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8월 31일 방송 예정이던 추적60분 국정원 관련 보도 때문에 언론노조와 야당 측으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 북한 화교 출신의 30대 유모 씨가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탈북자 수백 명의 명단을 북측에 넘겨줬다는 간첩 혐의 사건을 다룬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편을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불방시켰다는 게 이유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사상 초유의 내란 음모죄 적용으로 온 국민의 시선이 국정원에 쏠려있는 지금, 조금이라도 국정원에 부정적인 내용은 방송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것”이라며 “이는 사실상 국가 공권력에게 무한한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관제방송인의 전형적인 발상이자 시사 아이템을 공권력을 위해 불방시킨 치욕스런 사례”라고 비난을 퍼부었고, KBS 측은 이 사건이 현재 재판 계류 중인 사건이며 또한 “(통합진보당이 국정원 수사를 받고 있는) 예민한 시기에 악용당할 수 있다”며 불방 사유를 밝혔다.
제작된 프로그램을 미리 봤을 KBS 측이 어떤 이유로 방송 보류를 결정했는지 외부인은 알기 어렵다. 하지만 KBS 측이 예민한 시기에 악용당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과 KBS본부노조의 성명을 보면 국정원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줄 수 있는 내용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야당과 언론노조, 일부 언론은 그것이 정권 눈치 보기가 아니냐고 비난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KBS가 정권의 눈치를 본 게 아니라 국민 여론의 눈치를 본 것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이미 많은 국민이 알다시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은 1심 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야권이 주장하듯 국정원에 의해 조작된 간첩 사건으로 드러났기 때문이 아니라 검찰의 허술한 수사로 유죄 입증에 완벽성을 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핵심 증거가 유씨 여동생의 진술인데 검찰은 진술거부권을 사전 고지하지 않았고 일부 사실 확인 증명에도 허점을 보였다.
재판에 영향 줄 가능성 큰 추적60분 국정원 편 방송 연기는 당연
하지만 무죄 판결을 낸 재판부조차 “여동생 진술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할 수 없을 만큼 구체적이어서 공소사실 범행의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했을 정도로 이 사건은 구체성을 띄고 있다. 재판부 무죄 판결의 요지는 국기 문란과 관련된 사건인 만큼 한 치의 반박 여지도 없게끔 철저한 증거와 빈틈없는 유죄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러나 검찰은 그 점에서 완벽을 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변은 이 사건을 처음부터 국정원 간첩 조작사건이라고 끊임없는 언론 플레이를 해왔다. 반면 국정원은 민변 측이 여동생에게 진술 번복을 교사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검찰의 추후 증거 보강과 입증 여부에 따라 상급심에서 재판 결과가 얼마든지 뒤집어질 여지가 있는 사건이 바로 KBS 추적60분이 방영하려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온 나라를 뒤흔드는 지금, 왜 하필이면 이런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방송을 하루라도 빨리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할까. 좌파들이 흔히 말하듯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는 얘기다. 이 방송은 통진당과 이석기 측의 ‘국정원 조작’ 주장에 충분히 이용될 수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봤지? 법원이 무죄 판결 냈다. 이석기 사건도 똑같이 국정원의 조작’이라고 언론 플레이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분명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고, 그래서 KBS 측도 우려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두 사건은 엄연히 별개의 사건이지만,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재판과 여론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KBS가 상식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는 집단이라면 당연히 방송을 연기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은 통합진보당 NL계 중심세력, 언론노조 상급단체 민주노총은 NL계 중심세력
그러나 추적60분 제작진과 언론노조는 해당 방송과 통진당 사태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빨리 방송하지 않으면 시사제작국장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필자는 이렇게 묻고 싶다. 민주당은 이석기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촛불집회 불참은 왜 선언했나? 정의당의 심상정, 천호선은 통진당과 왜 선긋기를 하고 있나?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들은 국정원 규탄과 이석기의 통진당 사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마치 연관이라도 된 사건처럼 조심스레 행동하고 있다. 불필요한 오해와 정치적 해석을 낳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현 시점에서 특정 방송이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당사자 측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함으로써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도 KBS가 그대로 방송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필자는 이에 더해 또 다른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민주당과 정의당마저 아무 관련 없는(?) 사안을 놓고도 통진당과 열심히 선긋기를 하는 마당에 왜 언론노조는 통진당 측에 유리할 수 있는 현시점의 방송 강행을 주장하느냐는 의문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언론노조의 상급단체는 민주노총이다. 새누리당에서 보기 드물게 방송 노조의 정치적 독립을 앞장서 주장해온 개념 의원인 조해진 의원은 “방송사 노조는 상급단체가 언론노조이고, 언론노조 상급단체는 민주노총이며, 민주노총은 NL의 중심세력이기 때문에 노사 모두 정치권과 고리를 끊게 해야 한다”고 촌철살인의 핵심을 지적한 적이 있다. 이석기를 핵심으로 하는 경기동부연합은 통진당 주류인 NL계 중심세력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언론이 보도했다.
필자는 거꾸로 묻고 싶다. 추적60분 제작진을 비롯해 KBS 본부노조와 일부 야당 의원, 좌파언론은 왜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와 통진당의 눈치를 보는 것인가? KBS가 국민의 방송인 이상 국민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인데도, 왜 언론노조와 좌파진영은 현 시점에서 통진당을 거들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나서는 것인가? KBS 본부노조 측 현상윤 PD가 촛불집회에 참석해 정권을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선동하고 편파방송으로 물의를 일으킨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 사건 파장이 채 꺼지기도 전에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둔 KBS 본부노조가 사실상 통진당 편을 들고 나서는 걸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KBS 본부노조는 당장 방송을 내보내라고 사측을 협박하듯 하는 자신들의 이해 불가한 행동부터 국민에 해명해야 한다. 시사제작국장이 자신의 직을 걸고 방송 불가는 아니라고 하는데도 당장 방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납득할만한 이유를 내놓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이석기, 통진당 측과 언론노조 KBS본부의 관계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은 지금부터 진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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