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지킴이연대를 비롯해 자유진영 단체들은 26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천안함 3주기를 맞아 전사한 46명의 해군 장병들과 UDT의 전설 한주호 준위의 명복을 기원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천안함 폭침으로 전몰한 장병과 한주호 준위를 추모하고, 반국가 및 이적단체의 척결을 강력히 주장했다. 아울러 한미전시작통권 전환은 전쟁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연기할 것과 한미우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대한민국을 겁박하는 북한의 반민족적 범죄행위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북한은 수백만명의 인민이 기아로 죽어가는 데도 핵무기 개발을 숨기기 위해 ‘6자회담’을 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고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북한 김정은 체제를 두둔하는 정파는 즉각 해체해야 하고 한국사회에 기생하고 있는 종북 좌파 세력은 스스로 과오를 인정해 전향하거나 아니면 북한으로 자진 월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유진영 단체들은 “한미간의 상호방위조약에 기초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한미 간의 군사동맹에 대해 적극 지지하며, 자위적 차원의 연례 한미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약 40년전인 지난 1974년 3월 25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5기 3차회의에서 ‘美국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조-미 평화협정체결을 요청한다. [김승근 독립신문 편집장] 앞서 북한은 1963년부터 주한미군 철수를 조건으로 ‘남북평화협정체결’을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제의해 왔었는데 이젠 그 이름만 ‘조미평화협정’으로 바꿔 우리가 아닌 미국에게 협정을 맺자고 외친 것이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요청해 온 주한미군 철수를, 이름만 바꿔 미국에게 요구한 이유는 뭘까. 북한의 주장은 미국과 북한이 정전협정의 서명자일 뿐 아니라 실권을 가진 당사자이므로 미국과 북한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때부터 사실상 우리보다 위에 있다고 스스로 판단, 협상에 있어 우위를 차지하려 했다. 핵이 없던 시절에도 그랬으니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마당이니 우리를 얼마나 내려다보고 있을까. 북한은 우리에게 실권을 가진 당사자가 아니라 말하고 있지만 사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분명히 남북한과 유엔참전 16개국 및 중국이다. 당시 한국전 참가 16개국은 유엔결의안 제84호에 근거해 UN군 통합사령부를 구성, 미군장성으로 하여금 사령관을
서해 해군 초계함 9척에 아주 특별한 기관총 18문이 설치됐다. M-2중기관총을 가장 최신식으로 개선한 K-6 중기관총. 최대 사거리 6천700m, 1분당 600발 발사가 가능해 함정간 근접 전투시 유용하다. 북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실전에서 사용해 호평을 받아온 주력 총기다. [김승근 독립신문 편집장] 그런데 이 총을 부여잡고 우는 여자가 있다. 그 총신을 붙잡고 서럽게 울고 있던 이 여자는 누굴까. 바로 3년전 천안함 피격때 전사한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다. 해군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을 때도 당당했던 이 여인은 자기 아들의 투혼을 담은 기관총을 부여잡고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해군 장병들은 고 민평기 상사의 투혼의 이어받아 적의 어떤 도발에도 강력히 응징하겠다며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했다. 어머니에게 이 기관총은 아들의 분신. 지난해 6월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어머니는 “1억원은 적은 돈이지만 무기 구입에 사용해 우리 영해와 영토를 한 발짝이라도 침범하는 적을 응징하는 데 써 달라”는 편지와 함께 사망보험금 1억원에 성금 898만 8천원을 모두 기탁했다. 해군은 어머니의 뜻을 살리기 위해 반영구적이며 적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K-6 기
