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을 배신하며 올라선 정동영

여권신당의 정동영 후보가 민주당의 이인제, 무소속의 문국현 등을 제치고, 범여권 단일화 여론조사에서도 1위를 질주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만으로 판단하자면, 정동영 후보가 민주개혁진영의 대표로 부상하여 이명박 후보와 일대 일 대결국면을 형성하고 있다.

정동영 후보가 급부상 한 것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동교동계와 정면 승부하며 정풍운동을 이끌면서부터이다. 당시 현 민주당의 김민석 전 의원 등, 정동영의 행태를 기회주의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권노갑 등 동교동계의 단물을 빨아들이며 정치적 성장을 다한 뒤, 동교동이 힘을 잃어가니, 뒤에서 칼을 꽂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여론은 정동영의 개혁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뒤, 새천년민주당의 국민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끝까지 가며, 경선지킴이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그러나 그런 국민경선으로 당선된 노무현 후보가 흔들릴 때, 정동영 후보는 애매모호한 스탠스를 보였다. 당시 칼럼니스트 유시민은 이런 정동영에게 국민경선 지킴이라면서, 국민경선으로 선출된 노무현 후보를 흔드는 것을 왜 보고만 있냐 공개 질의를 던졌다. 이때도 정동영은 "계파정치를 청산하자"라는 동문서답으로 즉답을 피했다.

그러다,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구도가 형성되자, 재빠르게 노무현 후보 측 공동 선대본부장을 맡는다. 정동영은 이렇게 노무현 당선 1등 공신이 되며, 다보스포럼 한국 정치인 대표로 연설을 하는 등, 그야말로 정치저 출세가도를 걷는다.

노무현 후보가 흔들릴 때, 또 한 명의 지킴이가 있었다. 바로 현 민주당 최고위원 김경재이다. 그는 노후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 한화갑 전 대표와 공개적으로 언쟁을 벌이면서, 선대위 홍보위원장으로 역시 큰 기여를 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그의 성공은 보장된 셈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분당되며,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정동영과 김경재의 행보는 엇갈린다. 정동영이 열린우리당 창당을 이끈 반면, 김경재는 노무현 당선 공신이라는 지위를 버리며, 민주당에 남는다.

정동영이 열린우리당 초대 당의장이 되어, 총선 승리라는 전리품을 챙긴 반면, 김경재는 민주당과 함께 패배의 쓰라림을 맛 본다. 특히 그는 자신의 재선 지역구 전남 순천을 버리고, 서울로 상경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수도권에서 무너지는 민주당 세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애초에 그와 함께 올라기로 했던 호남지역의 다선 의원들은 모두 막판에 상경을 회피했다.

정동영은 총선 이후 통일부장관을 맡으며, 화려하게 대선의 발판을 마련한다. 반면 김경재는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민주당에서조차 배척받으며, 정치적 야인으로 전락한다. 정동영은 그 뒤, 지자체를 앞두고 또 한반 당의장을 맡는다. 무려 두 번의 여당 당의장을 지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지위는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서 큰 힘이 되었다. 정동영의 조직력은 모두 총선과 지자체 때 당의장을 맡으며 공천권 행사로 키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자체의 참패 이후 정동영은 노대통령 세력과 단절을 선언한다. 참여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을 퍼부으며, 결국 자신이 당의장으로 있었던 열린우리당을 탈당한다. 노대통령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기자실 통폐합에도 그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분당이 잘못되었다며, 분당주도 세력이 권력을 쥐는 현상

정동영은 노대통령과 단절하며, 민주당 분당에 대해 사과했다. 민주개혁세력의 위기는 모두 민주당 분당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과 이외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사과를 바탕으로 호남에서의 지지세를 확보하여, 이번 경선에서 호남 몰표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분당이 잘못된 거라면, 분당의 주역들은 2선 후퇴하고, 분당을 막으려 했던, 김경재, 김영환 등 민주당 세력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맞는 일이다. 그러나 김영환은 민주당 경선에서 중도하차하고, 김경재는 후보로 나서지도 못했다. 정동영이 여권의 후보를 거머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동영은 후보로 낙점된 뒤, 느닷없이 "참여정부는 실패하지 않았다. 노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다시 노대통령에 손을 내밀었다. 그간 그가 퍼부은 노대통령의 비판은 모두 뒤로 돌렸다. 노대통령 측 역시 울며겨자먹기로 정동영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는 좀 특별한 데가 있다. 국가를 이끌어갈 리더로서의 능력은 물론, 그의 삶의 태도 전반을 검증한다. 이는 군사독재정권 시절부터, 기회주의가 난무한 한국 지도층에 대한 서민들의 반발감 때문이다. 미래에 누가 더 나을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과거에 누가 더 똑바로 살았냐도 매우 민감한 평가기준이다. 단지 아들의 병역 면제와 100평 빌라 건으로 지지율이 추락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과거를 똑바로 살은 정치인이어야만, 극심한 갈등과 분열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 역시 똑바른 소리를 할 수 있다. 아무리 미래에 잘해보겠다는 미사여구로 현혹해도, 이를 과거의 삶으로 입증하지 않으면, 신뢰성을 확보할 수 없다.

그 점에서, 정동영은 과거의 정치적 행보 하나만으로도 결격사유가 된다. 벌써 수차례에 걸쳐, 권력에 추종하고, 그 권력이 다하면 배신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후보가 민주개혁세력을 대표하고 있으니, 한나라당에 한참 밀리는 것이다.

정동영에 줄선 세력은 앞으로 원칙을 이야기하지마라

우리는 정치인들에 원칙과 소신을 지키라 요구한다. 그 점에서,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노무현 대통령의 삶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정동영이 민주개혁세력의 후보가 된다면, 우리는 정치인들에 전혀 다른 원칙과 소신을 제시해야 한다.

첫째, 권력이 주도하는 일이라면, 명분이 없어도 일단 따라가라. 대통령이 자신이 속한 여당을 깨는 일이 있어도, 절대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말고, 오히려 전면에 나서서 주도하라. 일단 권력을 쥐면 정당성은 어용언론들 이용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둘째, 그 권력의 힘이 다하면, 가차없이 배신하라. 남아서 신의를 지키는 일은 멍청한 자들이나 하는 일이다. 남들보다 먼저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면 된다.

셋째, 그렇게 해서 자신이 미래 권력을 쥐면, 배신한 대상이라도 활용가치가 있으면 다시 머리 숙이고 손을 내밀어라.

이는 정치인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민주개혁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정동영에 줄을 서는 자라면, 앞으로 절대 원칙을 지키라느니, 정당 민주주의를 사수하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오히려 멋 모르고 그런 말을 지키는 자를 밟고, 올라서기 위한 술책일 뿐이다.

정동영과 김경재의 각기 다른 정치적 행보는 그래서 쉽게 간과해선 안 되는 일이다. 또한 단 한 명이라도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이들은 훗날이라도 다시 재평가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