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 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쇼핑백 풀 붙이기, 두부 등을 만들면서 하루 8시간 일하고 벌 수 있는 일당은 과연 얼마일까? 대한민국에 사는 보통 국민이라면 그 뻔한 금액을 대략은 알 것이다. 쇼핑백 만드는 작업이야 말할 것도 없고, 두부 제조와 같은 일의 경우도 일당이라야 10만원을 넘기 힘들다. 작업량을 채우기 위해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꼬박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이라야 몇 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누구에게는 이 일이 하루 일당 5억 원으로 계산된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도 아닌 조세포탈과 횡령 범죄의 벌금을 대신하는 노역의 가치로 말이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노역’에 온 국민이 공분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점일 것이다. “이번 판결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사법의 본질이라고 선언한 꼴”이라며 새누리당의 박민식 의원 등이 형법 개정안에 서둘러 나선 것도 그런 성난 민심을 진정 두려워해서가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일당 5억원’이란 금액 문제가 아니라 이런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만들어낸 매커니즘의 문제이다. 언론이 밝힌 황제노역의 내막을 보면 법적인 허술함 외에도 인맥, 학맥, 지역 토호의 문제 등 갖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허재호씨의 대주그룹은 광주·전남에 근거지를 둔 지역 향토기업이다. 법조계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허씨 일가 역시 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광주지법 순천지원장과 목포지원장을 지낸 향판 출신이다. 매제는 광주지검 차장검사를 지냈고, 사위는 광주지법 형사단독판사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여기에 그의 동생은 전·현직 판사들 골프모임의 스폰서 노릇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문제의 ‘일당 5억원’ 판결을 내린 판사 역시 29년째 광주·전남에서만 근무해온 전형적 향판이다. 그는 관례로 광주시 선거관리위원장직도 겸직해왔다고 한다. 이 향판은 대주건설이 지은 아파트 입주와 관련한 유착의혹까지 일면서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새누리당은 지역의 썩은 뿌리 잘라내는 개혁 공천해야
이런 배경을 가진 허씨 일가가 광주·전남 지역에서 어떤 위세를 떨쳤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부는 이번 황제노역 판결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번 일당 5억원의 판결도 표면적으로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고 하니 법의 논리로 이 자체를 시비 걸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황제노역 사건을 통해 적어도 지역 토호세력의 병폐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고 해결 방안을 마련할 기회로 잡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부를 쌓은 지방 토호세력이 학맥, 인맥 등으로 문어발처럼 세력을 확장해나가면서 기득권을 공고하게 쌓았을 때 생길 수 있는 각종 부작용, 거기에 정치권력 뿐 아니라 지역의 사법 권력까지 쉽게 유착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권력이 지나치게 중앙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독버섯처럼 자리 잡은 지역 토호들의 비대한 권력화 역시 국가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는 6월 지방선거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지역 병폐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부를 쌓은 토호세력이 정치권력까지 쥐고 지역을 호령하면서 생기는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 사건을 줄이고 건강한 지방자치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새누리당은 제대로 된 공천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상향식이니 하향식이니 공천룰 그 자체에 매달리거나 공천이니 무공천이니 명분에만 집착하는 정치적 공방을 벌일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지역의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인물을 공천할 수 있느냐에 모든 노력이 집중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황제노역 사건을 통해 토호세력과 권력의 유착 문제에 많은 국민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현상에서 보듯, 지역의 썩은 뿌리는 잘라내는 개혁 공천이 돼야 민심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새누리당, 지자체선거가 토호세력 기득권 강화로 이어지는 모순 막아야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 전국 각 지역에서 사조직을 운영하고, 금품살포 등의 방법으로 유권자를 매수하는 불법 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28일 현재 전국에서 적발된 선거법 위반 사례가 총 1,378건으로, 그 중 기부행위가 744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옥천군수 출마 예정자의 돈봉투 살포 의혹, 경북 청송 군수의 축·부의금 선거법 위반 논란, 경남 사천시장의 소위 ‘손봉투’ 의혹 사건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공천에서 이런 사건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태도를 보여야 한다. 특히 정만규 사천시장의 경우는 현재 측근이 금품을 살포했다는 의혹을 받을 뿐 아니라 이미 지난 2000년에 선거법 위반으로 시장직을 잃은 전적이 있는 인물이다. 작년엔 측근인 비서실장이 뇌물을 받아 구속 기소된 적도 있다. 경남신문 등 언론 보도를 보면 정 시장은 재산이 전년도에 비해 8억 이상이 증가해 69억 원 가량에 이른다.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정 시장은 어업권과 어선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허재호씨의 황제노역 사건을 계기로 이처럼 사천시장 측 의혹과 논란 등 각 지역에 뿌리를 내린 토호세력들의 문제와 현실을 새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이런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지방자치제가 본래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토호세력의 기득권만 강화해주는 제도로 악용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새누리당은 여당으로서 국민 앞에 깨끗하고 능력 있는 지역일꾼을 후보로 선보여야할 책임이 있다. 지자체선거가 토호세력의 기득권 강화로 이어지는 모순을 없애고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한 단계 올라서는 계기로 만들어줘야 할 책임이 있다. 각 지역에서 속속 발표되는 컷오프를 통해 새누리당의 의지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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