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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의 히딩크'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금융감독원에 입성한 윌리엄 라이백 특별고문이 '모피아'(재경부를 뜻하는 '모프' MOFE, Ministry of Finance & Economy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조직적 저항에 가로막혀 6개월만에 한국을 떠난다.

데이비드 엘든 (두바이 금융센터 이사장, 전 HSBC 회장)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과 더불어 이명박 정부 외국인 장관 0순위에 올랐던 라이백 고문의 낙마는 한국 공직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일종의 쇼윈도우나 다름없다.

금융위 궁색한 변명 "5억 들였지만 비용대비 효과 미미"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조선일보 기자에게 "라이백 고문에게 드는 비용에 비해 활용도가 낮아 비용 대비 효과가 작다고 판단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라이백 고문의 연봉이 2억2500만원(부원장급)인데 월 700만원의 아파트 월세와 전담 통역사 비용 및 사무실 유지비 등 연간 5억원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조직 내에서의 활용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큰 오류가 있다.

첫째, 라이백 고문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과다하게 부풀려 계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월 700만원의 아파트 월세는 연간비용으로 환산하면 약 8,000만원 수준이며, 전담 통역사 비용을 연간으로 환산하더라도 5,0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라이백 고문 연봉 2억 2,500만원을 더하면 대략 3억 5,00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나머지 1억 5천만원은 무엇일까? 해외출장비, 업무추진비, 사무실 집기 및 비품, 소모품 등을 합한 후 반올림하여 5억이라는 숫자가 나왔을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라면 금감원 국장급의 경우 대략 연간 3~4억원, 심지어는 9급 공무원도 1억원이 넘는 비용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1억원이 투입되는 9급 공무원과 3~4억원이 투입되는 국장급 간부들에 대해서는 비용 대비 효과를 꼼꼼히 따져서 6개월 단위로 퇴출 여부를 결정하고 있을까?

공무원들의 업무 성과에 대해서는 한 없이 관대하면서 외국인에 대해서는 6개월 이상은 기다려줄 수 없다면 다시는 외국인들 데려올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6개월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낸다는 것은 축구에서도 불가능한 일인데 하물며 금융감독기구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결국, 처음부터 퇴출의 명분만을 찾아왔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금감원 스스로가 처음부터 라이백의 활용도를 스스로 제한했다는 점이다.

라이백 고문 영입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이승희 의원은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초 국제담당 부원장으로 영입한 후 성과에 따라 직책을 조정한다는 것으로 청와대(노무현 정부) 측과 조율했으나 금감원 측의 반발로 부원장급 특별고문으로 역할이 축소되었다"고 주장했다.

지휘계통에 따라 움직이는 공직사회의 특성을 감안할 때 특별고문이라는 직책 자체가 조직 내 활용도를 원천적으로 저하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 의원은 이와 관련 "기왕에 비용을 들여 영입했음에도 조직 내 핵심역할을 맡지 못하도록 금감원 측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통이 터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라이백 고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부국장, 홍콩금융감독청(HKMA) 수석 부청장 등을 역임한 중량급 금융전문가로 지난해 10월 금감원에 의해 부원장급 특별고문으로 영입됐다. 이러한 인물을 2억원 남짓의 연봉을 주고 영입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월만에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진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의도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영어로 대화가 되는 금감원 간부 거의 없어"...라이백 낙마의 진짜 이유?

금융위 관계자는 "영어로 대화가 되는 금감원 간부들이 거의 없어 통역을 끼우자니 서로 불편하고, 그런 점 때문에 현안을 적극적으로 상의하지 않으려고 하니 결국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어쩌면 이것이 "5억원 만큼의 활용도가 없어서..."라는 궁색한 변명보다는 차라리 현실적이고 솔직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은 "침대 크기에 맞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침대에 누구도 들여놓지 않겠다"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다. 금감원 간부들의 영어 실력이 향상될 때까지 외국인 전문가를 영입할 수 없다는 것인가? 더욱이 외국 경제학 박사와 MBA 출신이 넘쳐나는 금감원에 영어로 대화가 되는 간부들이 거의 없다면 이것은 금감원 인사배치가 잘못되었던지 학위의 진위가 의심되던지 둘 중 하나로 볼 수밖에 없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와 금감원은 '글로벌 경제'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뉴욕증시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발언 하나에 국제 금융시장이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는 것이 바로 금융 현장이다. 그곳에 근무하는 간부들 대부분이 영어로 소통할 수 없다면 과연 우리 국민들은 무엇을 위해 이들에게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는 것일까? 더욱이 영어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국제금융 지식과 경험에 정통한 인사들이 태평로, 여의도, 테헤란로에 널려있는 상황에서 왜 금감원에 이러한 사람들이 배치되지 않은 것일까?

