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5일 한행수(韓行秀) 주택공사 사장의 사의 표명 사실과 함께 수리 방침을 밝히고 나선 것은 그간의 인사 관행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인 조치로 볼 수 있다.
공기업 임원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의 사퇴 등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
가는 등 가급적 조용하게 일을 처리해 왔던 게 청와대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청와대가 대변인 정례 브리핑을 통해 한 사장의 사의표명 사
유까지 공개할 정도로 적극적인 `공론화'를 시도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인 윤승용(尹勝容)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한 사
장의 사의 표명 사실을 공개하면서 "일부 부적절한 처신과 업무에 관한 충실성, 성
실성이 문제가 됐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한 사장의 부적절한 처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업무 태만이 '경질'의 주요한 원인일 것이라고 말
하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부동산 정책의 한 축인 주택 공급물량 확대를 추진해야 할 주
공이 그동안 청와대의 기대에 부응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고, 특히 한 사장
이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채 오히려 업무에 소극적이었다는
것.
이 같은 '업무 태만'이 청와대의 `요주의 대상'으로 올라 있었던 상태에서, 최
근 업무와 관련한 그의 부적절한 처신이 포착돼 사표를 받는 절차를 밟아 경질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잡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일각에선 하도급 납품비리 개입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사법처리 대상이 될 만한 금품비리 등의 문제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
는 업무열의 부족이 물러나게 된 핵심적인 이유라고 전했다.
때문에 한 사장 경질에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임
기말 국정운영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직사회 장악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다.
노 대통령은 앞서 지난 3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선거가 있는 해가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데 아무래도 국정이 좀 해이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옛날에
그랬다고 해서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공무원들의 기강해이와 무사안일, 정치권 줄대기, 복지부동 등 과거부터 임기말
이면 되풀이됐던 국정이완 가능성에 미리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었다.
전날 과천청사 국장급 공무원 격려 오찬에서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원동
력은 공무원"이라며 공무원들의 능력을 극찬으로 격려하면서도, 이날 주공 사장을
경질한 것은 공직 사회에 '당근'뿐만 아니라 '채찍'을 드는 것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청와대의 이번 조치는 노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 추진력 확보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며, 그런 맥락에서 한 사장을 '시범 케이스'로 삼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낳고 있다.
한 사장이 노 대통령의 고교 동문으로 참여정부 출범 이후 여권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남다르다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 사장은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대표이사와 삼성홈E&C 회장을 역임한 CEO(최고
경영자) 출신으로 열린우리당 창당 때 재정위원장을 맡았고 2004년 11월 주공 사장
으로 발탁됐다.
여권 내에서 몇 안되는 대기업 전문경영인 출신인 데다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라는 점 때문에 지난해 11월 건교장관 물망에 오르는 등 경제부처 개각이 있을
때마다 장관 후보로 줄곧 하마평에 오르곤 했다.
그런 만큼 한 사장의 불명예 퇴진은 공직사회에 미치는 충격파가 상당할 전망이
다. 청와대도 대통령이 동문 정치인을 `읍참마속'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노 대
통령의 안정적 국정 마무리를 위한 공직기강 확립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
위기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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