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술자리 보도 직후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 총재권한대행과 뉴시스 강원본부장 김태겸이 가짜 술자리 장소를 물색한 정황이 녹취를 통해 드러났다. 두 사람은 2022년 10월 29일 통화에서 "그 집을 카페로 오픈하는 건 확보해 놓고 우리가 상황을 봐서 하자"고 논의했다. 청담동 술자리를 가짜 뉴스로 만들기 위한 치밀한 은폐 공작이었다.
첼리스트 입에서 먼저 나온 이름, 김태겸
김태겸은 당시 뉴시스 강원본부장이자 상무급 임원이었다. 그의 이름은 청담동 술자리 목격자 첼리스트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2022년 7월 20일 새벽, 첼리스트가 남자친구와 나눈 통화에서다. 청담동 술자리 바로 다음날이었다.
첼리스트는 "오늘 같은 날은 뉴시스 그런 애들도 없더라. 딱 변호사들만 있어 김앤장 애들만"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래 뉴시스 김태겸이 한번 되게 친하다 그랬잖아. 근데 그 총재도 거기도 전화 통화를 막 했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거기 딱 그 주변 인물들이 항상 뭘 하면은 그런 사람들이 껴. 근데 오늘은 못 오게 하더라고"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태겸이 평소 이세창 주변 핵심 인물이었지만, 7월 19일 청담동 술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첼리스트가 김태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세창과 첼리스트가 처음 만난 자리에 김태겸도 동석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이세창 본인도 법정에서 인정했다.
"수그러드는 단계, 직접 나서지 마라"
청담동 술자리 보도 닷새 후인 10월 29일 오후 5시 34분, 김태겸이 이세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첫머리부터 의미심장한 말이 나왔다. "연락을 주실 거다 그러면서 전화를 드렸는데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
이 말은 제3자가 먼저 이세창에게 김태겸의 연락을 예고했다는 뜻이다. 은폐 공작에 두 사람 외에도 다른 인물들이 가담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이세창은 청담동 술자리 보도 직후인 10월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격앙된 목소리로 해명했다.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직을 걸겠다"며 가짜 뉴스로 몰아가자 대부분 언론이 관심을 거뒀다. 10월 28일에는 대구에서 강연을 할 정도로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이세창 휴대폰에서 추출된 사진에는 그날 윤상현 의원과 함께 찍은 모습도 담겨 있다. 같은 날 민주당사 앞 항의 방문도 있었다.
이세창은 김태겸과의 통화에서 전날 있었던 민주당사 항의 방문을 설명했다. "김의겸한테 성명서 낭독하고 쏙 빠져야지." 김태겸이 "네 나오셔야 돼요"라고 답하다가 곧 제동을 걸었다. "당분간은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서시는 건 좀... 이게 지금 수그러드는 단계인데."
이세창이 성명서만 낭독하고 빠졌다고 하자 김태겸은 "잘하셨네요. 계획 잘하셨네요"라고 평가했다. 전면에 나서지 말고 로우키로 대응하라는 조언이었다. 언론사 간부다운 판단이었다. 여론이 잦아드는 국면에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밴드마스터와 가짜 카페, 복수의 시나리오
통화에서는 이성권 당시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의 이름도 등장한다. 김태겸은 "이성권 위원장 생각이 맞았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대책 논의에 또 다른 참여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세창은 "맞고 말고. 근데 더 나가서 그 자식들 무슨 뭐 올겐(밴드마스터)을 불러다가"라고 답했다. 김태겸이 "그것도 이제 할 필요 없어요"라고 하자 이세창은 "논의할 수도 있어요"라고 맞받았다.
"그 자식들"이라는 복수 표현에서 최소 두 개 이상의 팀이 각각 다른 시나리오를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 밴드마스터를 증인으로 내세워 "그날은 대통령이나 법무장관이 오는 큰 술자리가 아니라 소규모 생일 파티였다"고 해명하는 방안이 검토됐던 것이다.
결정적 대화는 그다음에 이어졌다. 김태겸이 말했다. "근데 이런 거였죠. 사실은 그 집을 카페로 오픈하는 건 그렇게 확보를 해놓고 우리가 상황을 봐서 하자고 그랬던 거였잖아요." 이세창은 "그것도 이런 저런"이라며 동의했다.

