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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가 필연인 이유


'이명박 대세론'이 무너졌다며 한바탕 호들갑 떨고있는 언론들

최근들어 이명박의 지지율이 다소 하락하고 있는 것을 두고 '이명박 대세론이 무너졌다'느니, '중도하차 가능성 제기돼' 등 그야말로 섹시한 제목의 기사가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의외로 이명박의 지지율이 견고하다는데에 놀랄 수 밖에 없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를 놓고 볼 때 지지율이 가장 낮게 나온 것이 34%이고, 높게 나온 것으로는 43%까지 있다. 이 중 중간치를 뽑으면 대략 38% 정도가 되는데 이것을 과연 '하락'이라고 분석할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는 의문이다. 물론, 가장 잘 나갈 때와 비교해보면 다소 하락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난 1년간 이명박 지지율이 대체적으로 40~45% 수준에서 움직였음을 감안할 때 그 중간치인 42%와 38% 사이에는 약 4% 정도의 갭이 존재한다.

오차범위가 대체로 ±2.5%p~3.5%p임을 감안할 때 이것을 1~2% 벗어나는 수준이다. 액면 그대로 이야기하자면 '미세한 조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이것을 두고 '대세론 붕괴'니 '지지율 추락'이니 등의 워딩을 구사하는 것은 전형적인 '뻥튀기'와 '호들갑'이 되겠다...

이명박의 강점? 이명박 지지자들 성향? 헛다리 짚는데 답이 나올까?

이곳에서 제법 논객 대접을 받고 있는 '관찰자'라는 양반 글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서 쓴 여론조사 분석, 경선구도에 관한 분석, 검찰수사 향배 분석 등이 논술시험 모범답안으로는 그럴듯하게 먹힐지 모르지만 정치현상에 대한 분석으로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보기 바란다. 과연 이회창이 노무현에 비해 강점이 부족해서 낙선한 것인가? 그리고 이회창 지지자들보다 노무현 지지자들이 더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이어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인가? '관찰자'의 분석 틀로는 이와같은 현상을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한 분석 틀은 2002년에 이미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필패론'을 설파하면서 박근혜가 이명박보다 도덕적이고, 정직하고, 훨씬 더 우월한 리더쉽을 갖고 있다며 입에 거품을 문다. 대부분의 이명박 지지자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며 이들과의 일전을 불사하겠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그와같은 논쟁에 별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논쟁이 오는 12월 대선구도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아돌면 그러한 논쟁에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책임있는 논객이라면 그처럼 한가한 이야기에 참여하기를 거부해야만 마땅하다. 결국, 글을 쓰는 목적이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좀 더 합리적이고 유연한 형태로 펴서 그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논객으로서의 외연을 넓히는데에 있다고 본다면 그러한 시간낭비적 요인에 스스로를 밀어넣는 것을 자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큰 관심을 갖는 부분은 바로 '게임의 구도'와 '여론형성의 메카니즘'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노력과 열정의 결과라기 보다는 그 시대에 진행된 패러다임 및 민심의 변화로 인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결말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만일 통일신라가 무너지는 시점에 이성계가 등장했다면 그는 결코 천하의 중심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려왕조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는 시점에 왕건이 등장했다면 그 역시 빛을 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성계와 왕건 중 누가 더 뛰어나고 그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밀어올린 사대부와 지방호족 중 누가 더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지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들의 등장은 그 시대의 필연이며, 그와같은 필연이야말로 한 시대를 통해 서서히 진행되어온 패러다임 및 민심의 변화가 만들어낸 하나의 극적인 드라마이다.

고려 시조 왕건의 리더쉽과 조선 시조 이성계의 리더쉽 비교

고려왕조를 창건한 왕조는 여러 면에서 흠이 많은 인물이었다. 송악의 해상(海商) 호족 출신인 그는 해외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는 했으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동 시대에 활동했던 궁예와 견훤이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사로잡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면 왕건은 무난하면서 모나지 않는 인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궁예와 견훤의 영향력 하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면서 때를 기다린 것은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밑에서 세월을 낚았던 도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와 동일한 그림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최고권력을 잡는 방법 또한 그의 인물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기반을 발판으로 많은 지방호족들과 '의형제' 혹은 '혼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물밑에서 서서히 대세를 장악해나갔다.

