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당의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의 행적을 보면 선거 출마를 꽤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 후보는 정권 교체된 뒤 무소속으로 총선에서 대구에 출마 및 낙선한 뒤,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책을 집필하여 자신의 입장들을 정리했다. 특히 유시민은 이 책에서 서울대 운동권 시절에 민간인을 프락치로 오인 구타한 일, 개혁당을 창당했다 이를 열린우리당에 사실 상 팔아넘긴 일 등등에 대해 제한적이나마 해명 및 사과했다. 그러나 유시민이 자신에 쏟아졌던 수많은 비판 중 아직까지도 일체의 답을 하지 않는 사안이 있다. 바로 유시민의 부친인 유태우씨가 일제 치하 만주국에서의 훈도 노릇을 했다는 친일 행적이다.
이 사건은 본지 변희재 대표가 브레이크뉴스 편집장 시절인 2004년 9월, 브레이크뉴스의 박선협 시민 기자와 대전 e조은뉴스의 송인웅 대표기자가 취재하여 밝힌 내용이다. 유시민의 부친 유태우씨가 1943년도에 일제가 세운 괴로국 만주 소학규에서 훈도로 활동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어머니와 숙부, 사촌누이 등과 함께 가족사를 조사했다며 2004년 9월 7일 공개 답변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글 한 편에서 논리적으로 충돌하는 문장들이 열거되어 오히려 의혹을 키우고 말았다.
유시민, “부친, 일제 때 교사 자격 여부 모르겠지만 교원경력은 없었다” 중언부언
유시민은 “선친은 일제 때 교원경력이 없었다”고 해명한 뒤, “1943년 경 만주에서 소학교에 잠시 근무한 적은 있는 것 같은데, 그 소학교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만주에 가서, 거기 어느 소학교에서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교사였는지, 보조원이었는지, 또는 행정사무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고, 교사 자격이 있었는지 여부도 모르겠습니다”라며 중언부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의혹을 파헤치던 송인웅 기자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친이 만주 소학교에서 일을 한 사실은 알면서도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른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또한 ‘만주 소학교에서 교사 일을 했는지, 교사 자격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일제 때 교원 경력은 없는 것으로 안다"는 말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소학교에서 일을 한 사실을 알 정도면 일부러 숨기려 하지 않는 바에야 ‘무슨 일을 했는지를 모른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을 뿐더러, ‘당시 교사 자격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해놓고는 금세 또 ‘일제 때 교원 경력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하는 게 미덥지 않다“
1943년의 만주는 일제가 세운 괴뢰국 만주국이 지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만주국의 소학교 훈도는 천황폐하에 대한 충성을 가르치고, 내선일체를 선동하며, 황국신문화 정책 선동 교육의 선봉장이었다. 유시민의 부친 유태우씨는 그 어려운 시기에 일본 유학길에 오른 뒤 만주국 소학교에서 근무했다면, 이미 일본에서부터 유태우씨는 천황폐하에 대한 충성을 서약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송인웅 기자와 박선협 기자는 경상북도 교육청 중등교육과에서 근무하는 담당자를 통해 인사기록에 유태우란 동명이인 4 사람의 기록카드를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 중 한 명이 만주 소학규에서 훈도로 근무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담당자는 “민감한 사안이라 직계가족만이 확인할 수 있다”고 하여 더 이상 취재를 진행시키지 못했다.
유시민은 이에 대해 “저는 <브레이크뉴스>가 도대체 무얼 근거로 제 선친이 일제 때 교사를 했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근거를 확보한 것이 있으면 밝혀주기를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만약 <브레이크뉴스>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제 선친이 일제 하 교사였다고 보도했다면 책임성 있게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오히려 역공을 펼쳤다.
이에 당시 변희재 편집장은 2004년 9월 20일 ‘경북교육청에 전화는 해보셨니까’라는 글에서 직계가족인 유시민 본인만이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며, “유의원님을 위해 경상북도 교육청 전화번호를 알려드립니다. 053) 959-2101~10입니다. 혹시 그쪽에서 유태우씨의 기록이 없다고 잡아떼면 연락을 주십시오. 저희에게 증언한 담당자의 번호도 알려드리겠습니다. 혹시 누구처럼 저녁 사면서 회유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경북교육청 전화번호까지 공개적으로 알려준 바 있다.
그러나 유시민은 그 이후 이에 대한 답변을 일체 회피하고, 브레이크뉴스 기자가 의원실로 취재를 가면 “브레이크뉴스 기자의 취재는 응하지 않겠다”고 취재거부를 했으며, 심지어 브레이크뉴스 기자는 당시 유시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 출입조차 불이익을 겪어야 했다. 친노좌파식으로 보면, 권력자의 부정을 취재했다는 이유로 언론탄압을 당한 것이다.
