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사병으로 병역을 마쳤다. 하지만 지금은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이다. 그러니 나를 '반 장군'(General Ban)으로 불러달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31일 레바논 남부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을 상대로 연설하며 던진 농담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열흘간의 중동순방을 계기로 가장 다루기 힘들고 혼란스러운 이 지역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신문이 2일 전했다.
반 총장이 이번 순방시 자신이 주도하는 단호한 선언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동양적 겸손함이 자칫 우유부단함으로 비쳐지지 않도록 한다는 신념 아래 유엔을 무시해왔던 중동 지도자들을 차례로 만나 총장으로서의 권위를 과시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아랍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만나 2003년부터 내전이 계속돼 20만 명 이상이 희생된 다르푸르 지역에 유엔 평화유지군을 배치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이어 이튿날에는 이란 마뉴셰르 모타키 외무장관과 만나 영국 해군 나포사건의 해결을 촉구했다.
또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와 나비흐 베리 국회의장을 따로 만났다. 특히 레바논의 반정부 정치ㆍ군사조직인 헤즈볼라와 연대하고 있는, 베리 의장과의 회담에서 반 총장은 상호 적대적 군사행동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준수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활발한 행보에 비해 가시적인 수확은 적었다는 지적이다. 우선 반 총장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러조직으로 간주하는 하마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내각의 수반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를 만나지 않았다. 또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반 총장이 유엔, 유럽연합(EU), 미국, 러시아 등 중동평화 중재 4자와 온건 아랍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참가하는 회담을 제안한 것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의문을 제기, 권위에 도전했다.
암만의 퀸 알리아 국제공항에서는 반 총장의 환영행사가 열리지 않아 그가 응접실에서 혼자 앉아 한동안 리무진을 기다려야 했다. 또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와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가 각각 반 총장을 '문(Moon) 총장', '미스터 아난(Annan)'으로 언급한 것 등도 '새내기' 반 총장을 머쓱케했다.
반 총장측은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설득, 다르푸르에서 진행중인 아프리카연합의 평화유지 임무를 유엔이 돕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한 것을 성과로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그러한 판단은 시기상조이며 유엔 평화유지군을 배치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 총장도 사우디측을 설득, 자신의 중동 순방을 동행 취재한 이스라엘 에디오트 아하로노트 신문 오를리 아줄레이 기자의 사우디 입국비자를 주선해준 것을 놓고 "다른 것들은 여전히 제안에 불과하다. 이것이 내가 실제 이뤄낸 첫번째 성과"라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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