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 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소위 황제노역 사건이 불러온 긍정적 현상이라면 중앙에 가려졌던 토호세력의 어두운 실체가 조금이나마 드러났다는 점이다. 지방 곳곳에서 마치 독버섯처럼 자라는 이들의 부패 고리, 기득권 연합의 철옹성이 그 날카로운 첨탑을 드러냈다. 허 전 회장이 조세포탈과 횡령혐의로 한창 검찰수사를 받던 때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등도 허 전 회장 구명운동에 동참했던 사실은 토호세력이 막강한 경제력과 인맥으로 그 누구도 넘보기 힘든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어 지배해왔음을 알려준다.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황제노역은 이처럼 촘촘하게 얽힌 지방토호 세력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쌓아올린 기득권의 결정판이다. 이런 식으로 손에 쥔 기득권이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6·4지방선거가 지방토호 세력의 부패 고리, 부당한 기득권의 연결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되어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중앙 정치는 제2의 황제노역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여 썩은 물, 그 징조가 농후한 부분은 과감히 갈아치우고 도려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 작업이 바로 공천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새누리당은 기초선거 정당 공천을 배제할 경우 지방토호 세력의 발호가 염려된다는 명분을 내세워 대통령의 대선 공약까지 뒤집었다. 그렇다면 공천 과정에서 토호세력의 철옹성을 깰 수 있는 개혁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런 노력도 없이 토호세력의 기득권에 쉽게 편승하거나, 그들의 반발에 눌려 힘도 못 쓰고 끌려간다면 국민과의 약속까지 깨면서 오히려 토호세력 기득권만 강화해줬다는 비판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나.
황제가 부럽지 않은 지방토호 세력의 적나라한 민낯
특히 오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현역에 대한 심사는 더욱 엄격해야 한다. 일부 현역 기초선거 출마자들은 시장·군수로서 무슨 일을 했는지, 빤한 봉급에도 재산이 폭증하거나 열악한 재정에도 돈을 물 쓰듯 하는 부적절한 행보를 보였다. 일부는 전과자에 현역 프리미엄으로 공공연히 사전선거 운동을 하면서 금품까지 살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황제노역에 국민이 분노하는 걸 빤히 알면서 오는 지방선거가 그런 부조리한 ‘황제시장’ ‘황제군수’를 위한 선거판이 되는 걸 막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란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나. 가령, 납득하기 힘든 재산증식이나 불법선거 운동을 했다는 의혹을 새누리당 후보들로 제기 받은 임각수 충북 괴산군수는 괴산군수로 재직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8년 동안 9억8900만원이 늘었다고 한다. 뉴스1과 경향신문 등 언론에 의하면 임 군수는 자신의 부인 밭에 군비용으로 공무원을 동원해 석축을 쌓도록 지시한 혐의로 지난달엔 불구속 기소까지 됐다.
충북의 12개 기초단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전국 평균(51.1%)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1.7%인데, 괴산군의 경우는 그나마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작년에는 오히려 2.9% 감소한 14.1%로 나타났다고 한다. 괴산군의 재정은 이렇게 형편없는데 군수는 나날이 재산이 폭증하고, 군의 재정과 공무원을 자신의 부인 밭을 가꾸는데 동원하는 이런 모습이 과연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재정은 파탄지경인데 군수만 호화로운 이런 ‘황제 군수’가 살맛나는 지방선거가 계속된다면 지방자치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현상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사실 여부는 법에 의해 판가름 나겠지만 기득권을 쥔 현역의 이런 모습 자체가 부적절한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경남 재산공개 대상 공직자 가운데 정만규 사천시장의 재산증식도 두드러진다. 공직자 재산 공개정보에 의하면 정 시장의 재산은 총 69억6765만 원으로 1년 동안 8억 5000만원이나 증가했다. 임각수 괴산군수가 8년 동안 9억8900만원을 벌었는데, 정 시장은 1년 만에 8억 이상을 벌어들인 것이다.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정 시장은 어업권과 어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민 등 모두가 불황에 시름하는데 도대체 어떤 비법을 가졌기에 1년 간 재산을 그렇게 불릴 수 있었는지 그 재주에 그저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그러나 이런 사천시장의 대단한 개인의 능력과 달리 사천시의 재정자립도는 2012년 기준으로 19.7%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천시는 다른 지자체와 함께 방만한 예산집행과 낭비사례가 감사원에 의해 적발되기도 했다.
작년 5월 27일 경남일보가 보도한 기사에 의하면 정 시장이 타고 있는 제네시스(3300cc, 2010년식)가 6452만원으로 도내 단체장 중 가장 비쌌다. 시의장차도 제네시스(3300cc, 2010년식 6450만원)로 최고가였다고 한다. 2012년 사천시의 재정자립도는 19.7%(시지역 평균 31.6%)로 도내 시지역 중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나타나 대조를 보였다는 이 신문의 따끔한 지적도 곁들여졌다. 시장 개인의 재산은 폭증하는데 도내 재정자립도는 최악을 면치 못하면서도 호화로운 관용차를 고집하는 등 방만한 예산집행을 하는 모습이야 말로 ‘황제 시장’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게다가 현재 소위 ‘손봉투’ 금품 살포 의혹 논란에 휩싸인 정 시장은 과거 공직선거법 위반 전과도 있다. 뉴시스 보도에 의하면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8월 특별복권 됐다고 한다.
지역발전 막는 토호의 세 확장 끊어내야 할 새누리당의 막중한 책임
우리 국민은 기본적으로 인맥과 학맥 등으로 쌓은 기득권이 부당하게 사용되는 것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황제노역에 모두가 분노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 아닌가. 우리 사회가 많은 경제적·민주적 발전을 이뤘지만 아직 지방 곳곳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지방자치제를 통해 그 실현을 꿈꾸는 것이지만, 지방토호 세력이 쌓은 철옹성은 오히려 지방의 발전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벽이 되고 있다. 그들은 곳곳에서 황제 군수, 황제 시장으로서 뿌리를 내리고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황제노역’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오는 지방선거가 곳곳에 도사린 그런 독버섯을 제거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엔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기초선거 무공천을 밀어붙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과연 그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지방토호 세력 근절을 이유로 대통령 공약까지 파기했다는 비판을 받는 새누리당만큼은 해내야 한다. 공천을 통해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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