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란 무엇을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성경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말하고 있다. 일시적인 성공에 우쭐하여 오만에 빠져 독선을 부리다가는 ‘만사휴의(萬事休矣)’가 되고 만다는 섬뜩한 경고다.
‘화합 속의 변화’를 강조 한 이명박 당선자
이명박 당선자는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합심해서 변화를 창조해 내야 합니다. ‘화합 속의 변화’를 일구어 내야 합니다”라고 호소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말은 실천이 뒤따를 때 ‘ 정직한 말’이 되고, 말로만 그칠 때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지난 해 11월 8일 박근혜를 향해 “정치적 파트너요 소중한 동반자”라면서 경선승리에 도취되어 방자(放恣)한 언행으로 비판을 받던 이재오를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도록 했었다.
박근혜는 전국을 누비면서 이 후보 지지를 위해 사자후(獅子吼)를 토함으로써 “일개 당원으로 돌아가 당과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 하겠다”는 약속을 철저히 지켰었다. 그리고 그의 지원도 큰 힘이 되어 이명박 후보는 압도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구성되고 ‘이명박 정부’ 출범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명박 측은 ‘승자독식’에 대한 욕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박근혜 측과의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구랍 21일 박희태 의원의 ‘당권과 대권 통합’ 주장을 시작으로 이방호 사무총장의 ‘40% 물갈이 론’이 튀어 나왔고, 잠시 뒤로 물러나 숨죽인 체하던 이재오는 “기대를 저버리는 인사는 쓰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은 공천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당선자도 “국회의 인사 청문회와 대통령 취임식도 있는데 (공천)탈락자들이 제대로 협조 하겠느냐”면서 공천 연기를 시사하기도 했었다. 이 당선자 측의 이런 일련의 발언들을 박근혜 측은 ‘우리를 몰아내기 위한 음모’라고 받아들임으로써 양측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말을 극도로 아낄 줄 알뿐 아니라 한 번 입 밖에 낸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박근혜 마저도 “공천을 늦출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을 털어 놓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대선 후 4개월 여 만에(12. 29) 만난 이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표는 공천시기와 물갈이에 관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 당선자는 “당헌 당규에 잘 규정되어 있다”는 말로 사안을 호도(糊塗)하고 말았다.
김무성,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그러나 이 당선자 측근들이 밀실에서 공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패자인 박근혜 측의 ‘피해의식’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1월 10일 ‘사당화’와 ‘밀실공천’움직임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잘못 간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저지하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밝힌 것도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13일에도 “나는 모든 각오가 다 돼 있다. 공천은 원칙에 따라 불편부당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박근혜와 가깝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가 있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 공천이 잘못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결연한 각오를 밝혔다.
김무성 최고위원도 격렬한 말을 쏟아냈다. 14일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그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이명박)주변의 철없는 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여러 설들을 늘어놓고 있다”며 “심지어 일부 언론에는 최고위원 3명과 중진의원을 포함한 살생부 명단이 등장했다”고 격노했다.
이어 그는 “사심에 가득 찬 일부 인사들이 차기 당권을 노리고 일찍부터 당권경쟁에 뛰어들면서 이 문제가 시작됐다”면서 “권력 주변에는 항상 가벼운 사람들이 기생하면서 권력을 향유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 당선자의 ‘화합 속의 변화’는 빈말이었나?
14일 기자회견문이 낭독된 후 이어 벌어진 일문일답에서 이 당선자는 4월 총선 공천갈등 문제에 대해 “강재섭 대표를 중심으로 공천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면서 “한편, 국민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모든 분야가 변화되길 요구한다. 거기에 정치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한나라당도 국민이 바라는 그러한 방법으로 당에서 공정하게 공천문제도 잘 할 수 있다고 본다”며 당에서도 국민이 바라는 변화를 반영하라는 ‘물갈이 지시’와 다름없는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리고 “개인적 이해나 계보의 이익을 떠나 협력하는 게 좋다”면서 박근혜 측이 계파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에둘러 꼬집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당연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해 말만 무성하고 실천이 없는 이 당선자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당선자가 거론한 계파정치 문제에 대해서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저쪽(친이)에서 개인적 이해나 계보로 공천하려고 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도 “그간 분명히 당에서 ‘영남 물갈이 40%’ 발언 등 많은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이런 상황까지 왔다. 이제 내가 할 이야기는 다 했다. 당에서 어떻게 하느냐만 남아있고, 지켜보고 있다”며 갈등의 원인 제공자가 이방호 사무총장임을 숨기지 않았다.
강재섭 대표는 11일 사당화, 밀실공천 등을 거론하면서 ‘좌시하지 않겠다’는 박 전 대표의 발언에 “얘기 자체가 저에게는 심한 모욕감을 준다”고 불쾌감을 드러냈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당 대표에게 궁금한 것은 물갈이 발언 등 그런 여러 이야기가 나올 때는 모욕감을 느끼지 않고, 제가 이야기 하니까 (그제서야) 모욕감을 느끼나.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박 전 대표의 또 다른 한 측근은 “이명박 당선자도 (마음이야 어떻든)공식적으로는 박 전 대표를 ‘소중한 동반자’라고 하는데 강 대표가 어떻게 박 전 대표를 ‘외부 인사’라고 깎아 내릴 수 있느냐. 비애감을 느낀다”며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개탄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헌정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의 주인이다
“이명박은 무섭게 재수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여항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이 말은 17대 대통령이야 말로 헌정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제도적으로 쥐게 된 행운아라는 뜻이다. 취임하자마자 18대 국회의원 총선가 실시된다. 2010년에는 지방자치제 선거가 치러진다. 그리고 2012년에는 19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이어진다.
현직 대통령은 당의 이러저러한 선거에 개입하려 하지 않더라도 공천에 천근의 무게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이명박 당선자는 국회의원 두 번, 지방선거 한 번의 기회에 그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이는 인위적으로 악착같이 거머쥐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제도적으로 자연스럽게 이 당선자에게 주어진 권력이다. 자연스럽게 주어진 권력을 게걸스럽게 먹으려고 덤벼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명박 당선자는 약속한대로 박근혜에게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남는 장사’다. 다 주면 돌아오는 것은 ‘신뢰할 만한 신사’, ‘정적을 품에 안은 관용의 표상’이라는 찬사일 것이다. 박근혜 측은 “‘정치적 파트너, 소중한 동반자’라는 약속을 지키라”고 거듭 강조(김무성 최고위원)하고 있지 않은가.
이 당선자는 14일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다”라고 말하고 “(세계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대한민국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곡(正鵠)을 찌르는 말이다. 그러나 상호 신뢰는 먼 남북관계보다 눈앞에 있는 ‘차세대 지도자로 각광 받는 인물’(14일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 부부장 접견 때 이 당선자가 한 말)과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이 당선자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하나 되기 위해서도 먼저 당내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 급선무다.
맹자(孟子)는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는 인간의 화합만 같지 못하다(不如人和)라고 지적 했다. 사람과의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 ‘이미 가진 것’을 가지려는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고 관용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다 내어 놓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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