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반대, KBS는 분명 편파적이었다
보수진영이 KBS의 정권 편파방송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국가비상대책협의회,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방송지킴이국민연대, 바른정책포럼,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 자유언론인협회,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등은 다음달 16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편파방송 종식 방송 되찾기 국민대회'를 열 예정이라 밝혔다.
보수진영의 KBS에 대한 경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 김대업씨의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로 폭로부터, 탄핵과, 총선을 지나며, 보수진영에서는, “KBS를 바로잡지 않으면 대선은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특히, 한국언론학회의 탄핵 방송보도 보고서에서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탄핵반대에 편파적이었다”는 결론이 나오자, KBS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탄핵 관련 보도에 대해, “상식적으로 탄핵반대 여론이 높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며, 편파보도 주장을 비판했다.
탄핵 당시 필자는 KBS 시청자위원을 역임하고 있었다. 또한 탄핵 다음날 첫 날 토론회에 참여한 바도 있다. 필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다면, 분명히 KBS의 탄핵방송은 편파적이었다. 또한 이러한 의견을 KBS 시청자위원 회의 때, 그대로 전달했으며, "KBS의 탄핵보도는 공정했다"라는 시청자위원회의 결의문에서 필자의 이름을 뺄 것도 요구했다.
이는 탄핵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라는 이분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탄핵과 같이 진보와 보수 양자가 충돌하는 대형 정치적 이슈가 벌어졌을 때, 공영방송 KBS는 어떠한 관점에서 보도해야 하느냐의 문제였다.
진보진영이 주장하듯, 여론이 탄핵반대에 우세하니, KBS가 그 방향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건 전혀 공영방송의 이치에 맞지 않다. 그렇게 따지면, 노대통령의 개헌에 대해 70% 이상이 반대하고 있었는데, 이때 KBS가 개헌반대의 보도방향을 정했는가? 만약 KBS가 여론조사 결과대로 보도방향을 정했다가는, KBS는 희대의 대중추수주의 방송사로 전락한다.
KBS는 탄핵과 같은 사안에 대해서라면, 양 측의 주장을 동등하게 실어주면서, 탄핵의 법적 절 차 및, 해외사례 등을 소개하여, 시청자들에게 판단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집중했어야 했다. KBS가 탄핵반대의 깃발을 들어선 곤란하다. 왜냐하면 KBS는 공공의 재산인 공중파를 기반으로, 전 국민이 내는 시청료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청자에겐 극우파도 있고 극좌파도 있다. KBS는 최대한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보도방향성을 잡아야 했다.
그럼 KBS가 기계적 중립만 지키란 말이냐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기계적 중립을 지키라며 양측의 의견을 중개보도만 하라는 뜻이 아니다. 시청자의 판단의 근거가 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다. 엄밀성과 정확성을 확보해야, 이 조차도 가능하다. KBS는 당시 이러한 노력을 소홀히 하고, 일찌감치 탄핵반대라는 결론을 내리고, 보도에 임했다는 것이다.
KBS는 정권이 장악할 수밖에 없다
탄핵 이후에도 KBS의 편파성은 끊임없이 지적되어왔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미디어포커스’이다. ‘미디어포커스’는 언론비평 프로그램으로서, 사실 상, 조중동 등 보수신문사의 감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 프로그램 역시 필자 입장에서는 매우 편파적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체 미디어시장에서 신문의 영향력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또한 조중동은 사기업이다. 영향력도 별로 없는 신문 사기업에 대해 공영방송이, 거의 매주 집중감시를 하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기형적이다. 조중동 감시 이외에도, 인터넷신문, 포털 등 비평해야할 매체들은 수두룩하다. ‘미디어포커스’가 조중동 비판 내용을 줄이고, 비평의 영역을 대폭 확장하지 않는다면, 편파성 시비를 극복할 길이 없어 보인다.
미디어포커스의 조중동 비판의 내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다만 일일이 지적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 이 글에서는 생략하겠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KBS 비판에도 한계가 있다. KBS는 비단 노무현 정권 때만이 아니라, 늘 정권 편향적 방송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는 KBS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KBS는 방송위원회가 선임하는 KBS 이사회에서 사장을 선출한다. 방송위원회의 의사를 결정하는 방송위원은, 대통령과 국회가 추천하여 임명하도록 되어있다. 대통령과, 여당이 추천 임명하다보면, 당연히, 친정권적 인사들이 KBS 이사회를 구성하고, 결론적으로 대통령이 KBS 사장을 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KBS는 편파어용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보수진영에서는 KBS의 중립성 혹은 독립성을 보장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11월 16일에 KBS의 편파보도에 대해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가, 12월 19일 보수진영이 정권을 잡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KBS 사장의 임기는 내년 5월에 끝난다. 내년 5월이면 KBS는 보수정권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과연 보수진영이 이런 상황에서도 KBS 개혁을 위해 힘을 쏟을지, 의문이다. 물론 이는 진보진영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치 포털이 친 노무현 정권 성향을 보일 때는 보수가 비판하다가, 친 이명박 성향으로 돌아서니 진보가 비판하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토사구팽하는 격이다.
