은 뻔히 눈 앞에 보이는 죽음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그리고 윤상원은 결국 죽는다. 그에 대한 광주문화방송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열사 윤상원'에서 윤상원은 5. 26 마지막 외신기자와의 회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We will fight until the last man. 우리가 오늘 진다고 해도 영원히 패배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 관객들은 영화에서 윤상원 박용준, 박관현 등을 다시 만나야 했다. 그들의 뜻과 정신이 영화에서 존재했어야 하고 역사적 현재로서 부활해야하고 그것이 전달되었어야 한다. 그것만이 광주와 5.18을 말할 수 있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그 몫을 맡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윤상원도 박용준도 박관현도 없다. 단지 이유없이 폭행당하고 무차별 구타당한 민중들은 홧김에 봉기한 것으로만 그려진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군인들이 광주 사람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학살하는 이유를 영화를 통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특전사 예비역 대령출신으로 광주에서 택시회사를 하는 안성기의 입을 통해서...또 안성기의 동기로 보이는 진압군 대장과 안성기의 대화를 통해서만 군인들이 광주를 핍박하는 이유를 알아내도록 관객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광주와 5.18의 역사에 대해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역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배경인 광주와 5.18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으면 군인들은 시위하는 민간인을 진압하기 위하여 참혹하게 폭행하고 그래도 진압되지 않으면 집중사격을 해서라도 진압한다는 것을 말해준 것과 같다. 이는 정말 안 될 말이다. 최소한 권력과 진압군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영화 초기에 나오는 “전두환은 물러가라”라는 학생들의 구호를 왜 군인들이 진압해야 하는지에 대한 간접적 배경설명이라도 있어야만 했다.

군인들의 무차별 폭력진압에 항거, 민중들이 봉기하는 모티브를 만들기 위해 명령에 따라 동원된 군인들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린 영화에 500만이 넘는 관객들은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따라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자신들이 죄인으로 만들어버린 군인들이 어떤 권력자에게 이용당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장치를 영화에 삽입해야 한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는 이 영화의 시놉시스와 대본을 쓴 사람과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그리고 제작자와 홍보책임자들을 마음속으로 질타했다.

배경의 계절도 다르고 출연진의 언어도 다르며 5.18과 함께 스러져 간 억울한 넋들과도 다른 주인공들, 단지 외국 언론과 그동안 광주 청문회 등에서 얻어진 자료들을 가공해서 거금 100억을 들여 만들어 낸 이 ‘화려한 휴가’는 앤딩 음악에서만 광주였을 뿐이다.

10여년도 훨씬 지난 오래 전에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같은 광주 출신 고등학교의 동창생인 최민수 박상원 정성모 중 비열한 깡패 역의 정성모만 호남사투리를 썼던 것이 생각나는 영화, 부산이 배경인 영화 ‘친구’의 주인공들은 모조리 당당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썼는데 광주와 5.18이 배경인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는 양념으로 배치된 조연들 몇 명만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영화, 필자는 이쯤에서 다시 변희재의 지적이 가슴에 와 닿았다.

변희재는 이 영화를 만든 김지훈 감독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김지훈 감독은 전작인 <목포는 항구다>에서조차, 사기꾼은 호남사투리를 쓰고, 주인공은 표준말을 쓰는 구도를 설정했다. 아예 상습범에 가깝다. 대구 출신의 감독으로서, 단 한 번도 호남차별의식에 대해 고민한 바가 없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제작자와 감독이 현재진행형인 호남차별의식에 대해 이들이 무감각했기 때문에, 영화는 국적 모를 군대와, 시민혁명군과의 총질하는 판타지영화로 전락해버렸다. 과연 이 영화를 보고 광주와 역사와 현재를 고민하는 관객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영화를 보고난 필자는 변희재의 이 같은 지적에 100% 동감한다. 이 영화는 광주와 5.18 영화가 아니다. 우리 현대사에 가장 아픈 역사인 광주와 5.18을 이용하려는 저급한 권력 지상주의자들이 만든 저급한 기획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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