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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숙 헌재 소장 지명자와 솔로몬의 지혜

<기자칼럼> 죽은 헌재 차지할 것이냐, 헌재 살릴 것이냐?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지명자에 대한 논란이 결국 2라운드를 맞이하게 되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이번 사안에 대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법률 검토를 받았으며, 이들 모두가 '삼권분립'과 '헌법재판소의 중립성'을 이유로 전효숙 지명자의 '헌법재판관 사퇴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뒤늦게 이와같은 사실을 흘리면서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가득차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것은 전효숙 지명자를 둘러싼 논란이 헌법재판소의 중립성과 독립성 차원을 벗어나 사법부 전체의 중립성과 독립성이라는 방향으로 보다 확산되는 쪽으로 작용하는 역할을 하고있다. 다시말해 헌법재판소장을 정점으로 한 헌법재판소 구성에 대해 '삼권분립'과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도리어 헌법재판소의 중립성과 삼권분립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득의양양한 표정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대법원 측은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사태의 확산을 막는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왜냐하면 이번 전효숙 파문의 가장 원초적인 요인이 헌법재판소장과 관련된 헌법의 입법 미비인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대법원이 이 문제에 개입하였다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아닌 대법원이 헌법에 관한 최종 유권해석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같은 대법원 측의 움직임은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를 소멸시킬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대법원 측이 제기한 '삼권분립'과 '헌법재판소의 중립성'도 비판의 여지가 많다. 대법원은 현행 헌법재판소 구성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대통령-국회-사법부가 3 : 3 : 3으로 추천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당초 대법원장 몫으로 추천되었던 전효숙 헌법재판관을 대통령이 그대로 헌법재판소장으로 추천할 경우 대통령 몫이 4명으로 늘어나고 대법원장 몫이 2명으로 줄어든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6년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할 헌법재판소장이 그보다 짧은 임기만 수행하게 될 경우 독립성에 중대한 침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형식 논리만 놓고 보면 큰 오류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그 실질적 내용에 있어서는 대법원이 매우 위험한 시각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헌법이 헌법재판관에 대해서만 6년의 임기를 규정하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헌법재판관 한사람 한사람의 독립성을 그만큼 중요시하고 있다는 뜻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즉, 헌법재판소장의 독립성과 중립성보다 헌법재판관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이번 경우에 대입시키면 전효숙 지명자의 경우 헌법재판소장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보장될지 모르지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헌법재판관으로서의 6년 임기를 '대통령의 지명'이라는 행정행위로 손상시킨 경우에 해당된다.

민주당의 조순형 의원은 보다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다. 비록 임명절차는 다르지만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의 관계를 국회의장과 국회의원의 관계에 빗대어 말한 적이 있다. 조 의원은 전효숙 지명자의 행보를 두고 "이미 국회의원직을 수행해온 사람이 국회의장으로서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임한 격"이라고 표현하였다.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보다 국회의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장의 정치적 중립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정치적 중립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행위는 사법부 전체가 현행 헌법의 진정한 의미를 모두 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이 사법부와 입법부의 권한에 도전하여 스스로의 위치를 끌어올리려는 시도도 명백한 '탄핵' 감인데 자신들 스스로 사법부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있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지명자의 '무지'와 '욕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국민들이 전효숙 지명자로부터 보고싶은 모습은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소장에 등극하는 '성공 스토리'가 아닌 사법부의 수장이라는 무게에 걸맞는 신중함과 사려깊음이다. 만일 전효숙 지명자가 대통령의 무리한 지명절차에 대해 "그렇게 해석하실 수도 있겠지만 헌법은 단 한 글자도 자의적으로 혹은 광의로 해석해서는 안되는 것이므로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는 멘트 하나였다는 것을 과연 전효숙 지명자는 알고 있을까?


헌법을 '추상'같이 여겨야 할 헌법재판소장이 정치권과 국민을 향해 헌법의 '융통성 있는 해석'을 요구하고 있을 뿐아니라 대법원 역시 헌법재판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은 무시한 채 헌법재판소장의 임기와 추천 몫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대한민국 사법부의 '총체적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끝내 전효숙 지명자에 대한 국회 인준을 무리하게 강행할 경우 헌법재판소는 그 순간부터 극심한 권위 상실과 레임덕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편파 판정'을 일삼는 심판이라도 당장의 경기 진행을 위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아니면 차라리 경기 개시 시간을 조금 늦추더라도 제대로 된 심판을 뽑아서 경기를 진행하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까? 사법부가 독립성과 중립성을 스스로 훼손시켜놓고 국민들에게 그 결정에 승복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사법부 전체를 죽이는 일이다.

마치 지금 상황은 전효숙 지명자가 솔로몬 왕에게 불려가 친모와 계모의 역할을 동시에 맡고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자식(헌법재판소 혹은 사법부)을 둘로 나누기 위해 죽이라는 솔로몬 왕의 명령에 대해 과연 전효숙 지명자는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죽은 자식이라도 기어이 내가 차지하고야 말겠다고 득의양양 덤벼들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자식을 못 보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자식을 살려놓는 쪽을 선택할 것인가?

최종 선택은 전효숙 지명자의 몫이다. 부디 그의 결정이 지난 수십년간 입어온 법복을 '수치'의 상징이 아닌 '자부심'과 '명예'의 상징으로 국민들 뇌리에 각인시키기만을 간절히 기원해본다.

[중도와 균형을 표방하는 신문-업코리아(up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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