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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제 공주식 정치를 탈피해야 한다

권력자에게 '동반자'는 필요하지 않다.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정치는 박근혜를 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비록 원내의석 120여 석의 제1야당 대표였으나 어쩌면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정계를 주도했다. 한나라당이 곧 박근혜이고 박근혜의 동선이 한나라당 동선이었다.

노무현정권의 핵심추진과제였던 국가보안법은 박근혜 때문에 토씨하나 건드리지 못했으며 우격다짐으로 통과시킨 사학법 개정안은 2년 내내 정국의 걸림돌이었고 결국은 정부 여당이 양보해야 했다.

이런 박근혜를 도저히 어쩌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은 공동정부, 대연정, 등을 제안하며 대통령직만 빼고 다 줄테니 국정을 함께 운영하자고 치맛자락을 잡았다. 그래도 박근혜는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결국 2004년 4.15 총선 이 후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승했다.

그런데 2007년 12월 19일 이후 박근혜는 어느덧 한나라당의 한 계파 수장으로 전락해버렸다. 대통령선거 홍보물에까지 ‘이명박근혜’라는 문구를 집어넣을 만큼 박근혜의 존재가치를 이명박과 공동운명체라고 했던 이명박 당선자 측이 지금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내 거의 모든 언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선 이후 박근혜의 움직임과 발언은 이제 자파 의원들의 공천이나 챙기는 정치인 정도로 밖에 취급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당선자 측과 갈등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투로 그를 격하시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어떤 자격이 있어 자꾸 공천을 언급하는지 알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표와 측근들이 모든 것을 너무 계파적․정략적으로만 생각한다.”

어제 하루 동안 이명박 당선자 쪽에서 쏟아진 말들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당선자의 ‘2월 국회 뒤 공천’ 입장을 비판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이처럼 이들에게서 박근혜 전 대표는 ‘무자격자’에다가 잘 해야 ‘계파 수장’으로 ‘격하’되어 표현되고 있다.

그럼 다시 지난 12월로 되돌아 가보자.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빙의 차이로 신승한 이명박 후보 측은 자신들이 코너에 몰릴 때마다 박근혜가 구원투수 노릇을 해주길 바랬다. 그리고 이 같은 그들의 요구에 박근혜는 착실하게 부응했다.

특히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갑작스럽게 지지율 20%선을 넘기며 이 후보의 지지율이 30%대로 빠지자 다급해진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 전 대표는 국정의 파트너이자 소중한 동반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 전 대표는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는 정도가 아니다”라는 한마디를 통해 이회창 바람을 잠재웠다.

김경준 씨가 귀국하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박근혜 지지층은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후보는 대선 전날까지 박 전 대표의 자택을 찾아 면담을 희망하며 심고초려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끝까지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 측에 한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대통령선거가 치러졌으며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따라서 이명박과 박근혜의 ‘동반자’ 관계는 지금도 유효해야 한다. 하지만 동반자의 측근들은 이제 박근혜를 동반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는 그리고 이명박 당선자도 마찬가지다. 인수위 사무실에서 회동하면서 서로의 약속에 대해 확인했지만 그 후 곧바로 방송대담을 통해 그 약속들을 무력화 시켜 버렸다.

그리고 이 방송이 나간 뒤인 2일, 이 당선자 측근들은 이제 아예 박근혜에 대한 본격적인 격하직업에 돌입했다. 그래서인지 박 전 대표는 2일 대구에서 이 당선자 측의 이 같은 행태에 매우 분개한 것 같은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를 보도한 언론들은 박근혜의 이런 반응을 계파 의원들의 공천 챙기기 정도로 이 당선자 측과 궤를 같이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당규로 보거나 한나라당 내 박근혜의 현 위치로 보거나 박근혜의 대구 발언은 ‘무자격자’의 발언이 아니다. 엄연히 박근혜는 당의 상임고문이며 당 상임고문으로서 당권파와 당선자 측이 당헌당규를 지켜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 이 당선자 측근들은 당 상임고문에게 ‘무자격자’란 발언도 서슴치 않는다. 당선자가 공언한 ‘국정 동반자’란 단어는 이제 그냥 지나간 신문에 보도된 죽은 활자 중 하나의 단어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의 진면목이다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것이다. 다만 공주식 사고를 가지고 정치를 하고 있는 박근혜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권력자는 비슷한 힘을 공유한 ‘동반자’가 필요치 않다. 아니 차라리 매우 거추장스러운 존재이다. 권력자에게 비슷한 힘을 가진 ‘동반자’가 존재하면 권력자에게 힘이 모이지 않는다. 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게 정치이고, 상황론이 원칙을 압도하는 게 정치다. 굳이 재론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무한 권력만이 필요한 권력자와 그 측근들은 앞으로도 박근혜를 ‘동반자’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격하’시키려 노력하면서 박근혜를 ‘요리’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앞으로 박근혜의 행보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이다. 권력자와 권력자를 감싸고 있는 측근들의 끊임없는 격하작업 대상으로 요리될 것인지 아니면 박근혜가 이들을 요리할 것인지 그것이 관건이다.

