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이 7일 주최한 '6.15 정상회담과 한반도평화체제'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한반도 주변 4강의 인식차가 드러났다.
학술회의에 참석한 미.일.중.러 4개국 학자들이 정부를 대변한 게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폈거나 자국 정부의 입장을 진단한 것이긴 하지만, 특히 중국 학자는 남북 평화통일을 말하면서도 "자주적" "(중국에)우호적" 통일을 강조했고, 일본과 러시아 학자는 자국 정부가 한반도에 대한 전략차원의 정책이 결여돼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 아시아재단의 스콧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한반도 안정 유지를 위한 미국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고 그에 따라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재래식 군비감축을 포함해 안보문제에 관해 북한의 협상 파트너로 등장하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특히 1992년 제1차 북핵 위기 때 당시 딕 체니 미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재편 계획을 중단시켰지만, 2003년 2차 핵위기 때는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이 그와 관계없이 주한미군 재편 결정을 내림으로써 미국은 주한미군과 북한 핵위기 간 연계를 사실상 끊어버렸다고 부연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전략은 ▲동북아 안보대화 기구의 제도화 ▲역내 모든 국가간 관계정상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스나이더 연구원은 말했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북미관계 정상화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남북간 휴전선 분쟁을 해결할 장치가 마련되면 유엔사 군사정전위가 해체되는 것은 물론 그 기능이 남북간 사이의 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 역시 재래식 안보문제에 관한 협상에서 미국의 역할을 더욱 줄어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핵문제와 재래식 군비감축 문제 모두의 협상 파트너를 미국으로 보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9.19공동성명에 한반도 항구평화체제 수립이 들어있는 점을 들어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결과가 "6자회담 장에 보고돼,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한 모든 당사자들이 지지를 공식 표명해야 한다"고 말해 남북과 미.중 4자간 협상이더라도 일본과 러시아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중국 = 현대국제관계연구원의 푸멍즈 원장조리는 중국이 정전협정 서명국이라는 사실 등을 들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당사국 중 하나이며, 다른 당사국들 사이의 "조정에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국의 동북아 전략의 궁극 목표라고 강조하고 이 차원에서 "평화적인" 남북통일도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말했으나, 반드시 "자주적인" "우호적인" 등의 수사를 붙이거나 더욱 직접적으로 "통일에서 외부세력이 배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 수립을 위한 "사전의, 그러나 근본적인 조치들"로 "군사동맹에 대한 집착 포기, 관련 당사자들의 전략적 관심사에 대한 존중, 모든 외국 군대의 종국적인 철수" 등을 들고, "장기적 관점에서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선 외부세력의 간섭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간 동시성을 말하고, "한반도 비핵화에는 한반도로부터 미국의 핵무력과 영향의 철수가 포함돼 있다"고 말하는 등 북핵 폐기의 '상호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협상의 형식에 관해, 북.미 양자 방식은 "분명히 비현실적"이고, 북한 대 한.미의 3자 방식은 북한에 의해 불공평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남북 양자 방식은 "외부 지원의 결여로 인해 미군의 한반도 주둔의 미래를 결정할 만큼 강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그는 "가장 적합한 방식"은 남한 대 북한이 주가 되고 미국과 중국이 서로 동등하게 참여하는 2+2 형식일 것이며, 여기에 유엔도 참여시키는 2+2+1 방식도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중 관계에 대해 북한의 핵실험을 언급하지 않고 "한.중 외교관계 수립과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빚어졌던 바닥을 벗어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일본 = 시즈오카 현립대의 하지메 이즈미 교수는 일본정부와 언론은 모두 납치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9.19공동성명에서 "직접 당사국이 적절한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해 논의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일본은 "이 포럼에 참여할 기회가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일본 정부와 언론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문제를 납치문제보다 "덜 중요한" 문제로 간주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거의 관심이 없다고 거듭 지적하고 "그러나 일본의 직접적인 참여없이는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본이 이러한 태도를 고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그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는 남북 화해만으로 달성할 수 없다며 "북.미 관계와 북.일관계가 정상화된 이후에야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납치문제와는 별도로" 핵 및 미사일 문제를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다룰 것을 촉구했으나 아베 정권이 이러한 정책전환을 이룰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러시아 =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바실리 미혜예프 중국.일본연구센터 소장은, 한반도가 외부의 간섭없이 평화적 수단을 통해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는 게 러시아의 공식 입장이지만, 독자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비전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특히, 현실적으로 남북통일은 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 형식으로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러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생애엔 통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미혜예프 소장은 말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한국의 통일이 러시아와 중국 접경에 "강력한 친미 국가"의 등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러시아와 중국 양측에 이익이 안된다고 보고 있다고 미혜예프 소장은 말했다.
통일이 될 경우 한국이 북한 경제 재건에 집중함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투자가 감소할 것이라는 점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러시아에 도움이 안된다고 본다는 것.
이에 따라 한반도 통일에 관한 러시아 지도부의 기본 접근 방식은 가능한 오래 한반도에서 현상을 유지하는 게 러시아에 유리하다는 것이라고 미혜예프 소장은 말했다.
그는 또 러시아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아직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점을 들어 김 위원장이 사망하면 북한의 붕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하면서, 한반도 통일에 관한 러시아의 "전반적인 입장"은 어떤 전략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발생하면 대응"하는 "수동성"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의 핵실험 후 러시아가 접경에 핵보유국이 등장한 것에 예상보다 단호한 입장을 취하지 않은 데 대해 미혜예프 소장은 "불안정한 상태이긴 하지만 (북한의 핵보유로 인해) 등장하고 있는 역내 균형을 깨지 않으려는 심사"로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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