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새누리당이 세월호 침몰로 중단된 경선일정을 재개했다. 삶은 잔인하게도 살아남은 자들에게 어제와 똑같은 일상을 요구하고 산 자들은 트라우마를 안고 어쩔 수 없이 그 삶을 따라야 한다. 그게 인간의 삶이고 그 축적이 바로 우리의 역사 아니던가. 기가 막힌 참사에 숨 쉬는 소리조차 죄스럽게 느껴져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할 일은, 넋 놓고 슬퍼하기가 아니라 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느슨해진 정신을 더욱 바짝 쥐는 일일 것이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여야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편법과 변칙이 체질화된 우리의 고질병이 그대로 증명된 이번 참사에 조금이라도 반성한다면 그 어떤 선거 때보다 더 깨끗하고 정정당당하게 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세월호와 함께 저 검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어린 생명들 앞에서 우리 정치권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반성의 모습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경선이 진행되는 일부 지역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정신들을 못 차렸다는 생각밖엔 안 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 보자는 비열한 욕심, 온갖 수법이 동원되는 더러운 불공정 경쟁, 선거판을 돈으로 바르는 구태가 횡행한다. 정치권이 정말로 욕을 먹어야할 것은 이런 것들이다. 법과 원칙, 상식을 짓뭉개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하면서도 당당한 태도다. 그러고도 질책하는 국민 앞에서 세월호 참사에 반성한다는 말은 쉽게 내뱉는다. 정치권의 이런 일그러진 모습을 ‘그쯤이야’하면서 무관심과 방관으로 흘려보내는 유권자의 태도도 문제다. 정치권과 유권자가 법과 원칙, 상식에 대해 이런 ‘미개한’ 수준의 의식을 고치지 못한다면 안전의 기본들을 깡그리 무시하다가 벌어진 세월호 침몰과 같은 참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진짜 화내고 분노해야 할 것은 정치인과 관료가 눈치 없이 말 한마디 잘못하고 라면을 먹는 등의 행위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 우리 이웃의 생명, 안전과 직결된 ‘기본’이 무너지는 일이다.
원칙 없는 공천 기준, 새누리당의 한심한 작태
새누리당 일부 지역 경선에서 법과 원칙을 비웃듯 선거판 구태와 불법이 태연히 벌어지는 것을 수차례 비판했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구태의 종합선물상자와 같은 경남, 특히 사천시장 공천 경쟁을 보면 할 말이 없다. 새누리당 지역 곳곳 경선에서 ‘원칙과 기준 없이 당협 위원장들의 입김에 따라 공천이 결정됐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지만 도대체 경남의 여상규 국회의원의 지역구 사천·남해·하동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모습은 무엇으로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선거법 위반 전력의 현직에 또다시 불법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새누리당 경남도당은 뭘 하고 있는지 아무런 조치도 되지 않고 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 상향식 공천이란 게 고작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토호세력이 각종 불법과 비리 의혹을 사고도 쉽사리 공천을 얻는 것이라면 이 따위 상향식 공천이야말로 저 심해바다에 수장시켜버려야 할 최악의 저질이 아니고 뭔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이 지난 15일 국회에서 분명히 한 말이 있다. “앞으로도 새누리당은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제기되는 선거법 위반 사항을 철저하고 단호하게 처리하겠다” “공천관리위원회 차원에서도 선거법과 관련해 엄격하게 처리할 것을 지침으로 한다”고 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임동규 강동구청장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면서 당 차원에서 공천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데도 경남도당을 비롯해 새누리당 일부지역에서는 이런 기준이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중앙당의 문제고, 경남도당의 문제고 이 지역 국회의원인 여상규의 총체적 문제이고 책임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기본’에 대한 문제의식과 반성이 이 ‘책임 있는’ 집단에게서 전혀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법과 원칙을 조롱하는 정만규 사천시장과 그의 비호자들
25일 오보한 경남MBC의 방송 내용만 따져 봐도 그렇다. 우선, 법과 원칙을 조롱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듯한 정만규 현직 시장의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등에 권력이라도 업은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법과 원칙을 깔볼 수 있는지 기가 막히다. 그렇지 않아도 선거법 위반 전력에 또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는 주제에 게다가 측근의 뇌물수수 사건 등등으로 공천탈락 결정이 내려져도 진작 내려졌어야 할 사람이 예비후보 등록도 하지 않고 또다시 당원들에 전화를 돌리고 지지를 부탁했다고 한다. 선거법 위반으로 판단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새누리당의 깨끗한 공천 경쟁 선언, 엄격한 공천 심사라는 입바른 얘기는 서울에서만 통한다는 것인가. 새누리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경남도당만의 문제라고 변명해도 통하지 않는다. 이런 불법선거, 불공정 경쟁이 난무하는 경남도당은 그럼 자체 선거법 기준이라도 갖고 있다는 소린가.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 홍문종, 부위원장 김재원 의원이 자기 집구석 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기막힌 사태에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정만규 시장이 당원들에 전화를 돌린 게 경선운동이라고 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도대체 당원 명부는 누구에게서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 문제는 새누리당 중앙당이 나서서 한 점 의혹도 없이 조사해야 한다. 온갖 탈·불법 행위가 난무해도 꿈쩍도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쪽 경남도당이나 선관위에만 맡겨선 안 된다. 당 차원에서 조사하고 조치하여 새누리당 스스로 다짐한 엄격한 공천 원칙이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재철 예비후보가 100% 여론조사를 요구했다”는 경남MBC의 오보도 어처구니가 없다. 민감한 선거방송에서 본인이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는 보도가 어떻게 공영방송을 통해 나올 수 있는지, 사실 확인 전화 한통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을 경남MBC는 왜 간과한 것인지 의문스럽기 짝이 없다. 경남 여상규 의원의 지역 특히 사천지역의 비정상적 공천 경쟁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필자는 이 곳의 언론과 정치, 사법기관이 토호세력과 한 몸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적어도 그런 불길한 징후들이 널려 있는 현상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모두가 반성하고 이 기회에 사회의 안전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는 충고가 넘쳐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반성하고 고쳐야할지는 잘 모르고 있다. 희생자와 가족의 비통함에 같이 아파하는 것만큼 그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당장 지방선거 공천 경쟁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질서와 탈·불법, 비상식 현상부터 바로잡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법과 원칙을 조롱하며 어떻게든 돈만 벌면 장땡이라는 자들이, 어떻게든 공천만 따내면 끝이라는 자들이 세월호 침몰을 일으키고 정치를 침몰시킨다. 새누리당이 정말로 반성하고 각성해야 할 부분이 이것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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