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M의 박재범이 마이스페이스에 쓴 한국과 한국인 비하 발언 탓에 중도 탈퇴,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갔다. 역시 이 과정에서 언론은 기묘한 이중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박재범의 마이스페이스 글을 릴레이로 보도하다, 실제로 박재범이 중도하차 하게 되자, 이제 언론은 일제히 네티즌들의 마녀사냥을 질타하고 있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현재로서는 진보언론이다. 오마이뉴스는 ‘우리 안의 파시즘이 22세 청년을 쫓아냈다’다는 문화평론가 김갑수씨의 글을 통해 “이렇게 절절한 사과를 한 22세 청년에게 무려 1만 개나 되는 댓글을 붙이고 별의별 저주의 언사를 퍼붓더니 그것을 신문지상에 보도함으로써 파문을 확대 재생산하여 결국 가수 생명을 단절케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사란 말인가. 이런 것을 애국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백번 양보하여 애국심이라고 해도 애국심 또한 인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따라서 이것은 심한 말로 해서 '광기'가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될 수 없는 행태라고 본다”라며 박재범 사건을 국가주의의 발로라 해석하고 있다.
박재범 비판이 국가 파시즘의 발로라니
진보좌파 매체비평지 미디어스 역시 “국적 부분에서 한국 남자들이 도저히 관대해질 수 없는 이유 일랑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지만, 이것 역시 나무랄 것이 못된다. 그가 어떤 국적을 선택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그가 설령 미국 국적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그의 삶을 나무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말이다”고 박재범을 적극 옹호했다.
이외에도 국민일보, 서울신문 등도 네티즌들의 마녀사냥을 비판하는 논조를 보이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마녀사냥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2005년부터 2007년인 연습생 시절의 사적인 글에 대해, 박재범이 사과를 했음에도 너무 과도한 비판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둘째, 박재범에 대한 비판의 근본적 원인은 국가주의적 파시즘의 광기로서 그 자체로 위험하다는 진단이다.
이러한 진단이 매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터넷 여론의 자율적 정화 기능과 그 집단지성이라는 건강성을 예찬하던 좌파 매체들이, 오히려 인터넷 여론 자체를 부정하는 논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논조 바꾸기가 하루이틀 된 일은 아니다. MBC ‘PD수첩’의 황우석 박사 비판보도에 대해 네티즡들은 일제 MBC를 공격했다. 이때 진보좌파 언론과 시민단체는 네티즌의 광적인 마녀사냥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또한 심형래 감독의 ‘디워’ 논쟁 때 역시 진보좌파 매체들은 네티즌을 비난했다.
이들이 갑자기 네티즌 여론 예찬으로 돌아선 계기는 지난해 광우병 파동이었다. 이 당시 아무리 인터넷여론의 위험성을 강조해도, 이들은 인터넷여론이 지고지순한 국민의 뜻이라는 주장을 일체 굽히지 않았다. 또한 최근에는 노대통령 자살 건에 대해 일반여론과 다른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필자는 물론, 조갑제 대표, 김동길 선생 등이 무차별 사이버테러를 당했다. 그때도 이들은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기사를 써왔다. 즉 최근 수년 동안 자신들에 유리한 여론이 나오면 인권이 침해되든, 타인의 명예가 짓밟히든 모른 체 하다가, 자신들 원치 않는 여론이 나오면 네티즌들을 매도해왔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여론에도 상술과 권력이 개입한다
그렇다면 대체 정답은 무엇일까? 나는 이런 유형의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매우 섬세하게 모든 요소를 파악하여 진단을 내려야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허위사실 요소가 개입되어있는지의 여부이다. 광우병 파동의 경우 상당수의 허위사실이 유포되었기 때문에, 네티즌의 여론과 관계없이 사실을 바로잡을 의무가 지식인과 언론에 있었다. 진보좌파 지식인과 언론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둘째, 정치세력이 개입되어있느냐의 여부이다. 광고주 불매 운동의 경우 정치세력이 깊이 개입했던 사건이다. 즉 자발적인 네티즌들의 여론으로 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셋째, 포털 사이트의 개입 정도이다. 물론 포털은 클릭수만 높으면 “독도를 일본에 팔아넘기자”는 주장도 메인에 올릴 수 있는 장사꾼들이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 개입의 정도와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광우병 사건 당시는 미디어다음은 아예 MBC와 유착해서 여론을 주도할 정도였다. 이런 건은 매우 특수한 경우이다.
넷째, 해당 사건의 원천, 즉 이른바 마녀사냥의 피해자를 둘러싸고 내부 상업논리가 작동하는지의 여부이다. 김동길과 김민선이 다 같이 도발적 사회 발언을 한다고 해서 같은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김동길은 독립된 논객이고, 김민선은 연예기획사와 협조해서 일을 해야하는 사실 상 연예사업가이다. 위치가 다른 만큼 대응논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민선이 현재까지도 광우병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고수할 것인지, 바꿀 것인지 일체 의견표명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연예기업인으로서의 상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으로 박재범 사건을 따져보자.