장관 청문회 때에도 부친의 훈도 경력 만큼은 답변 회피
그러다 2006년 2월 5일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신분으로 청문회 자료를 통해 부친의 일제 치하 경력을 밝히게 된다. 유태우씨는 일본국 동경도 준대상업학교를 나와, 1943년 2월부터 1945년 7월까지 만주국 통화성 폐대무자촌 국민우급학교에 재직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직책이 훈도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브레이크뉴스 취재 결과 유태우씨의 기록에는 ‘훈도’라는 직책까지 명기되어있다는 것이고, 유시민은 청문화 질의에 답하면서 결국 경북교육청에 기록된 자료로 답변을 했었을 텐데, 이를 끝까지 감추고 은폐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유시민 부친의 친일 의혹이 크게 논란이 된 이유는 당시 친노세력들이 추진한 친일청산 작업이 크게 이슈가 되면서, 오히려 신기남 전 당의장, 정동영 의원, 이미경 의원 등의 부친들의 친일의혹이 역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이중 신기남 전 당의장과 이미경 의원은 부친의 일제시대 헌병 근무를 인정하며 사과를 한 바 있다. 정동영 의원도 부친이 식산조합 서기로 일했다는 사실 만큼은 인정했다. 유시민만이 본인이 분명히 알고 있을 수밖에 없을 부친의 직책마저 끝까지 감추었던 것이다. 유시민은 친일청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문제는 친일파의 자식 여부가 아니라, 민족의 굴곡 깊은 현대사 속에서 그만큼 깊게 남은 가족사의 상흔을 치유하지 못한 채, 가까운 사람들의 과거 행적을 은폐하거나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미화하려는 정치권과 언론계 일각의 불합리한 태도입니다. 소위 ‘국가정체성’은 현대사와 가족사와 개인사의 어두운 그늘까지, 때로는 고통스럽고 추악할지라도 진실을 직시하며 의연하게 소화해낼 때 저절로 바로 서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유시민 본인은 자신과 가까운 부친의 과거 행적을 은폐하고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미화했다. 유시민은 부친의 친일 경력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은 채 오히려 ‘책벌레’였다는 점만 강조했다. 유시민은 운동권 시절 출판한 책에서도 부친이 청렴한 교사였다는 점만을 부각시켰다. 유시민은 부친의 친일행적이 논란이 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던 시절에도 KBS의 ‘파워인터뷰’에 나와 다음과 같이 부친을 예찬했다.
“이제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저희가 육남매인데, 새벽에 아침에 눈을 떠보면 항상 보던 모습. 그때 제한송전, 저녁에만 불이 들어오고, 새벽에는 안 들어올 때인데, 아버지가 방구석 쪽에 앉은뱅이 책상을 놓고 호롱불을 켜고 책을 읽으셨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연탄 갈고 어머니가 쌀 씻을 물, 아이들 세수할 물, 이런 걸 데우시고, 그러고 들어오셔 가지고 책을 읽으신 거죠.
학교 역사선생님이셨는데, 호롱불, 그늘진 뒷모습, 책, 지금도 제가 나도 다시 좀 글을 읽고 책 쓰고 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게 아마, 그런 원초적인 기억에서 온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죠. 지금 계시면 참 좋아하실 텐데“
유시민 부친은 일제와 미군정 시대 학교 경력으로 교장까지 승진, 보수우파였으면 매장당했을 것
유시민의 이러한 부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비판할 수야 없겠지만, 유시민과 친노세력이 무차별적으로 남의 부모를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마녀사냥을 해왔고, 이에 대해 유시민이 단 한 번도 비판적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그의 이중성이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유시민의 부친은 일제 때부터 학교 경력을 쌓고, 미군정 시절에도 교사로 임명된 뒤, 승승장구 교장의 지위까지 오르며 교육계에서 화려한 출세가도를 달렸다. 유시민의 부친 유태우씨의 기록이 경북교육청에 상세히 남아있는 이유도 그가 교장의 지위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인물이 유시민이 아닌 이회창 등 보수우파의 부친이었다면 과연 유시민 등 친노좌파들은 어떻게 공격했을까? 검찰 서기 출신이라는 이유로 친노세력으로부터 악질 친일파로 몰렸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부친의 사례를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유시민의 이중성은 그가 정치적 ‘神’으로 모신 노무현, 자신의 부친 등 자신과 가까운 인맥에 대해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가 과연 공직자로서의 자격이 적합한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 제기된 비판에 대해 대부분 해명하고 사과한 유시민은 노무현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부친의 친일 의혹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변명과 은폐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 유시민식 정치에서 반드시 짚어야 될 문제이다. 영남 친노세력의 권력을 위해 분당을 도모하고, 개미당원들의 후원금으로 모은 정당을 파괴하고, 또 다시 창당을 반복하는 정치투쟁 역시 가까운 사람은 미화하고 예찬하며 먼 사람은 공격하고 숙청하는 친노식 패거리주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시민의 부친의 친일 의혹 은폐는 기회주의라는 비판을 넘어서 친노식 정치의 본질이나 다름없다. 즉 유시민이 부친의 친일 의혹을 스스로 밝히지 않고 경기도지사 등의 공직에 다시 오르게 될 때, 대한민국은 사생결단식 투쟁정치를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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