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내 정체성 논란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원희룡 의원은 4일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반하는 사람은 발전적 보수를 주장하는 이들이 아니라 수구보수 세력”이라며 “과연 김용갑 의원과 저 원희룡 가운데 누가 한나라당 당헌·당규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냐”고 반문했다.
원 의원은 이날 “한나라당이 청산해야 할 과거의 부정적 유산은 자기 혁신과 합리적 개혁을 추구하는 발전적 보수가 아닌 수구보수”라며 최근 정체성 문제를 들어 자신에게 당내 대선후보 경선 포기를 종용한 김용갑 의원을 겨냥, 이처럼 지적했다.
심지어 그는 “과거의 부정적 유산을 붙들고 당헌과 정강정책을 부인하고 훼손하는 수구보수들은 한나라당을 떠나 수구보수 정당을 창당하든지, 아니면 당헌·당규와 정강정책을 지키려 노력하라”며 사실상 김 의원의 탈당을 촉구했다.
앞서 김용갑 의원은 지난 1일 원희룡 의원과 고진화 의원의 경선포기를 주장했었다.
김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한나라당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원희룡 고진화 의원이 경선에 출마하는 것을 보고 당내 경선이 우습게 되고 희화화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하고 있다”면서 “대통령 선거가 어린애들 장난도 아닌데 이들이 나와 경선이 엇박자가 나고 분위기를 흐리게 될까 걱정이다. 두 사람은 당과 국민을 위해 이제 그만 내려오기 바란다”고 사실상 두 주자의 경선포기를 촉구했던 것.
앞서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인 유석춘 연세대 교수는 지난달 31일 “한나라당내 ‘열린우리당 2중대` 의원들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고진화 의원의 실명을 거론한후 그의 탈당을 촉구한 바 있다.
유 교수는 이날 참정치운동보부 주최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대선전략’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친북 좌파세력과 같은 고진화 의원은 당을 떠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 의원은 “개 짖는 소리에도 대응해야 하는 당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비아냥거리며, 법적대응을 강력 시사했다.
이 정도에서 그칠 줄 알았던 정체성논란은 그 이후에도 지속됐다.
지난 2일 전여옥 최고위원이 김용갑 의원과 유석춘 의원을 지원하고 나섰던 것.
전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체성 문제와 관련, 당 대선주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고진화 의원을 우회 비판했다.
그는 ‘무조건 집권이 목표가 아니’라는 손학규 전 지사의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은 지난 4년 동안 오로지 대선승리를 위해 모진 고통과 수모를 겪어왔다. 정치학 교과서에도 정당의 존재이유가 정권교체라고 돼 있다”면서 “정당의 존재이유를 거부하고 국민을 어지럽히는 발언은 삼가야 한다. 백만 당원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고진화 의원을 겨냥,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면 당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면서 “당에서 공천을 주고 의료보험료도 내 주는데 다른 곳에 가서 놀고 어울린다면 당은 무엇이냐”고 따졌다.
손 지사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나라당이 과거로 회귀하면 보수가 아니라 수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정체성 논란이 당내에서 가열되고 있는 것과 관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그 배후로 지목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실제 당 정체성 논란을 촉발시킨 인사들이 주로 박 전 대표 지지 성향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수 성향의 영남 중진들을 중심으로 개혁파 배제론이 공감을 얻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결국 손학규·원희룡·고진화가 한편이 되고, 그 대척점에 박근혜가 서 있는 모양새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사실 정체성 논란의 본질은 박근혜대 이명박 대결이다. 즉 박근혜 대 이명박·손학규·원희룡·고진화의 1대 4 싸움이라는 뜻이다.
실제 손 전 지사나 원 의원과 가까운 ‘수요모임’ 소속 의원들 상당수가 이명박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전 시장이 정체성 논란을 피해 숨어있더라도, 그 중심에 자신이 서 있다는 점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싫든 좋든 이 전 시장은 손·원·고와 손을 잡고, 박근혜와 대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명박=손·원·고’라는 등식이 성립할 것이다.
출처: 시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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