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자의 앞길은 패망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는 성경 잠언의 말은 어리석은 인간 모두를 향한 비수보다 무서운 경고다. 또 잠언은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는 예언도 잊지 않는다. 어제 오늘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의 상황에 대한 정곡을 찌른 비유라 아니할 수 없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의 총재가 7일 마침내 17대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출마의 명분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나, “좌파정권을 종식시키고 정권교체를 기필코 달성하여 국민의 염원을 이루어 드리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MB의 의심스런 대북정책 기조와 BBK 주가조작 의혹, 도곡동 땅 투기 등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한 국민적 불신 때문에 MB로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이 국민과 언론의 무차별 질책을 감수하면서까지 정계은퇴 약속을 깨고 3수를 결행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투표일을 42일 남기고 이와 같은 황당한 사태가 벌어져 대한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근본 원인은 한마디로 이명박 후보에게 있다.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후 78일 동안 무엇을 하였기에 사태를 이 지경에까지 몰고 왔는가.
이명박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기필코 “친김정일 세력‘에게는 또 다시 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확고한 결심이 있었다면,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박근혜의 충정을 깊이 이해하고 무조건 포용하는 관용의 리더십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MB의 최측근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이재오 최고위원은 경선 승리 이후부터 “패자가 무슨 할 말이 있느냐”는 오만한 작태를 보이면서 박근혜 측 사람들을 사갈시(蛇蝎視) 함으로써 양측의 틈새는 벌어지기 시작했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치유가 불가능 할 정도로 양측의 불화의 골이 깊어지자 마침내 “MB를 후보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막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오만의 극치’라는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낙인이 찍히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이재오의 이러한 ‘미련한 입술’은 드디어 이명박 측과 박근혜 측과의 분쟁을 일으켰고, 그 입은 마침내 ‘최고위원 직 사퇴’ 압력이라는 ‘매를 자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호기를 놓칠 새라 양측의 불화와 분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이회창이 출마를 선언 한 것은 이명박 캠프가 불러 온 시련이요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신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재앙이나 시련은 내리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 한나라당과 이명박에게 닥친 시련은 이명박이 얼마나 ‘통 큰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이 시련을 계기로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경직된 캠프를 재정비하고, 후보의 입맛에 맞는 정책과 전략만을 제시하는 ‘예스 맨’보다는 후보의 눈치를 보지 않는 소신 있는 ‘노 맨’을 많이 발굴한다면 이 재앙은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MB, 카이사르와 링컨의 관용정신을 본 받기를
로마의 불세출의 영웅 ‘카이사르(Caesar)’는 전쟁에 승리한 후 항복하는 적을 한 사람도 죽이거나 해치지 않고 모두 우군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자기 군대에 편입시키기까지 했고, 그 지휘관이나 지도자들에게는 로마시민권과 원로원 의석을 주는 등 최대의 관용을 베푼 지도자로 죽백(竹帛)에 이름을 남겼다.
그는 정권의 향방을 가름 할 ‘폼페이우스’와의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대승한 후 폼페이우스의 측근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항복을 받아들여 측근에 두었기 때문에 암살될 때 그 유명한 “브루투스 너 마저...”라는 명언을 남기게 되는 ‘무모하리만치 관대한 처분’을 체질적으로 좋아한 지도자였다. 그는 화합적이고 현실적인 로마인의 표본이었던 것이다.
링컨 대통령은 1860년 대통령 후보를 뽑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기와 첨예한 대립 각을 세웠던, 그리고 경선 패배 후에도 승복하지 않았던 최대의 정적 세 사람을 대통령이 되자 각료로 모셨다. 상원의원 윌리엄 슈워드, 오하이오 주지사 새먼 체이스, 미주리주의 에드워드 베이츠 판사, 이 세 사람은 한결같이 링컨은 지독하게 운이 좋아 당선되었지만, ‘경륜이 부족하고 무식한 촌뜨기’라고 경멸했었다.
