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증발 사태와 관련해 당초 민주당과 친노 측 인사들의 주장과 달리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만일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가 대화록을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지 않은 것으로 최종 드러날 경우, 노 대통령이 대화록을 폐기했다는 주장은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는 노 대통령의 NLL 포기 논란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여야 정치권이 국가기록원 대화록 검색을 통해서도 찾지 못하는 바람에 대화록 논란은 ‘사초(史草) 폐기’ 사건으로도 비화하고 있다. 22일 최종 검색 작업을 통해서도 찾지 못할 경우 NLL 포기 논란은 사상 초유의 ‘사초(史草) 폐기’ 사건으로 옮겨가고, 자칫하면 민주당은 사초 폐기 세력으로 몰릴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국의 초점에서 밀리고 있는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 사건은 아예 사라지고 야권은 사면초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22일 언론 보도를 통해 대화록 이관을 둘러싼 노무현 정부 청와대 인사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날 동아일보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가 임기 말 이지원 시스템에 자료를 대폭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을 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월 청와대는 외부에 용역을 줘 ‘대통령 일지’ ‘대통령 업무주제’ ‘업무처리방법 지시사항’ ‘과제관리 이력’ 등 53개 항목을 삭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지원에 설치했다. 이는 2007년 7월 청와대 김모 비서관이 작성한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이지원 기록물보호체계 구축 사업계획서’에 기재된 내용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이를 토대로 18억여 원의 예산을 들여 사업을 진행했고 이듬해 1월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는 당시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대통령 임기 종료 전에 대통령기록관으로 자료를 이전해야 돼 사업을 시급히 추진해야 하므로 긴급 입찰로 추진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지원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2005년 삼성 SDS가 구축했으며, 당초에는 문서 삭제 기능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2006년 정권 간 인수인계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백서(白書) 및 현황 인계조직 관리 기타자료 등을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을 이지원에 추가했다. 이어 임기를 8개월여 남겨둔 시점부터 삭제 기능 강화를 추진해 임기 종료 한 달 전 53개 항목에 대한 삭제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말 청와대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이를 국가정보원에서 관리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21일 확인됐다”며 “이는 문재인 민주당 의원 등의 주장과 달리 대화록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어서 정치권의 ‘사초(史草) 실종’ 책임 공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사실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지난 1~2월 정문헌·이철우 새누리당 의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서해북방한계선(NLL) 관련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할 때 드러났다.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던 조명균(56)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과 복수의 국정원 직원 등의 진술을 통해서다.
당시 수사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 전 비서관 등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작성해 보고했더니 노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 때문에 후임 대통령도 봐야 하니 국정원에서 관리하고 청와대에 두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런(국정원이 관리하라는) 지시를 받은 사람도 조 전 비서관이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수사 관계자는 “당시 대통령기록관 담당자와 청와대 비서관 등의 진술은 노 전 대통령이 (서류나 기록을) 청와대에 두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강했다”며 “대화록을 국정원에서 갖고 있으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보도는 그동안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대통령지정기록물, 공공기록물 관리법 등을 근거로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를 불법이라고 공세를 취한 민주당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이관된 회의록을 이명박 정부가 훼손·폐기했다는 민주당 측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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