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이 경기도지사 단일후보로 선정된 이후 친노좌파 매체를 중심으로 지원 기사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현재 지자체 판세는 전체적으로 민주당 등 야권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야권은 호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수도권과 영남에서는 한나라당에, 충청에서는 자유선진당에 밀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지자체 선거를 통해 정권 재창출에 나서고자 하는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등 친노좌파 매체들에게 유시민의 등장은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매체의 생존을 위한 편집방향과 달리 젊은 기자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유시민에 대한 호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된다. 유시민이 젊은 기자들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막강하다. 이는 좌우매체를 망라하여 대다수의 젊은 기자들은 유시민을 선호한다. 같은 친노세력 중에서도 유시민의 독주는 바로 언론, 특히 젊은 기자들의 힘이다. 왜 젊은 기자들은 유시민을 선호할까?
90년대의 안티조선 흐름과 유시민의 감성적 능력이 원인
첫째, 현재 국회를 출입하는 대다수의 기자들은 30대와 20대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시절 교양서적으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을 학습서로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대학시절부터 유시민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둘째, 유시민은 안티조선의 상징이다. 조선, 중앙, 동아를 제외한 젊은 기자들은 거의 다, 어쩌면 조중동의 젊은 기자들 역시 안티조선의 영향을 받으면서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해왔을 것이다. 90년대와 2000년대의 언론흐름은 안티조선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셋째, 기자들 특유의 학벌에 대한 선망도 작용하고 있다. 유시민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에, 독일 구텐베르크 대학에서 석사를 마친 학벌을 자랑한다.
넷째, 유시민은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매우 솔직하고 소탈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는 기자들과 토론을 즐겨하고, 밤새 넥타이를 풀고 당구를 치는 낭만성도 과시한다. 주로 기자들과의 대화를 피하며 보도자료나 돌리는 기성 정치인들에 실증난 젊은 기자들에게 유시민은 충분히 호감을 가질 만한 대상이다.
다섯째, 유시민의 언어 자체가 젊은층을 선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탄핵 당시 유시민은 곧바로 ‘의회 쿠테타’라는 말로 선전술에 나섰고, 이것은 급격히 퍼졌다. 마치 선동적 언어를 구사하여 네티즌을 동원하는 진중권의 언어와 유시민의 언어는 닮아있다. 이번에도 유시민은 참여당이라는 신당을 창당하면서 “민주당에는 꿈과 이상이 없다”는 낭만적 수사법을 활용하며 정당화했다 이미 노선과 정책에서 큰 차이가 없고, 개혁당이나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내세웠던 실패한 기간당원제를 내세울 수 없으니, 수사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성적 수사가 젊은 기자들에게는 오히려 호속력을 지니게 된다.
여섯째, 유시민은 언어 뿐 아니라 정치 행위 자체가 감성적이다. 유시민은 탄핵 당시 담요를 덮어쓰고 울면서 기자들의 동정심을 샀고, 이번 노대통령 자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감수성이 기성 정치인들과는 차별화된다. IQ는 낮을 몰라도 EQ가 뛰어난 것은 분명하다.
유시민의 부활은 젊은 기자들의 낮은 지적 수준 덕택
이것은 유시민만이 갖고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장점이다. 그 장점은 노무현의 그것과도 무척이나 닮아있지만, 유시민은 노무현보다 세련되었다. 유시민의 학벌, 그리고 저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유시민이 젊은 기자들 사이이서 호평을 받는다는 점은, 바로 대한민국 젊은 기자들의 낮은 지적 수준을 드러내는 수도 있다. 만약 젊은 기자들이 다음과 같은 정도의 탄탄한 실력을 갖추었다면, 유시민의 정치적 생명은 일찌감치 끝났을 것이다.