IT 강국 대한민국. 많은 것을 IT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는 그래서 더 사이버테러에는 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주적 북한이 준비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소위 ‘해커 부대’라고 불리고 있음에도 말이다. [김승근 독립신문 편집장] KBS, MBC, YTN 등 방송사와 신한은행 등 금융권의 전산망이 동시에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0일 오후 2시부터 이들의 전산망은 해킹으로 뚫려 악성파일이 뿌려졌다. 방송사와 금융기관 6개사, PC와 서버 무려 3만 2천대가 먹통이 됐다. 전산망 완전복구에는 최소 4, 5일이 예상된다고 하니 심각한 피해다. 더 무서운 건 추가 공격을 예고하는 메시지까지 남겼다는 점이다. 대체 누구의 소행인가. 피해를 입은 6개사 모두 같은 조직에 의해 공격을 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공격 주체는 아직도 추적 중이다. ‘후이즈’라는 해커팀의 과시용 해킹이었다는 주장이 나왔었지만 그동안 반복해왔던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도 열어두고 추적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단서 하나가 잡혔다. 방통위와 경찰청 등 민관군 합동대응팀은 농협시스템에 대한 분석 결과 중국 IP가 업데이트 관리서버에 접속해 악성파일을 생성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
1957년 3월 22일 김일성이 함경남도 신포를 방문해 수산업에 대해 현지 지도했다. 이를 기념해 제정된 기념일, 3월 22일이 바로 ‘어부절’이다. [김승근 돌립신문 편집장] 북한은 1957년 당시 김일성이 신포지구의 여러 수산기지를 방문해 어부들의 사업과 생활 및 수산업을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귀중한 가르침을 줬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 4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수산업을 더욱 발전시킬 데 대하여”를 발표, 수산업이 나아갈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북한에서 농어업이 차지하는 산업 비중은 매우 크다. 마땅히 격려하고 치하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현재도 북한에서는 수산물이 주민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북한 연근해에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고 있어 어족이 풍부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북한은 1970년대 이후 수산물을 주요 수출품목으로 설정하며 중국과의 무역 교류에도 힘 썼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전반적인 산업 낙후화로 인해 수산업 분야도 열악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어선 부족, 어로장비 및 기술의 낙후, 선박용 기름의 부족 등으로 수산물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
광우병에서부터 불거졌던 괴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다 죽을 것만 같았던 그 괴담을 유포한 곳 중 하나는 북한이었다. 북한은 온갖 선전매체를 통해 국민들을 선동했고, 그 결과는 놀랍게도 국민들을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만들었다. 촛불을 든 채. [김승근 독립신문 편집장]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을 틈타 전쟁과 관련된 괴담이 다시 돌고 있다. 곧 전쟁이 일어나고 한국 전체가 초토화 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통해 북한과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말도 안되는 내용의 글도 퍼졌다. 북핵 사태로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나온 얘기다. 재밌는 건 이런 주장은 궁지에 몰린 북한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란 거다. 누구의 머리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으며, 누구를 위한 건지는 자명해진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전쟁으로 국민을 협박해 정부 조직 개편안 처리를 밀어붙이려 한다’는 글이 퍼지기도 했다.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청와대와 여권 탓으로 만들며 비난의 화살을 쏘게 하려는 전략일게다. SNS를 통해 퍼진 괴담은 대부분 곧 전쟁이 일어나, 우리나라가 초토화 된다는 내용이다. 심지어는 최근 잇따른 산불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북한배후설도 나돈다. 11일에 실시하는
