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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518, 박근혜와 5.16 그리고 역사

대한민국의 역사가 정리되고 있다


박근혜가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했다 해서 그것이 각종 언론들이나 네티즌들로부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박근혜는 얼마 전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고 했는데 이 또한 각종 언론들이나 네티즌들로 부터 여러 말을 들었다.

그런데 김대중은 또 어떤가?

박정희 정권에서 갖은 정치적 탄압을 받으며 정치일선에 나서지 못한 것만이 아니라 각종 언론에서 ‘김대중’이란 이름도 쓸 수 없어 ‘재야인사’로만 쓰이던 그가 정작 전두환으로부터 5.18 배후조종자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런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 중 ‘박정희기념관’ 건립기금을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하자 또 각종 언론과 시민들, 그리고 네티즌들로부터 여러 말을 들었다.

역사학자나 정치학자, 그리고 심지어 사회과학서적 몇 권이라도 읽은 언필칭 지식인들은 통상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필자도 또한 그 말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역사를 읽을 때 그 기록의 진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기록만을 읽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승자의 법칙의 의해 쓰여진 역사를 당시의 사실로 간주하는 역사 귀결론이며 이를 우리는 쓰기 좋게 승자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백제의 패망이 의자왕과 3,000궁녀라는 허황된 기록을 인정하는 귀결론이며 신돈과 공민왕을 역사의 패배자로 몰아버린 엄청나고도 희한한 기록을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기록에 대한 진위를 따져 들어가면 역사의 기록이란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볼 수 있다.

백제는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년 전에 나당 연합군의 침공에 패하며 그 왕조를 접었다. 그리고 패망 당시의 왕은 의자왕이었다. 하지만 의자왕은 대단한 개혁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백제는 의자왕 재임시절에 비로소 지방의 토호(대부라고도 한다)를 중앙집권에 복속하도록 개혁하려 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아무도, 어떤 왕도 시도하지 않은 엄청난 개혁정책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백제 땅 대부들은 자신의 지방 집권, 즉 자신의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의자왕의 명을 거역했다. 그리고 많은 지방 토호들이 자신의 지방권력을 인정해주는 신라에 투항했다. 이 때문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왕조와 의자왕을 지키는 병사는 계백의 3,000결사대가 유일했다.

결국 백제는 나당 연합군에 의해 패망했다. 하지만 백제 패망 후 신라에 투항했던 백제 땅의 지방 토호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자신들이 지배하는 지역의 민중들을 회유해야 했다. 그리고 그 명분으로 백제의 패망을 의자왕의 방종과 타락으로 몰아갔다. 점령군 신라 정부는 이를 용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낙화암 3,000궁녀설이다.

하지만 당시 사비성의 전체 인구가 10,000명 남짓이었는데 그 중 왕이 여자를 궁에 3,000명을 두고 있었다고 하고 있으니 이 얼마다 허황된 조작인가?

또 백마강과 낙화암의 지형을 보더라도 3,000궁녀가 도저히 죽을 수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1,3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백제의 패망원인을 낙화암 3,000궁녀 설로 믿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귀결론이며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법칙을 증명한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우리는 지금 역사의 반동을 보고 있다. 즉 역사를 승자의 기록으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본인이 김대중과 박근헤이다.

5.16은 혁명이었고 5.18은 반란이라는 기록은 불과 15년 전까지 역사의 승자가 기록한 승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다시 5.16은 군부쿠데타였고 5.18은 민주주의 혁명이 되었다. 그런데 이는 또 바로 15년 전에 승리했던 역사의 승자가 기록한 역사적 기록이다. 하지만 한 때 역사의 승자였던 박정희의 후예인 박근혜가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가 비로소 승자의 역사기록을 부인한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그러면 김대중은 어떤가?

그가 만약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면 그는 역사의 기록에서 영원한 패자로 남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기록상으로 승자의 위치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승자가 된 그는 자신을 영원한 패자로 만들려던 박정희의 역사를 승자로 기록하는 것에 찬동했다. 그것이 박정희 기념관 건립기금을 국고로 지원하도록 한 결정이다. 따라서 김대중도 역사의 승자 기록을 부인한 것이다.

어제(5일) 광주에서 있었던 한나라당 후보경선 연설회에서 박근혜에 대한 호님인들의 환호가 참석했던 한나라당 지도부를 놀라게 했다는 보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사실상 세간에는 빅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호남에서 비토를 받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리고 각종 언론들이 발표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박근혜에게 호남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본지와 글로벌리서치가 조사한 여론조사는 호남지방에서 박근혜가 이명박을 상당히 리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래서 본사 기자들까지 이 여론조사 결과에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본사 기자들에게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전라도 해남사람이다. 내 어머니가 지금도 해남에 사신다. 그런데 어머니는 박정희 신봉자다. 그 분은 내가 박정희의 권력욕, 박정희의 독재 어쩌고 말하면 ‘박정희 대통령 때 우리도 쌀밥을 먹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욕하면 안 된다’고 나를 꾸짖는다. 나는 이 점에서 호남에 박정희 향수가 절대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런 연유로 그동안 필자는 현재 호남지방의 대권후보 지지도에서 박근혜가 어떤 후보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나온 여론조사 지수는 특정후보 지지를 표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재 질문을 통해 끌어낸 대답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광주로 대변되는 호남은 예나 지금이나 민주화의 성지다. 그것은 호남이 오래도록 인간중심이 살아 숨쉬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이, 힘의 위압으로 이 같은 인간중심을 위협할 때 호남은 봉기했다. 그것이 광주학생운동이었고 5.18 민주화 운동이었다. 이처럼 호남은 인간중심을 지향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박근혜가 인간중심을 지향한다면 호남은 당연히 박근혜의 강고한 지지지역이 될 것이다. 그것이 광주에서 박근혜 바람이 불고 있는 이유이다.

어제(5일) 박근혜가 광주에서 5.18을 만주화 운동이라고 말한 것을 혹자는 또 대통령 선거에 이기려는 발언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비로소 역사의 기록이 정의의 기록이 되려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출처: 네이션코리아, http://nakore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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