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 편집장] 귀족노조, 사상 최장기 파업, 낙하산 사장, 불법정치파업, 정치권의 개입, 대량징계 등등. 철도노조의 파업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서 필자는 마치 시계를 거꾸로 돌려 작년 어느 지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2012년 MBC 노조 파업 데자뷰 현상을 보는 듯한 느낌 얘기다. 언론사 노조와 철도노조라는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같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민을 볼모로 한다는 점, 노동쟁의 대상이 아닌 이유로 자신들은 불법파업을 일으키고도 정부를 향해 준법을 요구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다는 점, 그 분야 최장기 파업 역사를 썼다는 점, 대량징계가 이뤄졌다는 점(혹은 이루어질 예정) 등이다. 그리고 반정부 투쟁의 정치파업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낙하산 사장의 경우는 이렇다. 혹자들은 최 사장이 철도대 교수, 철도청 차장, 철도공사 부사장을 거쳐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철도대 총장을 지낸 철도 전문가 출신으로 낙하산 사장은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 김재철 MBC 사장 역시 MBC 기자 출신으로 지역 MBC 사장을 거친 그야말로 MBC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에서 내려 보냈다고 낙하산 소릴 들었다. 최연혜 사장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이나,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경력 등을 봐도 노조의 입장에서는 정권이 찍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인 것이다. 철도노조 파업에 민주노총 상급단체가 끼어들 듯, MBC 노조 파업엔 상급단체인 언론노조가 끼어들었고(언론노조의 상급단체는 민주노총이다), 철도노조 파업 현장에 민주당 의원들이 나타나고 노조 간부가 민주당사를 찾아갔듯, MBC 노조파업도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와 개입이 있었다.
국민에 충격 안겨준 신들의 직장
코레일은 1차로 철도 노조 집행 간부 490여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고 한다. 파면과 해임 등 중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MBC 노조 역시 불법정치파업에 대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파업 참가 정도나 불법성 여부에 따라 간부급 조합원 수명이 해고됐고, 조합원들도 대기발령, 징계성 인사조치 등을 피할 수 없었다. 파업의 불법성이나 그 과정에서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타락한 인간성을 보여주고 무차별 허위폭로를 이어갔음에도 노조가 자신들을 정의의 편으로 코스프레한 것이나 철도노조가 탄압받는 노동 약자 흉내를 내는 것도 비슷하다. 그런 자들이 정작 많은 국민들로부터 귀족노조의 배부른 정치투쟁이라는 비판을 받은 점도 닮았다. 당시 MBC 측은 노조 간부들이 대부분 연봉 1억원을 받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폭로했는데, 정작 노조위원장은 “돈 없는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전형적인 횡포”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MBC를 포함해 방송3사의 노조원들의 평균 연봉과 복지혜택은 서민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철도노조의 파업 사태에서도 우리 국민은 또 한 번 놀라고 있다. 연평균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고 18조원에 달하는 누적적자에 하루 이자만 13억원에 이르는 회사 직원들이 매년 수천억원 성과급 파티를 열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통신사 뉴스1 보도에 의하면 올해 코레일 직원들의 1인당 평균 연봉은 6300만원 수준으로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1인 평균 연봉(5660만원)보다 높다. 삼성전자 직원들의 고강도 노동과 비교 해봐도, 국민의 안전과 경제에 대한 철도노조의 공헌을 높이 쳐준다 해도 국민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국민의 혈세 투입이 없으면 바로 쓰러질 부실기업에서 그동안 돈 잔치를 벌인 것이나 민영화 반대를 내걸고 최소한의 경쟁조차 거부하겠다는 명분 없는 파업을 벌이고 있는 행태는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할 수 없다.
철도노조, MBC 노조 등 낙하산 사장과 강성노조가 만든 기가 막힌 단체협약
특히 충격적인 건 코레일 노사협약 이면계약이다. 능력과 성과에 상관없이 근무연수만 채우면 불법을 저질러도 해고는커녕 자동승진이 보장되고, 타 지역 발령을 내려고 해도 직원 동의가 없으면 할 수 없게 돼 있어 회사가 인사권조차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다. 지금은 사라졌다지만 자녀 고용세습이 허용된 것도 보통 기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비정상이 코레일에서는 지극히 정상처럼 간주돼 왔다. 코레일은 세상과 동떨어진 별천지의 세계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비극은 이런 비정상이 정상으로 당연시되는 공기업의 행태가 철도노조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공기업이 이렇게 국민 대다수의 상식과 어긋난 신들의 직장이 될 수 있었던 건 강성노조에 맞선 낙하산 사장의 한계이기도 하다. 임기만 채우면 그만인 사람들이 사장직에 앉으니 노조는 사장을 길들이기 위해 파업을 반복하고 사장은 노조의 불합리한 요구에 맞서 싸우고 개혁하기보단 손쉽게 타협한다. 이렇게 되다보니 노조는 철밥통을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해 파업을 습관적으로 일으키게 되고 겁먹은 사장은 그때마다 조금씩 양보했다. 이렇게 거듭된 노사 야합의 결과가 국민이 충격 받은 그 말도 안 되는 단체협약안의 내용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로 매 정권마다 꾸준히 시도됐던 경영 효율화와 같은 개혁의 시도는 그렇게 번번이 좌절됐고, 단체협약은 갈수록 기가 찬 내용들로 채워져 갔다.
김재철 전 사장 원칙대응으로 실패한 MBC노조의 파업, 최연혜 사장도 그래야
박근혜 정부의 최연혜 사장이나 이전 이명박 정부의 김재철 전 MBC 사장과 같이 낙하산 사장의 구태와 관행을 거부한 사람은 극히 소수다. 이 두 사람은 정치권과 연이 있다는 이유로 비록 낙하산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공기업 사장은 해당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고 단계를 밟아온 전문가가 되어야 명분이 선다. 물론 해당 분야 전문가라고 해서 노조와 야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 아무 관련이 없는 낙하산 인사라 해서 개혁적 사장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일각에서는 정치권과 연이 있는 낙하산 사장은 무조건 근절해야 한다지만 전적으로 옳은 말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로서 능력과 개혁을 할 수 있는 강단이 있는 인물인지를 정밀하게 검증해 임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철도노조나 MBC 노조와 같은 강성 노조집단을 개혁하고, 터무니없는 단체협약을 뜯어고치려면 낙하산 사장 여부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개혁에 대한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의 문제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최장기 역사를 썼지만, 번번이 노조의 승리로 돌아갔던 전례대로 남지는 않을 것 같다. 박근혜 정부의 공기업 개혁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확고하고 철도노조의 부조리한 기득권 지키기가 국민의 공감대를 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연혜 사장은 불법파업에 가담한 노조 간부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해고 등 최악의 사태도 감안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그 의지대로 원칙적 대응을 밀고 나가야한다. 노조가 파업을 벌일 때마다 당근책부터 제시하고 적당히 달래서 징계를 유야무야하던 일이 악성 파업을 키웠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작년 MBC 노조의 불법 정치파업 때 김재철 전 사장이 원칙대로 대응했듯 최연혜 사장도 원칙대로 개혁해야 한다. 노조와 타협할 부분과 절대 타협이 불가한 부분은 잘 구분해 지켜야한다. 코레일 등 공기업 개혁은 박근혜 정부의 과제만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다. 국민의 지지를 믿고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처하길 바란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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