열쇠는 이명박 진영이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박근혜가 쥐고 있을 수 있다. 박근혜가 공주식 사고방식만 버리면 된다. 즉 박근혜의 최종 결심 여하에 따라 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에비집권당인 한나라당 소속 의원은 128명이다. 그리고 어차피 야당이 될 반 한나라당이 170석을 갖고 있다. 이중 당선자 측에 우호적인 무소속 2~3명과 민주당 전국구 3~4명을 빼더라도 최소 160석은 확실한 반 한나라당이다. 또 이들의 임기는 아직도 4개월 이상이 남았으므로 현행법으로도 이명박 정부 출범에 딴지를 걸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수위에서 그린 그림대로 정부를 만들려면 우선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하고 헌법에 따라 총리 인준을 받은 뒤 총리의 추천을 받아 장관후보자를 내정할 수 있다. 또 이렇게 내정된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그래야 명실공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는 것이다. 거기다 현재 ‘이명박 특검법’이 서슬 퍼렇게 이 당선자를 노리고 있다.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특검 수사를 통해 당선자의 귀책사유가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이는 야당이 될 반 한나라당 측 의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똘똘뭉쳐 당선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며 당선자가 취임을 하더라도 국회는 새 대통령 탄핵까지 운위될 것이다.

그러므로 박근혜가 노무현 정권과 벌였던 한판 승부를 이명박 당선자 측과 지금 벌인다면 이 당선자 측은 완패할 수밖에 없다. 많아야 135명을 넘지 않을 이 당선자 측 의석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마음먹고 약 30여석의 세력만 모은다면 이 승부는 보나마나 한 게임이다. 100석 남짓으로는 이 당선자 측이 절대로 원할한 정부 구성도 국회의 탄핵 위협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알아야 할 점이 바로 이점이다. 이 당선자 측이 노리는 것은 절대로 원할한 ‘새 정부 출범’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벌기이다. 누구에게도 세를 모을 수 없도록 하고 시간을 번 다음 새 정부가 들어서야 당선자 측이 구상한대로 정국을 끌고 갈 수 있다.

그런데도 아직 공주식 정치를 고수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는 공천 연기를 ‘물갈이 음모’정도로만 보고 있다. 자파 소속 의원들의 낙천을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정도로만 보는 것이다. 당선자 측이 공천 시기를 최대한 늦춰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을 ‘물갈이’ 대상으로 정하고 이들이 다른 말로 갈아타는 걸 차단하려 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 당선자 측의 궁극적 목표는 그것이 아니다. 이 당선자의 확실한 총수 등극이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완벽한 권력자의 자릴 노리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일개 중진의원 정도가 될 것이며 당선자가 약속했던 ‘동반자’관계는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그래서 박근혜에겐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그가 이 당선자와 동반자 관계를 원하지 않더라도 정치권에서 핵으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금이란 것이다.

김영삼은 50여석으로 노태우 대통령과 190여석의 민자당을 요리했다. 그리고 끝내 그의 말대로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를 잡아버렸다. 박근혜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같은 김영삼식 결기다.

이 당선자 측은 노무현 정권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간교하다. 따라서 허술하고 간교하지 못한 노무현 정권에서 세웠던 결기는 그래서 이명박 당선자 측에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 120여석의 의석보다 박근혜가 지금 가진 30여석이 그래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들이 없이는 이 당선자 측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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