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답지 않은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드디어 5년간 전세들어 살던 청와대를 떠났다. 그는 5년 동안 심성이 뒤틀려 정상적인 대한국민을 사갈시(蛇蝎視)하고, 엇나가기를 잘하여 국민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음으로써 청개구리를 연상시킨 사람이었다.
환경에 따라 몸빛을 바꾸며 비가 오려고 하면 나무 위에서 시끄럽게 우는 청개구리처럼, 그는 시도 때도 없이 품위 없는 막말을 쏟아 내어 국민을 짜증나게 하고 밤잠을 설치게 했다. 따라서 노무현은 취임서약에서 약속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라 사리관복(私利官福)만을 추구한 의사(擬似) 대통령으로 사초(史草)에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게 됐다.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그는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푸념을 늘어놓아 순진한 국민을 우롱하더니, 실정(失政)으로 언론의 비판과 국민의 따가운 질책이 쏟아질 때마다 "나는 몇 십 년을 내다보고 정치를 하고 있으므로 눈앞의 일에 매달리는 부류들과는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며 홀로 고고(孤高)한 체 국민을 눈 아래 두고 깔봐 왔다.
그는 스스로의 최면(催眠)에 걸린 영험(靈驗)한 최면술사(催眠術士)였다. 대통령 선거 유세 중에 "남북관계만 잘되면 정치는 깽판 쳐도 된다"고 호언(豪言)했었다. 그가 자신에게 건 최면은 100%의 효력을 발휘하여 5년간의 그의 정치는 '깽판'을 넘어 아수라장(阿修羅場)을 만들었기에 국민은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언론과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며 풍차를 향해 칼을 빼들고 돌진한 '동키호테' 부럽지 않은 만용(蠻勇)을 부려 김대중의 눈에 쏙 들었고, 마침내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까지 꿰 차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에게는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불행이었다.
그는 임기 막바지에 '언론과의 전쟁'을 야멸차게 벌여 정부 각 부처의 기자실에 대못질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의 전근대적 이미지를 씻고 '서민적 대통령'임을 내세운 그의 이른바 '참여정부'는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였다.
노무현의 비극은 친김정일 세력의 어줍잖은 좌파이념에 함몰되어 대한민국을 정치후진국, 경제후진국, 그리고 교육후진국으로 후퇴시킨 것이었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자율보다는 규제를, 노사화합보다는 노조를, 자유보다는 평등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로 기업은 위축되고 국제경쟁력은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국민은 희망을 잃고 좌절과 회한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자주와 민족이라는 동굴의 우상(洞窟偶像)에 갇혀 한미동맹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김정일의 바짓가랑이만을 붙들고 그의 눈치를 보며 그가 시키는대로 하는 바람에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미아(迷兒)가 되고 말았다. 분수에 맞지 않게 동북아의 균형자가 되겠다느니, "미국을 향해서도 할 말은 해야 하겠다"느니, 일본에 대해서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느니 부질없는 칼날을 세우다가 소중한 친구들을 다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는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한답시고 부부가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까지 가서 김정일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형님, 진즉 찾아뵈어야 도리이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제야 찾아뵈옵니다. 비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라면서 수십조 원의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갖가지 약속을 남발했다. 나아가 다음 대통령이 파기하지 못 하도록 약속에 대못까지 박으려는 몰염치한 짓도 서슴지 앟았던 것이다.
더욱 황당한 짓은 방북기념식수 표지석(標識石) 설치를 둘러 싸고 벌인 해프닝이었다. 노무현은 대선 하루 전인 12월 18일 김만복 국정원장을 평양에 보내 그의 평양방문 기념으로 10월 4일 오후 평양 중앙식물원에 심은 한 그루 반송(盤松) 앞에 표지석을 설치하도록 했다. 이 표지석은 75㎏짜리였다. 이 표지석에는 '하나된 민족의 염원을 담아'라는 주문(主文)에 '2007.10.2∼4. 평양방문기념.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새겨져 있다.
당초 이 표지석은 250㎏짜리로 제작되어 노무현 일행과 함께 평양까지 운반되었었고, 그 문구도 '정상회담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식수 하는 자리에 김정일은 나타나지 않고 김영남 최고회의 상임위원장이 대신했었다. 이는 노무현이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짓밟은 처사로서 오욕의 역사로 길이 남을 수치스런 해프닝이었다.