첫째,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도, 정당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하나의 정당을 창당하고, 하나의 정당을 파괴하는 행위가 얼마나 정당 민주주의에 해를 끼치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특히 국민의 심판으로 여당이 된 정당을 깨고 신당을 창당하는 것은 정치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젊은 기자들은 “구태 정치를 청산하겠다”는 유시민의 선동술에 넘어갔다. 만약 정치 선진국에서 유시민 같이 창당과 파괴를 반복한 정당 민주주의의 유괴범이 있다면,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을 것이다. 그를 유괴범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그가 정당을 파괴할 때마다, 힘으로 한다기 보다는 대중을 선동하기 때문이다.
둘째, 얼치기 안티조선 의식 하나만 갖고, 조선일보와 싸우는 것이 정의라는 단세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시민은 2004년 12월 이른바 4대 개혁입법 논란 당시 김원기 국회의장에 대해 “선수가 높다고 국회의장 뽑는 것은 잘못되었다”며 맹공격, 당에 파문을 몰고 왔다. 사태가 커지자 그는 국회 브링핑 룸에서 “조선일보가 왜곡보도했다”며 모든 책임을 조선일보에 떠넘겼다. 그러나 당시 국회에 출입하고 있었던 필자의 눈에는 도대체 조선일보가 무얼 어떻게 왜곡 보도했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 언론사들은 유시민의 말을 대서특필하였다. 유시민의 말이 맞는지 조선일보의 말이 맞는지 따져볼 능력도 안 되었던 것이다.
셋째, 학벌과 저서에 대한 검증능력이 없다. 이 역시 젊은 기자들의 지적 수준의 문제이다. 유시민의 저서 중 ‘부자의 경제학과 빈민의 경제학’은 유시민 개인의 저서라 보기 어렵다. 애덤스미스부터 케인즈까지, 그간 나온 개론서를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형태의 저술은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이야기’ 등 수도 없이 많다. 유시민은 인용 목차에 각 경제학자들의 원서를 명기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원전을 읽지 않고 남이 정리한 교양서를 그대로 베낀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책을 폄하할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저널리스트적 감각으로 쉽게 풀어쓴 것만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일국의 국회의원이 되고, 복지정책을 다루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거나 경기도를 이끌기에는 그의 경제 지식은 한참 못 미친다. 지식만으로 국회의원과 기관장을 하는 것은 아니나, 젊은 기자들이 유시민의 저서의 수준을 파악하지 못하면서, 그가 대단히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오판하는 것이 문제라는 점이다.
넷째, 이와 관련되어 바로 기자들이 정치인들의 정책이나 비전 제시 능력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유시민이 내놓은 정책 중 평가할 만한 것은 없다. 그는 정책 능력없이 오직 정당 민주주의만을 주장하며, 실제로는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으니, 아예 정치인으로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수준인 것이다. 기자들에게 정책 검증 능력이 있었다면, 유시민은 아마도 3류 정치인으로 구분되었을 것이다. 마치 단 하나의 정책 능력이 없는 진중권이 젊은 기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섯째, 언론시장이 위축되면서 급속하게 마이너로 몰리는 기자들의 처지이다. 기자들은 주류가 되어도 안 되고 비주류가 되어도 안 되고, 중간 정도의 세력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시장이 위축되다보니 기자들 스스로 마이너 세력으로 편입되어, 주류세력과 충돌하는 유시민의 지원군이 되어버린다.
무식한 기자들은 유시민의 영원한 아군
이와 같이 유시민의 부각은 바로 대한민국의 언론이나 지식계의 문제이다. 2010년도에 유시민이 다시 부활한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의 언론과 지식계가 정상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같이 언론일을 하는 사람으로 안타깝지만, 자기 분야의 전문 서적 한 권 읽지 않는 기자들, 정치인을 평가하면서 과거 기록을 찾아 분석할 능력도 갖추지 못한 기자들, 정치인이 거짓말을 할 때 곧바로 반박 질문을 할 기본도 갖추지 못한 기자들, 이들이야말로 유시민의 영원한 우군인 것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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