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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시사주간지 슈피겔 창간 60주년

진보적 논조.탐사보도.. 수많은 스캔들 폭로

  • 연합
  • 등록 2007.01.05 20:00:45

 

독일 최고 권위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4일 창간 60주년을 맞이했다. 진보적인 논조와 탐사보도로 유명한 슈피겔은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부정과 부패가 있는 곳을 과감하게 파헤침으로써 독일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독일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47년 1월 4일 영국군 점령지역인 하노버에서 처음으로 '데어 슈피겔(Der Spie gel)'이라는 제호의 잡지가 발간됐다. 슈피겔의 전신은 1946년 영국군 정보장교 존 찰로너가 설립한 '디제 보헤(Diese Woche)'지만 디제 보헤는 독일 주둔 연합군에 비판적인 논조로 점령군 사령부의 압박을 받았으며 이에 따라 찰로너는 이 잡지를 포기했다. 하노버에서 활동하던 젊고 패기 만만한 루돌프 아우크슈타인(1923~2002년. 당시 23세) 기자는 찰로너로부터 디제 보헤의 발행권을 인수한 뒤 제호를 슈피겔(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뜻)로 바꾸고 진보 성향의 새로운 잡지의 탄생을 알렸다.

 

슈피겔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동한 아우크슈타인은 슈피겔의 공격적인 논조와 탐사보도를 주도했다. 이런 그의 편집 방침은 슈피겔이 수많은 정치적 스캔들을 파헤치는 데 공헌했으며 "슈피겔을 피해갈 수 있는 스캔들은 없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슈피겔이 결정적으로 정치권력과 맞선 것은 1962년 발생한 소위 '슈피겔 사건' 을 통해서다.

 

1962년 10월 8일자 슈피겔은 당시 서독군의 방위태세를 문제 삼는 기사를 게재 했다. 슈피겔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서독 정부는 이 기사를 빌미삼아 슈피겔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개시했으며 사법당국은 '군사기밀 누설죄'를 적용, 슈피겔 본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발행인인 아우크슈타인을 구속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부의 언론탄압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불러 일으켰으며 결국 슈피겔 탄압을 주도한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가 임기 2년을 남겨 놓은 채 물러 나고 프란츠 슈트라우스 국방장관도 사퇴할 수 밖에 없었다.

 

슈피겔은 그 이후에도 1984년 오토 그라프 람스도르프 경제장관의 뇌물 스캔들 을 파헤쳐 그를 사임시켰으며 1999년에는 기민당 비자금 스캔들 보도에서 정치인의 비리를 잇따라 폭로함으로써 정치권의 비자금 관행에 쐐기를 박았다. 1994년 슈테판 아우스트가 편집인에 오른 이후 슈피겔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 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해에 슈피겔은 전 세계 잡지로는 처음으로 온라인에 진출했고 특히 시사주간지 포쿠스(1994년 창간)가 화려한 편집과 다양한 읽을 거리로 시사주간지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함에 따라 슈피겔도 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 다. 최근에는 슈피겔에 대해 과거의 날카로움이 무뎌진 모습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슈피겔을 통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를 바라는 독자들이 있는한 슈피겔의 명성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연합뉴스) 송병승 특파원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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