그러나, 조선왕조를 창건한 이성계는 이와는 여러 면에서 대비가 되는 인물이다. 이성계 자신은 물론, 그가 중용한 정도전, 권근, 이방원 등이 하나같이 선이 굵은 지도자일 뿐아니라 도무지 타협할 줄 모르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따라서 왕건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큰 유혈충돌이 없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성계 세력의 권력이 견고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유혈충돌이 빚어졌다. 위화도 회군 및 역성혁명 과정에서 수많은 고려의 대신들이 살해되었고, 거듭된 왕자의 난을 통해 끔찍한 골육상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처럼 정변(현대 용어로는 쿠데타)이 잇따르는 상황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성계 세력들은 도덕적 청렴성과 엄격한 법치주의를 사회적 모토(Motto)로 내세울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다시말해 집권세력의 도덕적 우월성과 혁신적인 민심 수습책이 전제되지 않는한 스스로의 집권기반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 속에 유교사상 강화 및 법치주의 확립에 '올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와같은 차이점이 발생한 것일까? 그것은 당시의 시대적 패러다임과 민심의 현주소가 달랐기 때문이다. 왕건이 고려왕조를 창건할 당시의 통일신라는 비록 영토적으로는 통일국가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 현실에 있어서는 여전히 고구려-신라-백제 대립 시대의 갈등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통일신라 말기에 접어들어 지방호족들의 수탈이 극에 달해있었던 만큼 지도자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민심의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도리어 수백년간 이어져온 지역간-계층간 갈등구조를 풀어내는 가운데 독자세력화한 지방호족들의 수탈을 최소화하는 쪽에 민심의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와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지도자가 바로 왕건이었으며, 왕건은 지방호족들의 추대 형식으로 왕좌에 오른 가운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신뢰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중앙과 지방의 불신 속에 서민들만 죽어나가는 구조를 개선하는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고려왕조의 붕괴는 불교의 타락, 왕실의 도덕성 추락, 오랜 몽고족 지배 속에서 추락한 귀족정치의 위상 등 자체적인 모순이 원인이었던 만큼 도덕적 우월성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신진세력의 대두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와같은 상황 속에서 군부 비주류의 핵심인 이성계와 사대부 세력이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 절묘하게 결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즉,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군부 비주류 세력은 고려왕조 몰락의 책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뿐아니라 내직 보다는 외직 경험이 더 많은 만큼 군인으로서의 카리스마에 있어서 주류 세력들보다 뛰어난 측면을 갖고 있었다. 사대부 세력의 경우 신흥 종교인 유교를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가운데 도덕성에 있어서 귀족세력과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면서 '왕도주의 법치국가'를 들고 민심 속으로 서서히 파고들었다.

왕건과 닮은 이명박의 리더쉽과 그에게 열광하는 화이트칼라 지식인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패러다임은 과연 어떠할까? 이념, 계층, 지역으로 갈기갈기 찢겨져있고, 비정규직으로서 족벌재벌 경영에 착취당하는 서러움,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꼬박고박 월급봉투에서 수탈해가는 세금과 4대보험, 정치권의 극심한 대결정치에 의해 초래된 정당정치 붕괴, 민주화 엘리트계급 몰락, 기득권층에 대한 사회적 냉소주의 및 혐오 등 그야말로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갈등구조가 일시적으로 폭발한 듯한 상황 속에 놓여있다. 그러다보니 서민들의 기대수준 또한 '발전'과 '번영'보다는 '생존' 쪽에 촛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다. 바로 여기에 '이명박 대세론'이 형성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메카니즘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생존'을 확실하게 책임져줄 수 있는 지도자를 향한 지식인들과 극단적 냉소주의 계층의 흔들림없는 지지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의혹이 불거져나오고, 잇따라 열린 정책토론회와 순회연설에서 경쟁후보를 전혀 압도하지 못했고, 잊어버릴만 하면 '실언'으로 비춰질 수 있는 '오버' 발언이 쏟아져나오고, 우군이라고는 전혀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공격과 비난을 퍼붓는 가운데에서도 '지지율 1위'가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명박만이 갖고 있는 '시대적 코드'이며, 그것은 대한민국과 민생의 '생존'을 가장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인 동시에 비판적 지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수개월에 걸친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신화는 없다' 속의 열혈 CEO의 모습과 서울시장으로서의 대단히 인상적인 퍼포먼스가 상당부분 퇴색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의 '생존 본능'은 그 효과가 소멸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사막 한 가운데, 혹은 무인도에 남겨진 절박한 상황에서 기존 대선후보 중 누구를 파트너로 택할 것이냐에 있어서 이명박을 능가할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이명박 대세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을 거치면서 비록 도덕성에 있어서는 이전 정권보다 우월한 상황에서 출발하였지만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대단히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긴 15년의 세월에 대한 '지독한 냉소주의'를 민심 속에서 읽어내야만 한다. 따라서, 현재 이명박을 지지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앞으로 5년간 누가 대한민국을 더 발전시킬 것이냐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내가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것을 면할 수 있을까'라는 대단히 비관적인 물음 속에서 그를 찾고 지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저학력, 저소득층' 중 박근혜 지지층이 많고, '고학력, 고소득층' 중 이명박 지지층이 많다는 것도 바로 그와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고학력, 고소득층'일수록 냉소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으며, '저학력, 저소득층'일수록 미래에 대한 희망에 '올인'할 가능성이 높다. 복권이나 로또의 주구매층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그 답이 나온다. 냉소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복권을 사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박근혜나 다른 경쟁자들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냉소주의'와 '생존우선의 사고'를 바꾸는데에 성공했나? 그러한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는 징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명박을 아무리 물어뜯고 끌어내려도 박근혜가 1위로 올라서지 못하는 이유는 이명박의 명성과 이미지를 다소 훼손시키는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그가 만들어놓은 패러다임을 바꾸는데에 여전히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꾸어놓지 못하는 한 박근혜에게 경선 승리라는 것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상현실'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명박의 한나라당 경선 승리와 대통령선거 본선 승리는 여전히 시대적 필연이라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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