가짜 술자리 장소를 미리 확보해두고, 필요하면 공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상황을 봐서"라는 표현은 다른 대응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예비 카드였음을 보여준다.
통화에서는 용인시 부시장도 언급됐다. 김태겸이 "용인"이라고 하자 이세창은 "부시장이 그쪽 전문 담당하는 시장"이라며 "이름이 내가 잘 아는 애더만"이라고 말했다. 당시 용인시 부시장은 황준기였다. 황준기는 2010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자치비서관을 지낸 인물이다. 이세창이 언급한 '잘 아는' 용인 부시장이 황준기일 가능성이 높다.
1단계 통화 기록 조작, 바로 들통
은폐 공작은 단계별로 진행됐다. 1단계는 가짜 통화 기록이었다. 11월 10일 이세창은 경찰에 7월 19일 당일 영등포에 있었다는 통화 발신 내역을 제출했다. 청담동에 가지 않은 것처럼 꾸미려 한 것이다. 이 공작이 성공했다면 밴드마스터도 부를 필요 없고, 확보해 둔 카페를 공개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조작은 금방 들통났다. 아들이 벌금형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기술자가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세창은 직접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첼리스트 휴대폰 내비게이션 파일이 조작됐다는 지적에 "그렇지 그 남자가 했나"라고 답하더니 곧 "네가 말한 대로 걔가 그런 기술이 있겠나. 누가 누가 해줬겠지"라고 말했다. 조작 팀의 존재를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2단계 첼리스트 사과 문자, 공개 무산
2단계는 첼리스트 사과 문자였다. 11월 11일 이세창 휴대폰에서 첼리스트가 보낸 것처럼 꾸민 문자가 발견됐다. "저 정말 무섭고 제가 무슨 정신에 이렇게 큰일을 저지른 건지 어제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한번만 없던 일로 해주세요."
하지만 이 문자는 공개되지 않았다. 첼리스트가 11월 14일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기 때문이다. 이 언론 플레이가 성공하려면 첼리스트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런데 당시 첼리스트는 트위터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상의를 하고 있는 단계였다. 확실하게 매수됐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런 조작 문자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세창 은폐 팀에서 첼리스트를 상대로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티케'는 김태겸이 말한 그 '가짜 카페'인가
1, 2단계가 모두 불발되자 3단계가 실행됐다. 11월 13일 국민일보에 서울 청담동의 '티케'라는 주점이 청담동 술자리 장소로 처음 보도됐다. "테이블 두 개뿐인 작은 술집"이라는 묘사도 나왔다. 밴드마스터가 경찰에 제보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여기서 시간 순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10월 29일, 김태겸은 이세창에게 "카페를 확보해 놓고 상황 봐서 오픈하자"고 말했다. 11월 8일, 경찰이 티케 여사장에게 전화로 참고인 조사를 했다. 경찰은 출석 조사를 요구했지만 여사장은 거부했다. 경찰이 "이세창, 정종승, 대통령, 법무부장관, 김앤장 변호사 30여명 등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고, 여사장은 "본 적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11월 9일자 경찰 수사보고서를 보면, 이세창과 정종승의 진술을 토대로 티케가 술자리 장소로 지목된다. 여사장은 "본 적 없다"고 했는데, 이세창과 정종승이 "거기였다"고 진술한 것이다.
결정적 증언은 나중에 나왔다. 경찰 조사가 한참 지난 뒤, 티케 여사장이 취재진 앞에서 입을 열었다. "이세창이 여기로 하면 안 되겠냐고 했는데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도 여기를 찍었다." 여사장은 이세창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이세창은 경찰에 티케를 술자리 장소로 진술했다는 뜻이다. 여사장은 이 사실을 경찰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정리하면 이렇다. 김태겸은 "카페를 확보해 놓고 상황 봐서 오픈하자"고 했다. 이세창은 티케 여사장에게 "여기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여사장은 거절했지만 이세창은 경찰에 티케를 지목했다. 티케가 바로 김태겸과 논의했던 그 '가짜 술자리 장소'였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위험한 카드였다. 당사자인 여사장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카드는 청담동 술자리 은폐 공작의 발목을 잡았다.
