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언론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담긴 내용을 둘러싼 여권의 갈등 분위기를 비판하고 나섰다. 한겨레신문은 야당 뿐 아니라 현 정부가 불편함을 드러낸 이 회고록이 궁지에 몰린 박근혜 정부가 코너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부여했다며 비꼬았고, 경향신문은 현 정부와 전 정부를 싸잡아 비판했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둘러싼 여권의 갈등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이들 신문들은 보수정권 전·현 정부의 갈등을 집중 부각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처럼 새누리당 내 친박과 친이(비박)갈등을 조장하는 보도행태는 야당의 존재감을 키우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 지지율 추락이 새누리당 지지율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야당의 지지율을 키우지도 못하는 것은 그 방증으로 보인다.
한겨레 권태호 정치부장의 의미 없는 정치공학적 분석
이 전 대통령 회고록 문제를 집중 부각하고 있는 한겨레신문의 이 같은 정략적 시각이 두드러지는 건 2일자 권태호 정치부장의 칼럼 <박근혜는 이명박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다.
권 부장은 이 칼럼에서 “1970년 김영삼·김대중 이후 가장 치열했던 대선 후보 경선이었던 2007년 이명박·박근혜 경선 당시, 둘은 딴 세상 사람 같았다.”며 “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점 외에는 성별, 성장과정, 성격, 스타일, 어느 하나 같은 구석이 없었다.”고 먼저 운을 뗐다.
권 부장은 인터뷰 경험과 지지자들의 차이를 통해 이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이 둘을 다시 그때로 돌려세운 듯하다.”며 “그러나 지금 둘을 보면, 이란성 쌍둥이처럼 다른 듯 같아 보인다. 현격히 떨어지는 자기객관화 능력, 지지율에 일희일비하는 점, 자신이 큰 희생을 하고 있다는 착각, 남탓 하기 등 같은 점투성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권 부장은 “이명박은 왜 지금 회고록을 냈을까? 자원외교 국정조사 등 자신을 겨누는 칼끝에 대한 반박, 정치공간 확보? 그게 목적이라면 안 내는 게 나았다.”면서 “조금만 사려가 깊었다면, 내용은 차치하고 박근혜 정부 이후 내는 게 맞다. 외교적 논란도 그때쯤이면 덜 했을 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동관 전 홍보수석 말처럼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 나온 시점이 지금이라는 게 아마 맞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 분위기 속에 친이계가 국회 안팎에서 나름 ‘바른 소리’를 하며 반사이익을 얻어가던 차에 ‘자화자찬 회고록’으로 ‘이명박 수비’로 급격한 모드 전환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이전까지의 개혁 이미지도 급격히 탈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반면, 궁지에 몰리던 박 대통령 쪽은 ‘공공의 적’을 만나 코너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가졌다.”며 “박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여당 내 친박 세력과 야당의 공공의 적 노릇을 하니 궁지에 몰렸던 박 대통령이 이를 통해 위기탈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정치공학적인 분석을 한 것이다.
야권지가 못하는 비판한 중앙일보 “대통령 대체재도 못되는 야당 걱정스럽다”
야권 성향의 좌파신문들이 이렇듯 전·현 정부의 대립과 갈등에 관심을 보이는 사이 중앙일보는 박근혜 정부가 추락함에도 관심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야당 문제에 주목했다. 박승희 정치부장의 칼럼 <대통령의 대체재는 제1야당이 아니었다>가 바로 그것.
박 부장은 전대가 한창인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경선 후보자들의 연설을 찾아보았다면서 진짜 위기에 놓인 야당의 문제를 꺼냈다.
박 부장은 “대통령과 여당이 보완재라면, 대통령ㆍ여당의 대척점에 있는 야당은 대체재다. 그게 현실정치학 개론에 나오는 기본 이론”이라며 “그러나 이상하게도 통계정치학적으로 보면 2015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의 대체재는 새정치연합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부장은 그 근거로 대통령 지지율이 29%를 기록한 갤럽의 1월27~29일 조사에서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25%, 새누리당 지지율은 41%를 기록한 것을 언급하면서, 정윤회 문건 파동 시작 전인 작년 11월 18~20일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44%에서 현재 29%로 무려 15%p가 빠진 사이 정치적 대체재인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19%에서 25%로 고작 6% 상승에 그친 점을 지적했다. 이 기간 동안 새누리당 지지율은 42%에서 41%로 별 차이가 없었다.
지지율 수치 변화를 근거로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야당의 현실을 지적한 박 부장은 “지금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좋아할 수도, 좋아해서도 안되는 이 아이러니를 야당 지도자들은 어떻게 할 건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의 야당이 좌우한다. 야당이 어떻게 반대하고, 어떻게 정권을 다시 찾아올지를 깊이 있고 수준 높게 고민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 정치 수준도 정해진다. 대통령의 정치는 현재고, 야당의 정치는 미래형이기 때문”이라며 “지금 나는 지지율 29%의 대통령보다 지지율 25%의 제1야당이 더 절망적이고, 걱정스럽다.”고 비판했다.
박 부장의 이러한 칼럼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새누리당 친이, 친박 세력 갈등과 대립에 환호하고 부추기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야당 권력의 힘을 뺀 좌파언론이 전직 대통령 회고록을 놓고도 여전히 그 틀에 갇힌 행태를 보여줌으로써 암울한 야당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박주연 기자 phjmy97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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