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선교사 아서 H. 스미스는 <중국인의 성격>이라는 책에서 중국인의 성격을 ‘모호함’이라고 했다. 대개 불분명하고 모호한 태도는 말하는 이의 인품과 수행을 드러내고 자신의 체면을 지키면서 운신의 폭을 넓게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인기 있는 사람은 모호하면서 둥글둥글하며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따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정판교는 ´난득호도경(難得糊塗經)´에서 세상에는 자칭 총명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부족한 것은 모호하면서 둥글둥글 명확하게 따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채근담>은 군자는 예봉을 지나치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후진타오 주석의 경우, 주석 취임 전에 그의 정치적 성향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다. 그의 정치보고, 강연 등에 혁신적이거나 대담한 표현이 거의 없었다. 후진타오 주석은 ‘말을 많이 할수록 잃는 게 많다’고 생각해왔다. 공식적으로 대담한 발언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의 발언을 보면 지배질서를 존중하는 면과 ‘신사고(新思考)’가 같이 드러난다는 지적이 있었다. 즉 보수적인 것 같기도 하고, 개혁적인 것 같기도 하다. 이른바 같기도의 경지다.
“이건 춤도 아니고 무술도 아니여!”, “이건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니여!”, “반팔도 아니고 긴팔도 아닌 모호함. <개그콘서트> ‘같기도(道)’의 핵심 교리는 바로 애매모호함이다. 세상은 복잡해지고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니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한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사업과 직업이 유망할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직장을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나쁜 것 같기도 하다. 이 과에 가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한데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윤손하의 신작 드라마 <연인이여>는 불륜드라마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다. FTA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경기는 호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황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최근 화제작인 영화 <극락도 살인 사건>에서 박해일은 살인범인 것 같기도 하다. <살인의 추억>에 이어 또 ‘살인범 같기도’의 경지를 보여준다. 드라마 <히트>의 차수경(고현정)과 그 형사들은 현실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김수현의 <내남자의 여자>는 현실적으로 그러한 상황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하지만, 의문점이 많다.
같기도 상품이 유행한다고 한다. 쫄바지인지 청바지인지, 골프화인지 운동화인지 구분이 안 된다. 이른바 ‘같기도 패션’이다. 바지 같기도 하고 치마 같기도 한 패션도 나왔으니 말이다.
한 인터넷 블로그에서는 ‘같기도 단증’을 발급한다. 예외 없이 원칙 없는 정치인의 모습은 같기도 고단자다. 1급 단증을 받을만 하다. 가장 인기 있다는 정치인들은 그 등락폭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곧 대폭 떨어지기도 하니 전적으로 믿지도 못하겠다. 인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같기도의 경지를 잘 보여주는 사람일수록 대중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하지만 어설픈 같기도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대중의 마음에서도 급속하게 멀어진다. 고단수의 같기도 연마가 필요한 세상이다. ‘같기도’의 경지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나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같기도’의 경지는 특정 행동이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민주성을 지닌다. 이런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원칙과 일관성 없는 임기응변식 상황 논리라면 곤란할 것이다. 대선의 계절, 진정성이 아니라 표심에 따라 같기도의 경지를 보일까 우려스러워지는 이유다. 후진타오와 같은 중용과 포용의 리더십이 보이는 같기도의 경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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