보수진영, KBS 편파를 비판하며 왜 제도 개선의 목소리는 내지 않나
필자가 생각해본 KBS의 중립과 독립을 위한 제도적 대안은 다음과 같다. 물론 한시적인 대안이다. 현재 KBS가 너무나 자주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기 때문에, 차기 정권에 한해서 한시적으로나마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을 해보자는 것이다.
우선 방통융합 과정에서 방송위원회가 방송통신위원회로 개편될 때, 위원 선임에 대통령의 추천을 삭제해야 한다. 대통령이 추천하면, 여당 추천 몫과 함께 반드시 정권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KBS 이사회를 구성하니, KBS 사장은 정권의 하수인이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 노무현 정권은 방송통신위원회 전체를 대통령이 추천하도록 만들어놓았다. 보수진영은 즉각 반발했지만, 차기 정권을 보수가 잡는다면, 아마 그대로 갈 공산이 크다.
진보와 보수가 합의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서의 대통령 추천을 없앤다면, 이제 KBS 이사회 구성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방송위 추천은 그대로 두도, KBS 이사를 철저하게 직능별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현재 KBS의 이사는, 대충 정치적으로 나눠먹기식으로 구성된다. 추천된 사람이 KBS의 경영에 어떤 도움이 될지 따져보지도 않고, 자기 사람을 심어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하는 일은 KBS 내에서 자신을 추천한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하지 말고, 편성기획담당, 마케팅 담당, 대중문화 및 문화교류 당당, 경영및 재무 당담, 뉴미디어 담당 등으로 직능별로 이사를 추천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사회의 정치성이 최대한 배제되고, 전문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향후 KBS의 경영전략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정치권에 줄만 서면 아무나 KBS 이사가 되는 일도 크게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명무실한 KBS 시청자위원회도 개혁할 필요가 있다. KBS 시청자위원회는 방송법에 규정된, KBS의 프로그램의 공영성을 확보할 수 있는 1차적 제도이다. 그러나 KBS 시청자위원은 모두 KBS 사장이 임명하도록 되어있다. 현재 시스템으로는 KBS 시청자위원회는 사장의 나팔수 역할 이상의 일을 할 수가 없다.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겠지만, 이렇게 KBS 사장의 독단적 판단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KBS 이사처럼 방송위원회가 임명해주는 것이 더 타당하다. 물론 이 때에도, 보도, 교양, 예능 등 직능별로 전문화 하여 구성해야 한다. 이미 KBS는 정연주 사장 체제 이후, 직능별로 시청자위원을 선임하고 있다.
이러한 대안은 최소한의 한시적 조치일 뿐이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 양측이 현재의 제도는 그대로 두고, 이념적 투쟁으로 KBS를 도구화할 때, KBS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요원하다.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이제 진보단체들이 KBS 앞에서 집단시위를 벌이게 될 지도 모른다. 지금 KBS 개혁을 말하는 보수진영에서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KBS 종사자들, 자기 신념 찾으려면 사표쓰고 정치웹진 만들어야
이러한 제도적 개선 이외에도, KBS의 일선 PD나 기자들도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해볼 필요가 있다. 정연주 사장 체제 이후 KBS는 실질적으로 민주화되었다. 사장이 엄명을 내린다고 따라가는 문화는 많이 바뀌었다. 보수진영에서 비판하는 KBS의 편파성은 오히려 기자나 PD 개인의 가치관에 근거한 경우가 많다.
KBS의 종사자로서, 개인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를 그대로 프로그램에 반영해도 되는 것인가?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절반의 싱청자들은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만약 KBS종사자들 중 반드시 자기 신념을 프로그램에 담아야겠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사표를 쓰고 인터넷신문을 만들어라. 자기 마음놓고 생각을 펼쳐낼 수 있다. 그런 모험을 할 자신이 없다면, 국가보안법 폐지의 깃발을 드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국가보안법 철폐에 관한 판단을 내릴 때, 어떠한 정보가 필요할지, 엄밀히 골라서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KBS 직원의 자세로서 마땅한 것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 이외에도, KBS만이 해야할 공영적 소재들은 너무나 많다. 연예기획사에 종속되어버린 예능프로그램도, 전 아시아의 대중문화 교류라는 공영적 관점에서 전면 수정해야 하고, 드라마 역시 보다 더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보도나 교양 또한, 전 시청자가 공감할 소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KBS는 정치적 갈등을 조화롭게 통합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되어야지, 어느 한 편에 서서 응원부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 누가 정권을 잡든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KBS 문제를 접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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