춘천 사무실은 폐쇄, 원주에서 전면 부인
김태겸을 직접 만나기 위해 뉴시스 강원본부를 찾았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춘천으로 나와 있다. 직접 찾아가니 문이 닫혀 있었다. 관리소 직원은 "뉴시스가 나간 지 2년도 넘었다"고 했다. 김태겸 이름으로 춘천발 기사가 계속 나가는데 사무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원주로 옮긴 강원본부에서 기자를 만났다. "본부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휴대폰으로 김태겸과 통화가 연결됐다. "이세창 총재님이 청담동 술자리 때문에 곤욕 치르실 때 본부장님이 고민 많이 논의하셨다"고 하자 김태겸은 "그런 적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카페 확보 얘기를 꺼내자 더 강하게 부인했다. "누가 또 말을 이상하게 만들어 가지고. 난 그 애하고 관계도 없고 알지도 못하고." '그 애'는 첼리스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첼리스트는 김태겸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세창도 법정에서 첼리스트와 처음 만난 자리에 김태겸이 동석했다고 증언했다.
통화를 연결해줬던 뉴시스 강원본부 기자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제가 기억이 나는 얼굴, 기억이 났어요." 뉴탐사 강진구 기자임을 알아챈 것이다. "본부장님 이덕화입니다. 하지 마세요"라며 급히 휴대폰을 가로채 통화를 끊었다.
이세창 "그놈 나쁜 놈이라고 했더니 연락 없어"
이세창에게 직접 물었다. "김태겸과 지금도 연락하느냐?" 의미심장한 답변이 나왔다. "안 한다. 그놈 내가 아주 나쁜 놈이라고 좀 했더니 자기가 나쁜 짓 한 것도 없는데 왜 그러냐고 하지도 않아."
"법정에서 김태겸 이름 얘기한 게 문제였나?" 이세창은 "내가 이야기를 했어"라고 답했다. 첼리스트와 처음 만난 자리에 김태겸이 동석했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증언한 것이다. 하지만 왜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청담동 술자리와 직결된 문제로 보인다. 일반적인 이유로 사이가 벌어진 거라면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을 것이다.
대책 논의를 물어보자 격하게 반발했다. "대책을 이 사람아 또 지랄. 죄를 지었어야지 대책을 논의하지." 하지만 녹취에는 두 사람이 구체적으로 대책을 논의한 내용이 담겨 있다.
김태겸이 카페를 확보했다는 얘기를 꺼내자 혼란스러운 답변을 쏟아냈다. "나는 모르겠다. 나는 그놈이 이 또라이라 그랬나. 나는 전혀 상관도 없는 것을." "그 기자란 놈이 왜 그런 짓을 하고 다니냐. 거짓말을 했으면 혼내줘야지." 오히려 김태겸을 비난했다. 녹취에서 두 사람이 구체적으로 대책을 논의했지만, 이세창은 모든 책임을 김태겸에게 돌렸다.
경호처 차량 운행일지 '비공개', 그러나 정보는 존재
대통령 경호처에 2022년 7월 19일 차량 운행일지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결과는 비공개였다. "경호 목적상 인원, 조직, 근무 형태와 관련된 정보"라는 이유였다.
주목할 점은 '부존재'가 아니라 '비공개'라는 것이다. 정보가 없으면 부존재로 답변한다. 비공개는 정보가 있는데 보여줄 수 없다는 뜻이다. 윤석열 정권 당시 대통령실 직원들이 컴퓨터와 기록들을 싹 다 은폐해서 빈 공간에서 업무를 시작했다는 강훈식 실장의 발언을 고려하면, 부존재로 답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정보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경호처가 청담동 술자리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법무부는 이미 7월 19~20일 수행 인력이 14시간 초과 근무했다고 공개했다.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밤에 움직였다는 증거다. 경호처 차량 운행일지가 공개되면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동선도 확인할 수 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2023년 2월 국정원 업무보고 자리에서 윤석열이 소폭(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을 마시다가 만취해 경호관에게 업혀 나갔다는 증언을 공개했다. 이 시기는 강진구 기자에 대한 2차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때다. 윤석열의 음주벽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고 공공의 관심사였다. 대통령 술자리에 관한 의심과 보도는 충분한 공익적 가치가 있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