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새누리당의 공천 기준이 심한 갈짓자를 그리고 있다. 중앙당 공천위에서는 “선거법 위반 문제 단호히 처리하겠다”는데 지역당에서는 선거법 위반 등 화려한 전력을 자랑하는 자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당당히 공천한다. 이렇게 잣대가 극과 극으로 다른 이유가 뭔지 그 지역의 당협위원장 국회의원에 질문이나 한 번 던져보고자 해도 “할 말 없다”며 답변을 거부한다. 평범한 국민이 갖는 의문 하나에 답변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건 현재 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정말로 할 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새누리당은 당대표실 등에 “새누리의 이름은 혁신입니다”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있다. 당당하다면, 적어도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정치 개혁’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구태 공천을 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식의 비겁한 태도로 변명조차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을 깔보는 오만이 아닐 수 없다. 경남 사천·하동·남해의 공천관리 책임이 있는 당협위원장 여상규 국회의원 얘기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인해 온 국민이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온갖 구태를 되풀이하는 정치권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취지의 지적을 한 적이 있다. 새누리당과 특히 경남 사천·하동·남해 지역에서 벌어지는 구태 공천의 결정판과 같은 상황을 몇 차례 강하게 비판했다. 필자의 이런 비판은 온갖 비리 혐의를 받고도 굳건한 토호세력의 음습한 모습을 보면서, 바다 한 가운데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처럼 무의미하고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법이다. 지역의 사정을 전혀 고려치 않은 새누리당의 기계적 공천은 정치 개혁은커녕 구태 정치와 기득권 정치를 더욱 강화해줄 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거기에 아무리 ‘상향식 공천’이라는 포장을 덧씌워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언론이 모두 죽은 게 아니라면 당연히 비판과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천 취소와 토호 기득권 강화, 새누리당의 이해할 수 없는 두 얼굴
며칠 전 부산일보의 “새누리당이 '공천혁명'이라고 자랑했던 상향식 공천제가 현직 단체장들에게만 유리하고 신인들에겐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전면적인 손질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다.”는 기사가 바로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이 취지와 달리 민의를 왜곡하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일부에서 꾸준히 지적하고 있지만 역시 앞장서 문제를 지적할 책임은 언론에게 있다. 부산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부산·경남의 14곳에서 현직 단체장들이 모두 공천을 받았으며, 현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 경선룰에 대해 “이런 제도라면 신인들은 영원히 진입할 수 없다”는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의 자조적 고백도 전했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이 ‘우선 교체대상’으로 꼽았던 부산지역 구청장들 대부분이 그대로 살아남았다는 코미디 같은 사실만 봐도 현재 ‘산으로 가는’ 새누리당의 공천 현실을 똑똑히 알 수 있다. 정치 개혁이란 결국 새 피 수혈, 즉 인물을 통해 하는 것인데,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이란 게 이에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이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새누리당 중앙당 공천위는 불법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상주시장 공천을 받았던 성백영 후보의 자격을 박탈했고, 경주 시장 후보였던 박병훈 후보 측의 전화착신 경찰 조사를 근거로 시민여론 왜곡과 당심에 위배됐다면서 박 후보의 자격도 신속히 박탈했다. 새누리당은 결국 상주시장 선거구는 무공천하기로 했고, 경주시장 선거구는 다른 후보로 교체했다. 또 선거 운동원에게 불법으로 금품 지원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이유로 서울의 강동구청장 후보 공천을 취소했고, 인천의 강화군수 후보 경선은 특정후보 측의 금품 살포 논란으로 중단됐다고 한다. 캠프 관계자의 금품 살포 의혹이 제기된 경북 포항시장 한 예비후보는 자진 사퇴를 했다. 이렇게 새누리당은 경북과 서울 일부 지역에선 정치 혁신에 대한 의지대로 문제가 된 부분은 바로 잡고, 설령 공천이 확정됐더라도 번복하는 개혁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 모욕한 잘못된 공천 바로잡는 것이 새누리당이 할 일
그런데 오직 한 곳만 변함이 없다. 불법적인 금품 살포 의혹, 사전선거운동 혐의, 부정할 수 없는 선거법 위반 전과, 그 어떤 문제가 제기돼도 꿈쩍 않는 곳이 있다. 경남의 사천시장 선거에서 현직 시장에 대한 공천이 왜 부적절한지 분명한 사유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는데도 새누리당은 고압적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 ‘공천 개혁’에 대한 새누리당 중앙당과 경남도당의 기준이 다르기라도 하단 말인가? 서울에서는 부정부패 혐의, 정황이 드러나면 후보를 과감히 교체하는데 경남사천은 왜 정반대로 뭉개고 있나? 서울과 수도권은 분명한 공천 원칙대로, 지방은 토호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방식대로 가는 게 아니라면 공천 결과가 이렇게 분열적이고 모순되게 이뤄지고 있는 점에 대해선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게 아닌가.
필자는 이렇게 서울과 지방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수라백작 같은 현상에 대한 한 이유로 공천관리의 책임이 있는 그 지역 국회의원이 있다고 본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천명한 공천 개혁, 정치 개혁 의지를 공유하면서 줏대 있게 공천관리를 잘 하는 인물이냐, 그 반대의 인물이냐에 따라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책임전가와 나몰라라식의 태도만 고수하는 경남 사천·하동·남해 지역의 새누리당 국회의원 여상규 의원이 과연 어느 쪽인지는 독자와 국민 유권자 판단에 맡기면 충분하다. 여 의원은 적어도 사천시장 선거에서 단 한 차례의 TV토론회도, 단 한 번의 공청회도 열리지 못하고 깜깜이 선거가 되도록 만든 현 시장 주도의 불공정 경선에 분명한 경고장을 날렸어야 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사천시민과 국민을 무시한 것이고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제를 모욕한 셈이다.
새누리당이 정치 혁신은커녕 정치 신인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잘못된 공천 결과를 무시하고, 명백한 부적격 후보에 조차 손을 쓰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새누리당은 이미 일부 지역에서 불법선거운동과 금품 살포 혐의를 이유로 공천자를 교체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문제가 있는 지역에서, 특히 토호세력의 문제를 인식한다는 책임 있는 여당이 자신들의 공천 기준과 철학을 완전히 위배하고 지역토호의 기득권 강화라는 엉뚱한 결과를 낳은 일부 지역의 잘못된 공천 결과를 이대로 방기하는 건 무책임의 극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잘못된 공천을 바로 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다. 그것이야말로 구태와 선 긋는 새정치의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일부 지역의 잘못된 공천 결과를 뒤늦게라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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