그러나 슈워드는 국무장관직을, 체이스는 재무장관직을, 베이츠는 법무장관 직을 수락하고 링컨과 같이 일해 본 결과 링컨이 진정 ‘통 큰 리더’임을 알아보고 그들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도 링컨의 최대의 지지자가 되었던 것이다. 슈워드의 아들은 “이 중대한 시기에 미 연방에는 다행이 논리적인 사고력과 따뜻한 가슴을 갖춘 대통령이 계신다”라고 일기에 쓰기까지 했다.
‘정적들의 팀(Team of Rivals)’의 저자 ‘도리스 컨스 굿윈(Doris Kearns Goodwin)'은 링컨이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씩 인재를 품어 안는 과정을 그의 방대한 책에서 소상하게 서술하면서 “사람을 얻는 것이 진정한 권력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라는 교훈을 던지고 있다.
이재오를 사퇴시킨 것은 ‘통 큰 지도자’의 첫걸음
이 최고위원은 자타가 인정하는 이 후보의 1등 공신이다. 따라서 이재오에 대한 이 후보의 애정도 각별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이재오는 이 후보의 외곽 조직인 ‘2007 국민승리연합’을 이끌고 있고, 이 후보의 거개의 참모가 이재오 사람으로 메워져 있기에 이재오의 낙마는 이 후보의 전열의 약화로 이어 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재오를 사퇴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신중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러난 난제를 이명박 후보가 8일 아침 쾌도난마(快刀亂麻)로 해결한 결단과 용기는 박근혜 측과의 갈등으로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계기가 되었고 ‘통 큰 지도자’로서 거듭나는 첫걸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회창 전 총재는 7일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가 저를 지지해 주고 도와주면 저에게는 큰 힘이 되겠지요. 그러나 그 분의 입장도 배려해 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함으로써 박근혜에 대한 은근한 ‘러브 콜’을 보냈다는 것이 TV를 지켜 본 국민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당권도 양보해야
이 후보 측 사람들은 미국의 대선에서의 ‘승자 독식(勝者 獨食:Winner-take-all)' 시스템에 오염됐는지 후보가 된 승리감에 도취하여 당권마저 움켜쥐고 내년 총선에서의 공천을 보장받으려는 데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 정가의 지적이다. “박근혜 측의 당권요구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된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대권과 당권의 분리는 박근혜가 대표로 있을 때 확립한 당헌 당규에 의한 한나라당의 시스템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이놈의 헌법”이라고 헌법마저 폄훼(貶毁)하는 판국에 대한민국의 어느 정당이 당헌 당규를 지키리오만, 궁지에 몰린 이 후보로서는 대권만 빼고 박근혜에게 다 내주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후보, 삼고초려의 예로 박근혜를 모셔와야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의 대결을 앞두고 변호사로서 로마시민과 원로원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폼페이우스파 키케로를 은밀히 찾아가 폼페이우스를 지원하지 말도록 그를 설득하는데 성공했었다. 유비(劉備)도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가는 겸손함을 보임으로써 마침내 공명을 얻어 촉한(蜀漢)을 건국하는 위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후보의 최대의 난적은 누구인가. 바로 7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전 총재가 아닌가. 따라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처지에 놓인 이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를 내 편으로 모셔오는 일은 대선 승리를 위한 절대적 명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알량한 자손심, 실속 없는 자부심이나 승자의 우월의식 같은 허상은 깡그리 집어치우지 않으면 안된다. 이 후보가 7일 오전 6시 50분 이회창 전 총재의 집을 방문한 것처럼 예고하지 말고 박근혜를 찾아가라. 못 만나거든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해서라도 만날 때까지 찾아가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다’.
2002년의 대선 유세현장을 되새겨 보자. 노무현과 정몽준은 후보 단일화를 뽐내면서 손에 손잡고 함께 유세현장을 누비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국민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그들에게 집중되었고,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 하고 안일한 유세를 벌였던 이회창 후보를 누르는 기적의 역전드라마를 연출하지 않았던가.
지금 대한국민들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손에 손을 잡고 유세장을 누비면서 ‘친김정일 세력’을 단호히 물리쳐 주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다는 것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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