이 뿐인가. 그가 사람다운 사람을 사귀어보지 못 한 탓에 주위에 코드가 맞는 사람만을 불러다 쓰다 보니 쓰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미물(微物)들 뿐이었다. 때문에 "깜도 안 되는 일을 갖고 소설을 쓴다"며 측근들의 부정과 비리를 감싸려다 오히려 분뇨(糞尿)를 뒤집어 쓰는 수치를 당하기 일쑤였다.
누가 뭐라해도 노무현이 대통령다운 대통령으로 대접받을 수 없는 까닭은 취임식에서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하고서도 시시때때로 헌법과 법률(특히 선거법)을 위반함으로써 대통령의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국회의 탄핵결의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날 뻔 한 망신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는 방송과 친노무현 계열의 언론, 그리고 불법 야간 휏불데모에 힘입어 헌법재판소의 애매하고도 모호한 판정으로 구사일생(九死一生)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그놈의 헌법이 못하게 해요"라면서 헌법을 조롱하고 폄훼(貶毁)한 후안무치(厚顔無恥)의 표본이었다.
엽기적 대통령 노무현
그는 엽기적(獵奇的)인 대통령이기도 했다. 2002년 4월 이인제, 한화갑, 정동영 등 강력한 라이벌들을 물리치고 김대중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부터가 대중의 상상을 뛰어넘는 엽기적인 결과였다. 김대업이나 설훈 같은 이아고(Iago) 빰치는 최고의 모략중상 베테랑 덕에 이회창을 젖히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건 또한 엽기적인 사고(事故)였다.
일인당 국민소득 68달러의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이 국민 모두의 피와 땀으로 산업화를 이루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승리한 오욕의 역사"라며 친김정일 세력들을 앞세운 '과거사 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으면서 박정희를 부관참시(剖棺斬屍)한 짓거리도 엽기적인 행위였다.
독오선생 노무현
노무현은 옹고집으로 똘똘뭉쳐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물을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한이 골수에 맺혀 원한에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 온 그에게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력이 쥐어졌으니 그 횡포가 오죽 했겠는가. 가진자와 덜 가진자, 많이 배운자와 못 배운자, 강남에 사는 사람과 강북에 사는 사람, 호남 사람과 영남사람, 친김정일 세력과 반김정일 세력, 노동자와 사용자 등을 확연히 갈라놓고 갈등을 부추기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5년을 안락하게 지낸 사람이었다.
그가 내세운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구호는 겸손을 가장한 오만하기 그지 없는 문구다. 대통령이 국민보다는 훨씬 위에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겸손함을 국민에게 보여 줄 요량이었다면, "대통령은 국민의 종복입니다"라고 해야 옳다. 이렇게 노무현은 겸손을 내세워 오만(傲慢)을 숨긴 간사한 지혜의 소유자였다.
그는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 하고 국민위에 군림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자기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언론과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국민" 탓으로 돌렸다. 만 사람이 틀렸다고 해도 혼자만이 옳다고 고집함으로써 정치를 그야말로 '깽판'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독선(獨善)과 오만의 대명사가 되어 '독오(獨傲)선생'이라는 아호(雅號)를 얻었다. 필자가 이미 지적한 일이 있듯이 그는 '독성 강한 지도자(Toxic Leader)'였다. 립맨(Jean Lipman-Lipmen)은 그의 저서
천하를 개인 것으로 생각하고 제 마음대로 하면 폭군이요 독재자이며, 세상을 국민의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면 그가 바로 성군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성군이었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함포고복(含哺鼓腹)하면서 행복을 구가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국민들은 5년 동안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면서 가시 밭 길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이제 '독성강한 지도자'요 '독오선생'인 노무현 대통령은 떠났다. 대한국민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시끄러운 개구리 소리를 듣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위안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태어난 곳도 아닌 곳을 고향이라면서 '봉하마을'로 떠난 오늘, 그가 탄핵을 당해 조용하던 어느 날 읊어 본 시 한수를 소개하고 졸문을 마치려 한다.
개구리 소리
앞뜰과 뒤뜰에서
낮 밤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또 울어 예던
개골개골 그 소리
어느 날 갑자기
참으로 갑자기
뚝 끊어져 들리지 않아
그래도 정든 탓에
서운 한 맘 감출 길 없어라
구태여 까닭을 알려 않고도
참으로 오랜만에
평안히 잠들면서
문득 떠오르는 소망 한 가지
다시는 그 소리 들리지 않았으면 (200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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