1993년 3월 19일. 남한에서 40년이 넘게 생활했던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가 북송됐다. 북으로의 귀환을 희망해 송환된 최초의 케이스다. [김승근 독립신문 편집장] 리인모의 검거 당시 재판기록에 따르면 그는 경상남도 내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의용군에 강제 모집돼 전선에 투입되고, 이후 1950년 9·28 서울수복 후에는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한 것으로 되어있다. 반면 북한은 리인모가 해방 후 노동당에 입당하면서 공산주의 활동에 뛰어들었고, 50년 한국전쟁이 발발, 인민군 문화부 소속 종군기자로 활동하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본대와 연락이 끊기자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찌됐든 리인모는 6.25전쟁에 참전했다 1952년 체포돼 비전향을 고집, 34년간 복역 했고 1988년에 출소했다. 1952년 빨치산 토벌대에 의해 검거돼 7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1959년 출소했지만 1961년 6월 부산에서 지하당 활동혐의로 붙잡혀 15년형을 선고받아 실형을 살고도 두 차례나 더 복역하는 등 총 34년간 옥살이를 한 뒤 88년 석방된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자 북한은 1991년 9월 대남방송인 ‘평양방송’을 통해 이인모의 송환을 요구한
중국이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산 꽃게를 비롯한 수산물 수입을 사실상 중단했다고 한다. 꽃게는 북한의 대표적 대중 수출품목이다. 주민들의 생계에 타격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승근 독립신문 편집장] 중국의 표면적 이유는 핵실험 탓에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 내년 개통을 목표로 한 훈춘(琿春)∼나선특구 간 고속철도와 송전탑 건설도 중단했으며, 압록강의 황금평 개발사업을 전면 보류하지 않았던가. 다시말해 자신들이 북핵을 말렸지만 무시한 채 김정은이 실험을 강행했고 여기에 대한 실질적 제재차원이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나 일본, 유엔과 EU 등은 모두 북한의 경제제재를 가했어도 중국만은 비교적 이해하는 식의 발언을 해 중국의 의중을 가늠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최근 중국 등 정보기관과의 협조를 통해 제재대상 갱신에 적극 나서면서 미·중간 대북정책 공조 강화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ABC방송에 출연해 “중국이 북한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정권의 붕괴를 걱정해 여태껏 참아왔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게 오바마의 얘기다. 게다가 중국이 ‘우리는
1946년 3월 15일. 남북이 분단 후 처음으로 이산가족 서신을 교환했다. 당시 남한에서 보낸 서신은 30만 2,209통이었고 북한에서 온 소식은 1만 5,760통이었다. [김승근 독립신문 편집장] 한반도가 38선으로 분단되고 22일만인 1945년 9월 6일부터 서신교환은 사실상 끊어졌다. 특별한 남북의 합의가 아니고서는 서신조차 나눌 수 없게 된 게 그때 부터다. 당시 북한에 진주한 소련 군정은 해주우체국에 지시, 전신과 우편물 등을 남한에 보내지 못하게 하고 남한과의 전화통화도 차단했다. 남쪽에서 보낸 서신은 친인척의 안부를 묻는 사적인 내용이 대부분인데 반해 북에서 온 서신의 상당수는 남한에서의 공산혁명을 부추기는 선전물이 주종을 이뤘다고 한다. 공산주의는 혁명을 위해서라면 사람들도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이 되는 대목이다. 이후 북측은 6.25 이틀전에 서신교환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결국 이산가족들은 2001년 3월15일 이산가족 서신교환이 이뤄질 때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생사를 모른 채 살아가야 했다. 그동안 가족들은 생사조차 모른 채 살아야 했다.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다. 김일성의 야욕으로 시작된 6.25가 시작되고 약 50여년이
김정은이 직접 북한 군부대를 찾아 연평도와 백령도를 대상으로 한 포사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한다. 사격훈련은 연평도와 백령도에 있는 우리 군부대와 미사일 기지 등을 집중 타격하는 것을 가상해 진행했다고 한다. [김승근 독립신문 편집장] 최근 다른 부대 시찰에선 남한에 대한 악담을 퍼부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청와대 안방 차지하고 치맛바람”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직접적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욕했다. ‘키 리졸브’ 훈련을 막기 위해 기를 쓰고 힘싸움을 벌였던 김정은이 막상 당일이었던 11일 이후 며칠간 이런 유치한 촌극을 빼놓고는 오히려 잠잠한 상황이다. 마치 키 리졸브 훈련이 시작되면 미사일을 퍼붓고 핵 미사일까지 날릴 듯 하던 김정은이 잠잠하더니 돌연 군부대를 시찰하며 포사격을 지도한다? 한발만 더 다가오면 가만 안 있겠다면서 세계를 향해 워싱턴과 서울 불바다를 외치고, 일촉즉발 위기인양 하던 이들이 막상 한발 다가서니 딴청을 피우는 느낌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랬던가. 김정은은 으름장을 놓던 기존의 방식으론 더 이상 협박 수위를 높여가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빨 빠진 호랑이, 아니 호랑이인 척하는 하룻강아지였는지도 모르겠다만. 어쨌든 허세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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