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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진보 싸가지’ 논쟁

강준만·진중권의 ‘싸가지’ VS ‘콘텐츠’ 논쟁이 틀린 이유


[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최근 강준만 교수가 펴낸 책 ‘싸가지 없는 진보’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강 교수는 이른바 진보진영의 선거 패배를 ‘싸가지’ 탓으로 돌렸고, 진중권 교수는 “싸가지가 문제가 아니라 대중에게 할 말이 없다는 것이 문제로, 진보·개혁이 도덕 재무장 운동도 아니고”라고 했다. ‘싸가지(태도)’가 아닌 ‘콘텐츠 부재’라고 반박한 것이다. 필자와 같은 범부가 어쭙잖게도 그들의 갑론을박에 한마디 하려는 건 논쟁이 공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진보에게 없는 건 싸가지 인가, 콘텐츠인가’란 전제부터 공감하기 어렵다. 냉정하게 보자면 ‘진보’라 불리는 또는 자처하는 이들은 싸가지도 없고, 콘텐츠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싸가지와 할 말을 가지고 있어도 정치적으로 그것이 발현되기 어려운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한계와 모순을 알고도 방치하는 이상 싸가지 논쟁은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다. 언어유희를 즐기기엔 진보(좌파)세력의 현실이 그리 한가롭지 않은 것 아닌가.

당장 세월호특별법 처리만 놓고 봐도 ‘싸가지 없는 진보’ 논쟁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 수 있다. 세월호 정국에서 보여준 야권의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그들의 싸가지나 콘텐츠를 발견할 수 있었던가. 여당과의 합의를 두 번이나 깨면서 야당이 한 일이라곤 고작해야 광장으로 달려 나가 동조단식에 나선 것뿐이었다. 자신들이 여당과 합의한 것을 판판이 깨놓고도 야당의 책임있는 리더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곤 대뜸 “대통령이 참사를 잊었다”며 대통령 책임론부터 꺼내드는 것이었다. 여성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이 “XX년~” 거리는 그런 무지막지한 정서가 진영 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데도 별다른 문제의식도 갖지 못하고, 국회를 뛰쳐나가 단식투쟁하는 것 외엔 보여준 것도 없다. 야권 지지도 1위라는 문재인 의원의 단식을 콘텐츠의 부재로 보지 않고 “지금이야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지난 열흘간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난 단식을 유권자들은 기억할 것이고, 언젠가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주간경향-문재인 단식, 무엇을 얻었나)”이라는 시각은 문제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싸가지’ ‘콘텐츠’ 있어도 뭉개는 폐쇄적 공포정치가 지배하는 야권의 구조적 모순

강준만 교수는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좋은 정책과 이념이라도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 불일치’ 등의 문제에서 싸가지가 없게 행동한다면 유권자와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현재 ‘진보’란 세력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겉핥기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건 ‘진보’의 문제만이 아닌 ‘보수’도 마찬가지인 ‘인간 됨됨이의 문제’에 해당될 뿐더러, 이런 주장은 마치 진보가 콘텐츠는 충실하지만 태도가 불량해 집권하지 못한 것처럼 잘못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그렇다고 진중권 교수처럼 할 말만 있으면 싸가지 없음은 문제가 안 된다는 시각은 맞을까. ‘싸가지 없음’의 대명사로 굳어진 유시민 의원이 콘텐츠가 부족한 인물이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일찌감치 정계 은퇴를 선언한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유시민은 싸가지가 없었던 것일까, 할 말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하는 말이 문제였던 것일까.

한겨레신문의 모 논설위원은 진보의 싸가지 논쟁을 소개하면서 “무능과 싸가지 없음이란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보는 결코 집권하지 못할 것”이라며 할 말을 싸가지 있게 하는 진보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무능한 진보’와 ‘싸가지 없는 진보’는 사실이나 과학보다는 풍문과 미신에 가깝다고 했다. 바로 이 대목이 진보진영의 ‘싸가지 논쟁’이 공허한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자신들의 ‘무능’과 ‘싸가지 없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런 비판을 적당히 수긍하는 척하면서도 결국은 뭉개고 넘어가는 이런 식의 어정쩡한 태도 말이다. ‘진보 싸가지론’ 논쟁을 독이 되느냐, 약이 되느냐의 시각으로 보는 그런 ‘싸가지(태도)’로 접근하는 ‘콘텐츠 실력’도 조금 안쓰럽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야권에도 싸가지 있고 할 말을 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조경태 의원과 김영환, 황주원 의원 등 대부분 온건파로 불리는 인사들이다. 이들은 친노와 강경파들과는 달리 추락하는 당의 지지율에 대해 “무능력 탓”이라고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들만의 아집에 뭉쳐있는 내부를 향해 “우리 안의 허위의식을 깨자”고 제안한다. 진보의 싸가지 논쟁이 정말로 생산적이 되려면 단지 태도냐 아니면 콘텐츠냐가 아니라 이런 내부의 목소리부터 ‘싸가지 있게’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진영 내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하면서 싸가지를 논하고 세월호 해법을 내놓으라니 기껏 단식투쟁, 장외투쟁을 꺼내고 ‘대통령의 7시간’만 물고 늘어지는 수준으로는 콘텐츠를 운운할 처지가 못 된다. 강준만, 진중권 등 소위 진보의 싸가지 논쟁은 그래서 공허하다. 야당이 집권하지 못한 건 싸가지와 콘텐츠 이 둘의 부재가 크지만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내부의 목소리를 벌벌 떨게 만들고 원천 봉쇄하는 폐쇄적인 공포정치가 야당의 지배원리가 됐기 때문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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