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안팎에서는 ‘일베 회원’ 논란이 된 수습기자 한 명을 두고 벌인 KBS노동조합(1노조)과 언론노조KBS본부(2노조)의 갈등이 기본적으로 세력다툼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KBS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논란의 당사자인 수습기자가 리더십도 엿보이는 등 공채로 합격한 또래 수습기자들 가운데에서도 눈에 띄는 신입이었다고 한다. 문제의 일베 논란이 터져 나온 건 신입 기자가 1노조 가입 의사를 밝히면서다.
수습기자가 1노조에 가입하자 내부 직원 누군가에 의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탐사보도기법이 동원돼 해당 기자의 수천개의 댓글 등 개인정보가 취합됐고, 그 가운데 ‘일베’에 가입해 쓴 문제의 댓글들만을 모아 외부 매체에 제보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1노조는 이를 2노조에 의해 치밀하게 이루어진 ‘1노조 파괴공작’으로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2노조의 작전은 대성공한 셈이 됐다. 1노조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수습기자 6명은 2노조에 가입하게 됐다. 1노조 측 관계자는 “수습기자 6명이 가입신청서를 냈는데, 그 다음날부터 논란이 있었다. 기자들이 가입신청서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해 왔고, 또 본부노조 쪽에서도 요청이 세게 들어오고 있어서 6명에 대해 일괄적으로 철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KBS본부노조의 ‘일베 낙인’ 효과는 당사자뿐 아니라 심적 부담을 느낀 다른 수습기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도 완벽한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문제의 수습기자도 본부노조 측이 돌린 가입신청서를 받은 이상 본부노조 가입이냐 아니면 본부노조 측 요구대로 입사 포기냐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다. 폐쇄적이고 엄격한 조직문화가 특징인 KBS 기자 조직에서 무노조로 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어떤 선택이든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혹은 이번 논란이 당사자나 양대 노조 모두에게 부담스럽다는 점에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로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여론이 관심이 사라지면 조용히 본부노조에 가입할 가능성도 있다.
기자는 당사자의 생각과 판단을 듣기 위해 문제의 수습기자의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일베 기자’ 논란 본질은 ‘정치운동’ ‘정치투쟁’의 문제, 2노조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번 ‘일베기자’ 논란으로 다시금 확인된 건 언론노조KBS본부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투쟁력이다.
KBS노동조합 측 사람들도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일베기자 논란에서 보듯 본부노조가 그런 부분들을 잘 이용하는 점이 있다”고 했다.
1노조와 2노조가 이렇듯 투쟁력 차이를 보이는 데엔 양 노조의 성향 차이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본래 KBS 1노조와 2노조는 모두 언론노조 소속이었다. 그러던 게 정연주 전 사장 재임 시절 정치운동 일변도의 언론노조 노선에 염증을 느낀 노조가 2008년 조합원 투표로 다수의 찬성에 힘입어 언론노조 탈퇴를 전격 결정, 기업별노조로 전환했다. 노조의 이 같은 결정에 지금의 2노조는 반발했고, 노조를 탈퇴해 새노조를 만들어 다시 언론노조 산별노조로 가입해 오늘에 이르렀다.
언론노조 탈퇴를 결정할 당시 KBS 노조는 과거 집행부가 정치권에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하면서 일부를 횡령하는 등 수년에 걸쳐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언론노조와 충돌했다. KBS노조는 2008년엔 정연주 사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언론노조와 노선 차이 등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KBS노조 측은 언론노조가 노무현 정권의 낙하산 사장인 정연주 사장에 대해선 침묵하다가 정권이 바뀌자 돌연 '정연주 임기 보장=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당시 언론노조가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이 언론노조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명하는 등의 극단적 조치를 취한 것도 언론노조 탈퇴 배경의 하나가 됐다. 이후 KBS노조는 언론노조 산하에서 벗어나 '독립 노조'로 전환하기 위해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기 위해 투표를 실시했고, 결국 KBS 전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투표율 81.8% 67.1%의 찬성으로 언론노조를 탈퇴했다.
이 같은 역사만 보더라도 순수노조의 성격을 고집한 1노조와 정치투쟁 성격이 강한 2노조의 확연한 차이가 감지된다. ‘일베기자’ 논란이 일종의 ‘정치투쟁’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그만큼 2노조의 투쟁력이 더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언론노조 지부나 본부는 산별노조(언론노조)의 로봇일 뿐”
반면에 2노조는 그만큼 특정 정치, 이념진영에 기울어져 있다는 언론노조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KBS의 한 관계자는 “KBS본부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로 돼 있고 결국은 민주노총 강령과 지시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원칙상 임금 협상의 자율권도 없다. 그 권한이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에게 있고 본부노조는 그걸 위임받는 것”이라며 “이런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산별노조가 되면 밑의 지부는 자율권이 없다”며 “본부노조도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들 스스로는 ‘자, 봐라 우리가 임금 협상도 하지 않냐, 충분히 자율성이 있다’고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언론노조 위원장한테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라며 “과거 KBS노조가 언론노조 소속일 때 조합비를 언론노조에 납부하도록 돼 있었다. 언론노조가 받아 다시 지부나 본부에 돈을 나눠주는데 그게 불편해서 노조가 직접 조합비를 걷었었다. 그 문제로 과거에 재판까지 붙은 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그는 “그러나 어쨌든 기본적인 원칙은 언론노조가 조합비를 받게 돼 있다. 지부나 본부가 받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론노조가 금속노조처럼 세진 않아서 각 지부나 본부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진 못하지만 산별노조 원칙상 보면 언론노조 지부나 본부는 산별노조의 로봇일 뿐”이라고 했다.
이 같은 설명에 따르면 실제 자율권이 어느 정도로 행사되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KBS본부, MBC본부, YTN지부 노조 등은 모두 민주노총 산별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지시에 따르게 돼 있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사와 YTN 등의 언론노조가 유독 정치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데엔 이런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KBS ‘일베기자’ 논란은 단순히 한 수습기자의 부적절한 댓글이 핵심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잔가지를 따라 올라가보면 핵심 줄기는 KBS 주도권을 쥐려는 노조 간의 세력 다툼이, 그 위에 언론노조의 문제가 있다. 더 나아가 확장시키면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민주노총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주연 기자 phjmy97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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