박재범 사건의 경우 팩트는 매우 단순하다. 영어에 대한 오독이니, 예전 글이니 이런 논란을 다 떠나 정확한 팩트는 박재범이 (과거에) “미국인으로서 한국 연예계에서 활동을 하면서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고, 돈만 벌면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지녔다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 드러난 사건이다.
자신이 활동하는 국가와 국민을 비하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연예인은 없다
이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을 한국 대중은 사실 상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만의 특수한 민족주의니 국가주의 문제가 아니다. 반대로 2PM과 박재범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활동할 때, 그 누구든 미국인을 비하하면서 미국에서 돈만 벌면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드러난 순간 퇴출이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언더그라운드나 인디 시장이 아닌 주류시장에서 자신이 활동하는 국가를 비하하면서 버텨냈던 사례는 없다.
미국인으로서 영국에 사는 배우 기네스 펠트로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국 날씨는 우울하고, 영국 거리는 더럽고 영국 서비스인들은 무례하다"고 발언했다가, 영국 언론인들로부터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집중 공격당했던 것이 좋은 사례이다. 이 사건에 대해 영국에서 극우 파시즘에 대두되었다는 미친 소리를 해대는 영국 언론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서만 기형적으로 국가주의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구의 선진국들이 이 점에 대해서는 더 하다. 다들 자신들이 1등 국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티즌들이 “미국인 박재범은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모욕죄로 처벌을 받을 수준의 막말을 퍼부은 네티즌들은 자신 스스로 법적 책임을 져야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세력은 개입을 해야할 이유도 없고 개입의 여지도 없다. 또한 포털사이트의 개입은 특별한 정략적 목적없이 클릭수 위주로 기사를 배치했다. 통상적인 인터넷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럼 핵심은 남는다.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연예기획사 JYP의 이중적 혹은 기회주의적 처신이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박재범과 2PM은 자생적으로 구성된 그룹이 아니라 철저히 JYP의 상술을 위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박재범이 훈련과정에서 마이스페이스에 글을 올린 것도 어찌보면 관리 책임자인 JYP 측에 있다. 미국인 박재범을 한국으로 데려온 것도 JYP이고, 이것은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둔 하나의 상업 기획이었다.
박재범이 JYP와 협의없이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JYP측은 이제껏 공식입장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박재범이 2PM을 탈퇴하여 미국으로 돌아갈 때 JYP측과 상의를 안 할 수가 없었을 텐데, 이에 대해서조차 JYP측이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동방신기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거대 연예기획사와 아이돌 그룹의 계약은 일반계약과 내용이나 형식이 다르다. 탈퇴하고 싶다고 탈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고 싶다고 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박재범이 JYP와 상의없이 미국으로 갔다면 그것은 임의탈퇴이고 계약위반일 가능성이 높다.
2PM이 JYP가 만들어낸 상품이라면 소비자로서 한국을 비하하는 미국인이라는 불량상품을 소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다. 이들을 비판해선 안 된다. 만약 이들의 불매운동 선언이 과도했다면 JYP의 실질적 주인인 박진영이 직접 나와서 팬들에게 호소했으면 되는 일이다.
이 부분에서의 정답은 없다. 박진영과 박재범이 팬들에 호소해서 대충 받아들여지면 일정 부분의 팬 이탈을 감수하고 그대로 활동하면 되는 것이고, 그래도 안 되면 도리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박진영만 결단내리면 당장 내일이라도 박재범은 돌아와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JYP 측은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박재범 개인의 사과글(이것도 개인이 썼을지 JYP와 상의해서 썼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하나 올려놓고 여론의 추이를 보고 판단한 것이다. 즉 외부적으로 볼 때 JYP는 모든 책임을 박재범에게 떠넘겨버린 셈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멀쩡한 네티즌에게까지 전이되어버렸다.
재미있는 점은 박재범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 갑작스럽게 그에 대한 동정적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보도가 범람하여 사실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일부 매체에서는 그가 잠시 쉬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란 이야기도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즉 미국으로 쫓겨나는 이미지를 갖춘 뒤, 여론이 우호적으로 바뀌면 다시 재합류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JYP의 언론플레이 개입 여부도 향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략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 여론의 본질을 파악할 때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네티즌에 대한 예찬도 비하도 금물
네티즌의 여론형성이라는 것이 실제로 네티즌 자발적인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건처럼 거대 연예기획사가 움직이고, 포털과 언론의 개입에 따라서 판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네티즌을 쓸데없이 예찬할 것도 없고, 네티즌을 비하할 것도 없이 정확히 현상을 파악하여 조금이라도 인터넷여론이 생산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다잡아줘야 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 사태의 원흉인 상술논리에만 빠져있는 JYP 측의 처사가 일차적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JYP 측은 비판 대상에 완전히 빠져있다. 이러한 연예권력과 언론, 포털 등등에 대한 매카니즘의 기본도 모르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 상투적 수준으로 함부로 진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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