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보호, 어디까지가 정부의 의무인가. 외교통상부가 최근 잇달아 지적받고 있는 재외국민 보호 `태만' 문제와 관련, 이런 근본적 화두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해부터 동원호 피랍사건, 마약운반 혐의로 해외 감된 장미정씨 사건, 주중 대사관 여직원이 국군포로 장무환씨의 도움 요청을 거절한 `대사관녀' 사건, 탈북한 납북어부 최욱일씨를 주 선양(瀋陽) 총영사관 직원이 박대한 `영사관 남' 사건 등으로 계속 여론의 뭇매를 맞아왔다.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진 데는 기본적으로 영사 담당 인력 부족과 영사 인력의 소양 부족, 교육부족 등이 주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는게 사실이며 외교부도 이 점을 인정하고 개선노력을 하고 있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외교부는 국민들이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 의무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치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의 한국인 보호 의무와 해외의 한국인 보호 의무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를 비교하면 후자가 과도하게 높다는 것이다. 일례로 마약운반 혐의로 프랑스 사법당국에 수감됐던 장미정씨 사건의 경우 변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어 통역, 재판서류 번역 및 송달 등 지원을 정부로부터 받지 못했다는 장씨 입장이 언론을 통해 부각되면서 외교부는 엄청난 질타를 받아야 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선진국들 사례를 보더라도 변론준비 과정에서의 통역 및 재판서류 번역 등은 원칙적으로는 당사자들이 부담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외교부는 이 처럼 국민들의 기대치와 정부가 할 수 있다고 보는 역할 사이에 괴리가 큰 만큼 공감대를 찾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판단 아래 연내에 재외국민 보호의 무의 범위를 규정하는 영사업무 지침을 새롭게 만들기로 했다. 외교부는 국민들이 재외국민보호에 대한 정부의 의무 범위를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의 의무 범위를 키우기 위해서는 세수(稅收) 확대를 통한 외교부 인력 및 예산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약 300명에 불과한 외교부 영사 인력으로는 연간 1천만명이 넘는 해외여행자와 약 670만명에 달하는 재외동포들이 만족할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해외에서 연 평균 7천건 이상 생기는 한국인 관련 사건.사고를 감당하기에 벅차다는게 외교부의 항변이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영사서비스를 가능하게 할 정도의 세수 확대를 국민 들이 감수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국민 공감대 하에 명시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재외국민 보호 의무의 범위에 대해 국민, 정부, 언론 등이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는 점"이라며 "국민들이 외교부의 예산과 인력을 넘어서는 수준의 서비스를 원한다면 세금을 더 부담할 용의가 있는지도 확인되어야 한 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