혹, 영어에 능통한 국제금융 전문가가 조직에 영입되는 순간 다른 간부들이 불편하고 부끄러워지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익명을 요청한 국제금융 전문가는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라이백 고문을 특별고문으로 내려앉힌 가장 큰 이유는 금감원 간부들의 '영어 공포증' 때문"일 것이라며 "회의 자료를 영어로 작성해야 함은 물론, 공식 회의 석상에서 통역이 필수적인 간부들과 통역이 필요없는 소장파 관료 및 학자들의 실력 차이가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희 의원 또한 라이백 고문으로부터 "처음에는 젊은 관료들과 학자들이 자주 방에 찾아와 여러가지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간부들이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 찾아오는 사람의 숫자와 빈도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내용을 전해들었다고 주장했다.

히딩크 감독을 지켜준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 라이백 고문을 쫓아낸 이명박 대통령?

그러나 최근 청와대와 금융위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또 하나의 기류가 감지된다. 즉, 정부 조직개편 과정에서 라이백 특별고문의 존재에 대해 청와대와 금융위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 정황이 포착된다.

금감원의 한 간부는 "금융위가 금융정책 기능을 모두 다 가져갔기 때문에 금융정책 자문 기능을 수행하는 그를 금융위에서 인수인계하는 게 맞는데, 정부조직인 금융위에선 예산 문제 등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초반엔 그를 적극 활용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대선과 정권 교체, 또 그에 따른 금감위·금감원 조직개편 문제가 불거지면서 간부들 관심이 다른 데로 쏠리면서 그에 대한 활용도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부연 설명했다. 다시 말해 청와대와 금감원 어느 쪽도 챙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승희 의원은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라이백씨 활용 문제가 당연히 논의되었어야 하는데 청와대 일부에서 노무현 정부의 영입인사를 챙길 필요가 있겠냐는 기류가 형성되었고, 금융위는 '작은 정부' 기조를 추구하는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라이백 영입에 따른 예산 증가를 부담스러워했고, 금감원은 라이백이 관장해야 할 업무영역이 금융위로 이관 조정되었다는 것을 핑게삼아 라이백을 의도적으로 고립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계속 강조해온 것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였고, 그 연장선 상에서 '외국인 전문가 영입'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외국인 장차관 영입을 위해 법제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된 바 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어렵게 영입한 외국인 금융전문가를 공식 지휘계통에 배치도 안하고 '특별고문'이라는 허울좋은 타이틀로 6개월간 방치해두고는 "비용 대비 효과가 미미하다"며 쫓아낸다면 과연 어떤 외국인 전문가가 한국에 발을 들여놓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라이백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캐치프레이즈의 진정성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용지와 다름이 없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오대영 감독'이라는 비아냥을 국내 축구전문가들과 축구팬들로부터 들었을 때에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은 히딩크에 대해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고 이것이 결국 '월드컵 4강 신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히딩크 영입이 2000년 말에 결정되었고, 월드컵이 2002년 여름에 치러진 것을 감안할 때 정몽준 회장과 축구팬들은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그를 기다려준 셈이다. 그러나 만일 히딩크가 감독이 아닌 대표팀 특별고문으로 이 땅에 왔다면 과연 그와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아마도 이번 라이백 고문과 마찬가지로 6개월 후에 "비용 대비 효과가 없어서..."라며 낙마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명박 정부는 라이백 고문을 책임 있는 자리에 배치하여 그가 '아시아 금융허브' 창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기왕에 영입한 전문가를 내보내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한번 떠나보내고 나면 다시는 데려오기 어렵다.

특히, 그린스펀 전 FRB의장의 핵심측근이고, 국제 금융도시 홍콩의 '글로벌 사령관'을 지냈고, 국제금융을 움직이는 유태계의 적통을 이어받은 그가 한국인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익에 큰 손해를 끼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정부와 라이백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 보다는 양쪽이 잘 조율하여 함께 시너지를 창출하는 쪽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이 라이백 활용에 있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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