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의 마지막 고갯길인 8차 협상에서 그동안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주요 쟁점 타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양측은 협상의 시한인 3월말까지 타결을 위해 정치적, 실리적 요인 때문에 내줄 수 없는 영역에서는 고위급 협의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한다.
8일 협상에서는 상품분야의 자동차와 섬유,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의 범위, 방송서비스 개방 폭과 금융분야의 일시 세이프가드 등이 쟁점이다.
◇ 상품분야..車.섬유 관심
우리 측 협상단이 이번 협상에서 사실상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상품분야 양허(개방) 협상에서는 자동차분야가 핵심이다.
미국 측은 지금까지 "배기량 기준 세제를 철폐하라"는 요구만 해왔을 뿐, 구체적인 자국의 양허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만약 최근 미국 의회 관계자들이 백악관에 보낸 서한에서처럼 '한국만 즉시 관세 철폐-미국은 15년 이상 나눠 철폐' 등 무리한 요구가 실제 양허안에 반영된다면 워싱턴 농업 고위급 회담의 절충 실패와 함께 협상은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자동차가 '딜 브레이커'(협상 결렬 요인)로 부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7차 협상에서 미국이 '기대 이하'의 양허안을 제시해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섬유협상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측은 원사를 기준으로 섬유 원산지를 판단하는 미국의 얀 포워드 기준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에 적용됐던 '쇼트 서플라이 리스트'(Short supply list)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쇼트 서플라이 리스트는 자국 내 원사생산이 부족해 역외에서 조달하는 상품 중 일정 품목은 제품에 역외산 원사가 얼마나 포함됐는지를 묻지 않고 얀 포워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규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 측에 전반적으로 7차 협상보다 개선된 양허안을 제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협상 분위기는 미국이 내 놓을 '패'에 달려있다.
◇ 무역구제.개성공단 목소리 약해질 듯
우리 측으로서는 명분과 실리가 모두 걸린 무역구제협상의 경우 5차 협상부터 제시했던 6가지 패키지 요구를 미국이 얼마나 수용할 지가 관전 포인트다.
정부 측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우리 측 요구안의 핵심이자 미국이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비합산' 규정은 미국의 완강한 반대를 감안할 때 관철이 어려워 보인다.
김영주 산자부 장관은 전날 한 방송에 출연해 무역구제 협상과 관련, "핵심적인 것은 비합산이지만 이것 말고도 중요한 것이 많다"며 "실리를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원산지.통관분과의 최대 쟁점인 개성공단제품의 한국산 인정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우리 측은 6자 회담의 사실상 타결과 북미관계의 진전을 재료로 미국의 전향적 입장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분위기' 수준인 북미관계의 개선 조짐만으로 미국이 수용할 것으로 낙관하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일단 협정문에 개성공단 문제를 포함시킨 뒤 추후 상황진전에 따라 구체적 혜택범위를 정하는 기술적 해법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렇게 되면 개성공단의 상황이 여전히 불안한데다 결국 미국에 결정권을 넘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명분과 실리를 챙기지 못할 수 있다.
◇ 투자.서비스, ISD, 방송도 쟁점
우리 측은 투자분과에서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ISD)의 대상인 간접수용의 범위에서 기존 환경, 안전, 보건 외에 부동산과 조세정책을 제외해달라는 요구를 계속할 예정이다.
미국이 이에 대해 과거보다 긍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 측은 다른 분야의 요구사항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미국의 핵심 요구사항으로 등장한 방송 등 시청각 서비스 시장의 개방폭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내 방송가에서는 미국이 요구해온 케이블 사업자의 외국인 지분제한 완화 뿐 아니라 ▲온라인 VOD(주문형비디오)시장 개방 ▲지상파 방송의 국산 콘텐츠 쿼터 등도 미국의 집요한 공격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분과에서는 우리 측이 인정을 요구하는 금융 일시 세이프가드와 이를 인정할 경우 세이프가드 조치를 투자자-국가 간 소송 대상으로 명시하자는 미국의 요구가 맞서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는 정치적 명분도 중요한 문제여서 최종 주고받기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책금융기관의 FTA 협정 적용 배제문제는 우리 측의 국책금융기관 개편안과 맞물려 접점 찾기가 가능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