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KBS 길환영 사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 같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뉴스9’의 'TV조선' 인용 보도를 이유로 파업을 경고했기 때문이다. 본부노조는 김시곤 보도국장의 보직해임과 진상파악이 이뤄지지 않으면 파업을 비롯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했다. 일종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노조가 파업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겉으로는 KBS가 종편 TV조선의 보도, 그것도 사실관계가 명확하지도 않은 것을 인용해 보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가 봐도 궁색한 이야기다. KBS는 이미 뉴스타파의 보도까지 인용 보도한 적이 있다. 뉴스가치만 있다면 마니아들의 매체이건 종편이건 공중파이건 간에 가리지 않고 KBS는 타 매체의 특종을 인용 보도해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뉴스타파 때는 가만있다 TV조선 때는 이 난리굿을 편다는 건 뉴스타파는 되고 TV조선은 보도하면 안 된다는 주장밖에 안 된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본부노조의 이 주장도 가소로운 얘기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이슈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이 주목한 초대형 이슈였다. 채 전 총장의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폭로자가 나왔고, TV조선은 그걸 단독 보도했으며 수많은 매체들이 너도나도 받아 보도했다. 다른 매체들은 머저리들이라서 사실 확인도 않고 그걸 보도한 것인가? 사실 확인이 제대로 안 된 것이 그렇게 문제라면 지금이라도 자신들이 나서서 TV조선 보도가 틀렸다는 걸 확인해 증명하면 될 게 아닌가? 그 취재는 왜 안하고 있나? 아니, 채동욱 관련 취재를 할 의사가 있기나 한 것인가? 필자는 본부노조에게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과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관련한 KBS의 보도태도다.
사실 확인 없이는 보도할 수 없다는 KBS본부노조의 뻔뻔한 이중잣대
사실 확인이 안 된 상황에서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과거 김대업의 사기·조작폭로나 한인옥 여사의 비자금 수수의혹, 이 전 총재의 20만 달러 수수의혹이 나왔을 때는 왜 전혀 작동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민주당의 무차별 허위 폭로와 공작으로 입은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KBS는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등 어느 매체 못지않게 앞장서 이런 허위 주장들을 날이면 날마다 시시각각 열심히 보도했다. 그 의혹들은 사실 확인이 된 것이었나? 필자가 언급한 이회창 관련 3대 의혹들은 모두 허위날조된 것임이 드러난 것들이다. 당시 KBS 기자들, 언론인들은 왜 사실 확인을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나? 확인되지 않은 보도를 왜 막지 않았나? 사실 확인은커녕 앞장서 민주당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며 이런 허위주장을 전국 방방곡곡에 퍼뜨렸다. 의혹 부풀리기에 눈이 멀었던 당사자들이 이제와 “사실 확인도 안 된 의혹을~” 운운하는 건 뻔뻔해도 지나치게 뻔뻔한 것이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보도했다고 파업하겠다는 KBS 본부노조는 지난 MBC 파업 보도에선 또 어땠나. 김재철 전 사장과 관련한 보도에선 KBS가 일일이 사실 확인을 하고 보도했나? 지금 당장 KBS 홈페이지에 가서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다. 김 전 사장에 대한 민주당 측의 일방적 주장을 전달하면서 ‘검찰에 고발됐다’ ‘조사를 받았다’ 등의 부정적 뉴스가 수두룩하다. 대놓고 편들지는 못해도 팔이 안으로 굽는 보도 행태는 뚜렷했었다. 본부노조측이 주장하는 ‘사실 확인’의 노력이 깃든 보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단순히 든 두 가지의 예만 놓고 봐도 언론노조의 ‘사실 확인’ 주장이 얼마나 어이없는 뻔뻔한 주장인지는 확인된다. 그런데도 채동욱 보도에서만큼은 반드시 사실을 확인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도해선 안 된다? 어처구니없는 얘기다.
파업은 길환영 사장의 공영방송 사장으로서의 자질을 평가할 중대한 기회가 될 것
본부노조의 파업 위협은 오히려 잘 된 일이다. KBS 길환영 사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언론노조의 못된 버릇, 막무가내 행태를 뜯어고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어린아이도 비웃을 궁색한 논리와 억지, 아전인수격의 되먹지 못한 주장으로 보도본부장을 보직해임시키고 보도국장 직선제 등을 요구하는 이유는 민주노총과 야당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하기 위해서 아닌가. 틈만 나면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황우섭 심의실장을 제거하려는 공작질을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길환영 사장은 이제야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자질을 검증받을 수 있는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타협의 시대, 공존의 시대이지만 언론노조와의 타협만큼은 절대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언론노조는 자신들만의 정의로 편을 가르고 세상과 사람을 재단하는 최악의 편협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과의 거래나 타협은 곧 불의와 손을 잡는 것이 된다.
길환영 사장이 그 점에서 모범을 삼아야 하는 사람은 김재철 전 MBC 사장이다. 김 전 사장은 파업을 일으킨 MBC노조로부터 보기 드문 최악의 저질 공격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만약 그 공격이 두려워 굴복했다면 지금의 MBC는 없었을 것이고, 작년 대선에서도 중립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금 확대해보자면 김 전 사장이 노조가 MBC를 야당을 위한 또 하나의 공격수로 만들려던 음모를 저지했기에 작년 MBC가 야당의 나팔수 노릇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공영방송의 사장으로서 제일의 덕목은 바로 언론노조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연임을 앞둔 길 사장 역시 비켜갈 수 없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언론노조 KBS본부의 파업은 그 잣대가 될 것이다. 길 사장이 김재철 전 사장의 반만큼이라도 대응할 수 있다면 인정받을 것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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