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6일 회사로부터 2억원을 수수한 혐의(배임수재)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현대차 이헌구 전 노조위원장이 재임했던 두 차례의 임기 동안 노사간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 전 위원장이 1991년 9월 현대자동차 노조 3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그해 11월 노조는 연말 추가 성과금을 요구, 노사갈등이 시작됐다.
노조는 임단협 기간도 아닌데도 대의원대회에서 회사 측에 성과금을 요구하자는 안건을 상정, 통과시킨 뒤 연말 성과금 150% 지급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결국 파업을 택하고 12월17일부터 불법 파업을 시작, 1992년 1월25일까지 모두 35일간의 장기 파업을 벌였다. 당시 회사는 차량 7만9천876대를 생산하지 못해 모두 5천328억원의 생산차질을 빚었다.
회사는 노조의 파업에 맞서 1992년 1월15일부터 1월25일까지 사상 처음으로 휴업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이에 노조는 1월16일부터 1월21일까지 울산공장을 점거했다.
결국 3대 노조집행부는 성과금을 받아 내지도 못한 채 이 전 위원장 등 노조간부 70여명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되는 사태를 맞았다.
이 전 위원장이 구속되면서 노조집행부는 곧바로 와해되고 그해 9월 윤성근 위원장의 4대 집행부가 들어섰다.
이 전 위원장은 이후 1994년 2월 다시 복직한 뒤 현장노동조직 등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이듬해인 1995년 5월 해고자 출입을 막는데 항의해 분신한 양봉수씨 사건 당시 8일간의 불법 파업투쟁에 동참했다가 결국 두번째 구속됐다.
이후 회사에 복직, 2001년 10월 10대 위원장으로 재기한 이 전 위원장은 그해 11월29일부터 20일간, 2002년 5월10일부터 13일간, 2003년 6월25일부터 25일간 등 임기 2년2개월 동안 3번 임.단협 파업을 벌 였다. 이 때 회사는 차량 27만2천987대를 생산하지 못해 3조6천54억원의 생산손실을 입었다.
배임수재 사건이 발생한 2003년 7월 말에는 현대차 노조가 그해 임단협 파업을 벌이고 있었던 때였고 이 전 위원장은 협조 명목으로 회사로부터 2억원을 받은 지 일주일도 안된 8월5일 파업을 끝냈다.
이 전 위원장은 이후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현지사) 등의 현장노동조직에서 다시 활동하다 2004년 1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으로 일했으며, 울산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패하자 사퇴하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울산=연합뉴스) 장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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